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 1029 참사로 많은 선생님들이 아파하고 계십니다. 교육희망은 선생님들이 겪고 있는 슬픔을 나누고 교사로서 해야할 역할에 대한 고민을 확장해나가고자 합니다. 슬픔을 넘어 ④에서는 세월호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위원(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세월호피해지원과 조사관)으로서 재난 참사를 깊게 들여다보며 유가족과 함께 했던 416세월호참사작가기록단 및 인권기록센터 사이 활동가 강곤님의 이야기를 서면으로 들어보았습니다.
11월 22일 1029 참사 유가족 기자회견이 있었다. 기자회견은 참사 24일동안 유가족은 정부로부터 아무런 설명을 듣지 못했다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 참사 어떻게 보고 있나?
대형 재난 참사는(대형 참사, 특히 사회재난의 경우는) 정부의 안전관리, 행정 및 대응 체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아 일어난 사건을 의미한다. 따라서 정부 행정의 일시적 마비를 동반할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여러 이해하기 어려운 의혹과 문제점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유가족이 기자회견에서 제기한, 그리고 앞으로 제기하게 될 합리적 의심에 대해 정부는 성실히 답변하고 진상을 규명할 의무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빨리 유가족이 모이고, 이 과정에서 소수자, 사회적 약자의 의견이 민주적으로 표현되도록 의사결정 구조를 만들고 지원할 필요가 있다.
배·보상 문제에 있어 한국 사회는 금액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게다가 정부가 발표하면 언론이 이를 확대 재상산하면서 문제가 커진다. 재난참사에서 진상규명, 재발방지, 책임자 처벌, 피해자에 대한 배·보상, 희생자에 대한 애도와 추모 그리고 기념은 서로 분리될 수 없음을 사회적으로 인식하고 합의해야 합니다. 재난참사는 공동체가 피해를 입은 것이기에 공동체의 회복, 공동체에 대한 배상과 보상도 꼭 고려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유가족뿐만 아니라 희생자의 지인, 구조 활동을 펼쳤던 관계자와 목격자, 이번 이태원 참사의 경우 상인과 지역주민까지 피해자들에 대한 전반적인 회복과 합당한 배보상이 반드시 필요하다.
배보상에 있서 구체적인 금액을 밝힐 것인지 말 것인지, 어떤 순서와 시간을 갖고 밝힐 것인지를 유가족 및 피해자가 결정하도록 해야한다.(유럽 국가들은 희생자 및 피해자 1인당 받게 되는 배보상 금액은 매우 민감한 문제기에 피해자가 원하지 않는 이상 밝혀서는 안 된다고 피해지원 매뉴얼 등에서 규정하고 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유가족들과 어떤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애도기간을 선포하고 분향소를 지정했으며, 배·보상의 금액까지 밝혔다. 이는 참사 초기 피해자 권리 보장을 저해하거나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을 방해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이 자체가 또 하나의 국가폭력이다. 별도의 진상규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세월호 진상규명 조사위원으로서 참여했다. 1029 참사 국정조사를 11월 24일부터 시작했는데 이번에는 어떤 오류를 범하지 않아야 할까?
먼저 이번 1029 참사와 세월호 참사를 비교하는 데 있어 조심스럽다. 모든 죽음이 그렇듯 모든 재난 참사도 각자의 개별성과 특수성이 있기에 기계적으로 비교하거나 경중을 따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재난참사에서 정부나 기관은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따라서 유가족 입장에서는 정부 기관의 개입에 대해 의혹과 우려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 때문에 최근 프랑스(최근 소개되는 서구유럽의) 사례와 같이 유가족이 신뢰할 수 있는 NGO나 법률가 집단 등의 조력이 더욱 필요하다. 정부는 유가족이 이런 조력을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한다.
또한 진상규명, 재발방지 과정에서 정부의 수사기관이 아닌 유가족이 신뢰할 수 있고 객관적이며 전문적인 조사기구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에서는 최종 권고에서 상설적인 재난참사 조사기구 설치를 권고했다. 현재 한국에서 훈련받은 전문적 조사관은 전무하다고 볼 수 있다. 수사와 조사가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 피해자의 권리에 입각한 조사는 어떠해야 하는지 충분히 이해하고 훈련받은 조사관이 양성되기 위해서라도 상설 기구가 반드시 설치되어야 한다. 그리고 재난 참사가 발생했을 때 가장 먼저 현장에 투입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편 그 과정에서 피해자, 유가족의 참여가 보장되어야 한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재난참사의 진상규명과 피해자 지원에 있어 훈련된(가장 고민이 깊고 경험이 많은) 전문가 집단은 ‘416 가족협의회’다. 앞서 프랑스의(프랑스의 테러 피해자 모임인) 펜박처럼 재난 참사 유가족 모임이 책임 있는 역할과 조력을 할 수 있도록 법적, 제도적 보장을 해야 한다.
유가족 기자회견에서 민변 대리인이 신원권이라는 표현을 썼다. 억울함을 풀기 위해 유가족이 국가에 요구할 수 있는 권리이다. 유가족의 권리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달라.
질문과는 좀 다른 이야기인데 유가족의 범위, 누가 유가족인가에 대한 질문이 필요하다. 혈연을 중요시 하는 한국 사회에서 유가족을 희생자의 직계존비속으로 한정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다들 알다시피 부모보다 각별한 이모가 있을 수 있고, 형제보다 더 애틋한 친구가 있을 수 있다. 유럽에서는 피해 지원의 범위를 희생자의 지인까지 확대하고 있다. 이처럼 유가족의 범위 또한 확대할 필요가 있다. 그럴 때 희생자도 한국 사회,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여러 관계망 속에서 온전히 기억되고 추모가 될 수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인권단체와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재난참사에서 피해자의 위치와 피해자는 어떠한 사람들인가에 대해서 고민하고 관련한 활동을 벌여왔다. 그러면서 유엔에서(유엔과 국제인권규범에서 제시하고 있는) 재난 참사 피해자는 국가나 사회가 도와주어야 할 존재나 피해 지원의 대상이 아니라 진상규명과 재난참사 수습과정에서 권리의 주체라는 인식의 전환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재난안전기본법에 따르면 여전히 재난 참사 피해자들은 보호하고 지원해야 하는 존재로만 머물러 있다. 문재인 정부 때 피해자의 권리가 들어갔지만(2020년 문재인 정부에서 발표한 4차 국가안전기본계획에서 국가는 피해최소화의 책임을 가지며 피해자는 피해최소화를 위한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했지만 실질적으로 재난 관련 법제도에는 반영되지 못했다. 현재 시민사회에서 제안한 생명안전기본법이 피해자 권리를 중심으로 짜여졌으나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가 되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피해자가 권리의 주체라는 부분을 법제도상으로 이뤄내지 못했다. 피해자는 지원을 요구할 권리가 있고 진상규명에 참여할 권리가 있고 기억과 추모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세월호 참사가 준 소중한 교훈이다. 이번 참사에서도 유가족들이 권리의 주체로 당당하게 한국사회에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교사와 교육계가 이 참사 앞에서 고민이 많다. 교육계가 해야 할 역할을 포함 교사는 학생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지 고민이 된다.
교육은 한 세대가 무언가를 다음 세대에 전승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이런면에서 한국 사회가 재난참사를 교육으로 전수하는 작업은 철저히 실패했다.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대구지하철 참사를 겪었지만 추모시설(유가족과 피해자가 흔쾌히 수긍할 수 있는 추모시설) 하나 남기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안산에서 현재 조성되고 있는 ‘416 생명 안전공원’은 미국 뉴욕의 9.11메모리얼파크처럼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본다.
교육은 대형 참사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되게 할 것인지를 세대 간에, 교사와 학생 간에, 학생과 학생 간에, 교육기관과 사회 간에 토론하고 공유하고, 그럼으로써 사회적, 집단적 기억을 함께 형성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인터넷 발달로 인해 재난 참사의 희생자와 피해자에 대한 혐오 및 과거사 부정이 전 세계적 차원에서 벌어지고 있다. 한국에서 518 부정과 피해자 혐오표현이 문제가 되었고, 유럽은 홀로코스트 부인이 문제가 되었다. 어떻게 기억하고 기념할 것인가의 문제는 유엔인권이사회에서도 특별히 중요한 문제로 다루고 있는 것이 국제적 추세이다. 따라서 어느 때보다 공동체 차원에서 참사의 의미를 재의미화 하고, 지속적으로 기억하기 위한 노력이 중요하다.
따라서 교육기관은 과거의 사건을 지금 세대에게 어떤 의미로 교육하고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 위해 현재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같이 고민하고 만들어가야 한다. 이는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공동체의 전제 조건이다. 그래서 미국 총기 난사 사건에 관해 학교와 지역 공동체가 어떻게 기억하고 추모하는지 교육기관 차원에서 연구가 이루어지면 어떨까 한다.
이번 참사를 지켜보며 젊은이들에게 미안해하며 세월호 이후 바뀐게 없다는 생각에 좌절감을 느끼는 시민들이 많다. 개인으로서 시민으로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
이번 참사에서 희생자들을 ‘우리 아이들’로 호명하는 것에 대해 문제 의식을 갖고 있다. 세월호참사때도 ‘아이들아, 미안해’라는 기성세대의 진심 어린 참회와 호소가 뒤따랐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가 과연 희생된 학생들을 이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 권리의 주체로 전환하기 위한 행동이 뒤따랐는가에 대해 회의적이다. 그런 점에서 젊은이들에게 미안함을 표시하는 것보다 젊은 세대가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바라는가를 충분히 듣고, 그들을 위해 제도적 지원을 강구하는 것이 책임 있는 자세라고 생각한다. 기성세대로서 세월호 참사를 조사하고 기록한 활동가로서 어떤 문제점을 지적해고 재발방지 대책을 제시하기 이전에 먼저 이들의 이야기를 잘 듣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요즘 나 스스로에게 이야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