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을 맞이하는 칠월 달력은 앞선 넉 달과 비교하면 기념일이 거의 없고 7월 17일 제헌절이 유일하다. 제헌절은 이름 그대로 헌법 제정을 기념하는 날로 1949년 공휴일로 지정되었으나 2006년 공공기관 주 40시간 근무제 도입과 함께 생산성 저하 우려로 공휴일에서 제외되었다. 공휴일에서 제외되면서 한때 사람들의 관심권에서 멀어졌지만 2024년 12.3 내란 사태를 계기로 헌법의 가치와 중요성을 되새기기 위해서라도 다시 공휴일로 지정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휴일이 늘어나는 즐거움과 방학이 밀리는 걱정이 동시에 드는 교사로서는 슬그머니 중립을 선언하고 싶어진다.
몇 해 전, ‘전국민헌법읽기운동본부’라는 단체에서 발간한 <손바닥 헌법책>을 받아 읽어본 적이 있다. 사실 분량 자체는 그리 많지 않았고 읽으면서 당시 ‘제6공화국 헌법의 입안자들은 이런 사회가 되기를 바라며 이 글을 썼겠구나’ 하며 감탄했다. 국가법령정보센터에서도 쉽게 접근할 수 있지만 헌법 전문을 읽어본 사람은 법조계 종사자가 아니라면 드물 것이다. 그래서, 칠월의 기념일인 제헌절을 맞아 학생들과 헌법의 창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우리 사회의 지향점을 공유하기 위해 헌법을 들여다보려고 한다. 물론 지면과 필자 능력의 한계상 전체는 무리이고, 헌법 전문을 그 대상으로 한다. 또한 법학 전공자가 아닌 평범한 교사의 시각이기에 독자들이 이 글을 헌법이라는 텍스트를 어떻게 민주시민교육과 연결할 수 있을지 고민한 흔적의 기록으로 읽어준다면 좋겠다.
우선 헌법 전문을 살펴보자.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1987년 10월 29일”
전문 말미의 날짜를 제외하면 공백을 포함하여 총 434자가 한 문장이다. 어지간한 글의 한 문단 이상은 되는 분량의 한 문장이라니, 헌법 전문을 한 호흡에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사람의 한계를 벗어난 폐활량의 소유자일 것이다. 이렇게 긴 문장에서 길을 잃지 않을 수 있도록 이정표로 삼을 수 있는 사건과 개념들을 찾아보자.
먼저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은 앞서 4월의 민주시민교육에서 ‘껍데기는 가라’(신동엽)과 함께 살펴본 바 있다. 또한 “조국의 민주개혁”은 5·18광주민주화운동과 6·10민주항쟁을,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는 6월의 민주시민교육에서 ‘6·15남북공동선언’을 떠오르게 한다.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와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는 5월의 첫 기념일인 노동절의 의의를 상기시키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는 6‧25전쟁일과 6·20 세계 난민의 날에 연결해 볼 수 있다.
이렇게 4월부터 6월까지의 기념일과 헌법 전문 속 표현을 연결해 보았다. 다음 차례는 헌법 전문을 다리로 삼아 우리 사회의 지향점을 바라볼 수 있도록 ‘민주이념’과 ‘생활의 균등’이라는 두 열쇳말을 중심으로 한 문학 작품을 호명하고 작품을 활용한 수업의 주안점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헌법의 이정표 1) 불의에 항거한 민주이념과 인간의 존엄
먼저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의 연속선상에 있는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한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이을 수 있다. 이 작품은 고등학생 이상의 독자에게 권하고 있지만 사실 성인들도 읽기 쉽지 않다. 문장마다 담겨 있는 슬픔과 아픔이 가슴을 짓눌러 필자 역시 오랜 시간을 두고 느릿느릿 완독할 수밖에 없었던 기억이 선연하다. 독재와 부정선거라는 자유당 정권의 국가폭력에 저항한 4‧19민주이념처럼 1980년 5월 광주는 박정희 사망 이후 공백 상태가 된 권력을 장악하고 ‘서울의 봄’을 짓밟은 신군부의 국가폭력에 연대와 저항으로 맞섬으로써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질문하고 그 답을 우리 공동체에 남겼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는 교실 속에서 불의에 항거하는 정신뿐 아니라 헌법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의 의미와 이 문장이 현실에서 어떻게 실현되어야 하는지를 토의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
헌법의 이정표 2) 기회의 균등과 소외된 이들의 공동체
다음으로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와 조남주의 <사하맨션>을 연결할 수 있다. 가상의 주류 사회에서 버림받고 배척받은 소수자들의 삶을 그린 이 소설은 헌법 전문에서 선언하고 있는 ‘각인의 기회 균등’이나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과 대척점의 세계를 그린다. 또한 배경이 되는 가상의 건물 ‘사하맨션’은 1993년 철거된 홍콩의 ‘구룡성채’를 모티브로 한 공간으로 작가의 인터뷰 내용을 빌리자면 “버림받은 사람들의 공동체 생활이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자본과 효율성의 논리 아래 사람들에게 고깃덩이처럼 등급이 매겨질 때 공동체는 과연 존재할 수 있는지를 질문하는 디스토피아 소설을 통해 학생들은 국적, 나이, 젠더, 장애 등 서로 교차하는 여러 불평등의 요소를 인식할 수 있다.
이렇게 제헌절을 맞아 헌법 전문에 담긴 우리 사회의 지향점을 확인하고 현실 속 실현 방법에 관해 탐색하는 수업을 제시해 보았다. 수업 중 학생과 함께 작품을 감상하는 과정에서 가치를 내면화하고 구체적인 삶의 장면마다 개인이 취할 수 있는 결심과 행동을 고민할 수 있다. 12.3 내란이라는 거대한 혼란에서 대한민국을 지탱한 버팀목이 ‘헌법’이었던 것처럼, 다가오는 칠월의 교실에서 학생들과 나눌 수업은 현재와 미래의 시민들이 또 다른 모습의 흔들림 속에서도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단단한 닻을 내려주는 작업이 될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여름방학을 기다리면서 1학기 말 학생들과 대한민국호의 목적지와 경로에 관해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