확대되는 공립유치원 방과후 과정
저출산 극복 일환이라는 정부의 정책 하에 전국 대부분의 유치원은 방과후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사립유치원과 어린이집은 이미 예전부터 연중무휴와 저녁 7시 이상을 기관의 운영 기조로 내세워 왔고, 공립유치원 역시 해가 갈수록 사립유치원과 어린이집과의 유아 모집 경쟁 속에 지속적인 방과후 과정 확대를 요구받는 상황이다.
실제로 경기도교육청은 ‘2024 경기 유아교육 정책’에 유치원 방과후 과정을 230일 이상 매일 저녁 7시까지 운영을 강권하였으며, 이러한 흐름은 이미 예전부터 전국적으로도 공통된 사항이다.
혹자는 말한다. 사립유치원과 어린이집은 학부모들의 요구에 맞춰 시장의 논리대로 잘만 운영하고 있는데 공립유치원만 왜 이렇게 불평이냐고. 그렇다면 나는 사립유치원과 어린이집 종사자들의 근무 실태와 이에 따른 근속연수에 관한 이야기 및 공립유치원 교사의 행정업무에 관해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나는 내 직업과 직장이 평범한 교사라면 누구나 다 건강하게 정년퇴직을 꿈꿀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앞으로 기회가 될 때마다 공립유치원 방과후에 관한 날것의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고자 한다.
우리는 슈퍼맨이 아니다
유치원 일과 운영은 대부분 ‘(아침 돌봄)-교육 과정-방과후 과정-(저녁 돌봄)’의 형태를 띠고 있다. 여기서 방과후 과정을 담당하는 인력은 크게 방과후 공무직, 시·기간제교사, 방과후 정교사, 방과후 강사 등으로 다양하게 존재한다. 하지만 저녁 7시까지 운영하는 유치원에 방과후 인력에 공백이 생길 경우, 이 빈자리를 채울 수 있는 인력은 사실상 교육과정 교사와 관리자밖에 없다.
이는 교육과정 교사의 공백이 발생해도 마찬가지다. 교육과정 보결도 들어가려 하지 않는 관리자가 절대다수인 유치원 교직 사회에서 방과후 대체는 100% 교사의 몫으로 돌아온다. 대체 인력을 구한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이 역시 교사가 인력 채용의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업무를 처리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만약 인력을 구하지 못하다면? 병설유치원 교사는 오전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교육과정과 방과후 과정을 온전히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저녁 7시가 아니더라도 이미 대다수의 유치원 교사들은 1일 3~5세 유아 14~24명 정도를 8시간 이상 교육하고 돌본 경험이 있다. 우리는 슈퍼맨이 아니다. 그리고, 교사인 나 역시 집에서 저녁을 해줘야 하는 아이가 있다.
교육부와 교육청 역시 유치원의 이러한 상황을 모르는 것이 아니나, 방관만 하고 있다. 이러니 유치원 현장에선 교육과정 교사와 방과후 과정 인력과의 갈등이 끝날 줄 모른다. 교육과정 교사는 항상 방과후 공백을 대신해야만 하는 것이 힘들고 부당하게만 느껴지고, 방과후 인력 역시 본인에게 부여된 온전한 권리를 눈치 보며 쓰거나 쓸 수 없기 때문에 부당하다고 느낀다. 어쩔 수 없이 유치원 교사들은 급하게 지역 유치원 교사 단체 카톡방에 아래와 같이 인력을 구하는 글을 올린다.
“휴일에 죄송합니다. ㅜㅠ 내일부터 5일간 00유치원 방과후 대체 교사를 구합니다. 주변에 아시는 분 있으시면 소개 부탁드립니다.ㅜㅠ”
교육청 중심의 대체 인력풀 구축은 정말로 불가능한 것일까? 230일 이상 운영을 목표로 한다면 연가 20일, 병가 10일을 기준으로 최소한 방과후 담당 인력을 7명당 1명씩 예비인원을 확보해 방과후 공백을 상호 대체하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이것 역시 최소기준이긴 하나, 이 정도의 인력 시스템도 구축되지 않는 이상 공립유치원 방과후 및 돌봄 대체 인력 문제는 앞으로도 지속될 수밖에 없다.
아동이 저녁 7시까지 남게 하는 사회...또 다른 아동학대
유치원 방과후 과정을 확대하는 데 있어 과연 아이들과 이를 담당하는 교사들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 봤을까? 누군가의 정치적인 이기심과 욕심으로 가장 많이 희생되는 것은 역사적으로 봐도 언제나 힘없는 약자들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희생자들은 바로 유치원에 7시까지 남아있는 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방과후 인력들이다.
유치원 급.간식 계획에서 점심은 대부분 12시, 간식은 2~3시 사이에 먹는다. 그리고, 저녁 7시까지는 아무것도 없다. 그럼 저녁 7시에 하원하는 아이는 대체 언제 집에 가서 씻고 밥을 먹을 수 있을까? 이는 유아의 건강권과도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문제이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아이들에게 저녁까지 주면 되지 않냐고 쉽게 말할 수 있다. 또 저녁까지 아이가 밥을 먹고 오니 아이를 키우는 것이 너무 편하다고 말하는 일부 학부모들의 의견을 인용해서 이것이 저출산 대책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아이들한테 저녁을 어디서 누구와 함께 먹고 싶은지 물어는 봤을까?
유치원에서 7시까지 아이를 부모랑 떨어트려 놓고,
저녁까지 먹게 하는 사회가
과연 우리가 원하는 건강한 사회일까?
일 년 내내 저녁 7시까지 아이를 기관에서 담당하게 하는 유치원 방과후.
일에 쫓기느라 저녁까지 아이를 맡길 수밖에 없는 학부모.
부모와 함께 저녁을 먹지 못하는 아이.
그러한 아이들을 돌보느라 정작 본인의 가족은 챙기지 못하는 방과후 담당 인력.
여기서 행복한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그렇기에 방과후 확대 정책에서 7시 강요는 실패한 정책이며, 절대적으로 실패해야만 하는 정책이다.
지금 사회의 시대적 요구는 전적으로 아이를 기관이 담당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아이와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