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권] 전자정부 시대의 유령, 사전 대면 결재

박용환 전교조 부산지부 교권국장 | 기사입력 2026/07/02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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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권] 전자정부 시대의 유령, 사전 대면 결재
전자정부 시대의 유령, '사전 대면 결재(구두 결재)'라는 부당한 관습을 넘어
박용환 전교조 부산지부 교권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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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6/07/02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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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정부 시대의 유령, '사전 대면 결재(구두 결재)'라는 부당한 관습을 넘어

저는 20여년이라는 시간 동안 초등교단에 서며 많은 변화를 목격했습니다. 칠판과 분필은 전자칠판과 태블릿 PC로 바뀌었고, 서류에 사다리 모양으로 찍던 결재 도장은 나이스(NEIS)와 K-에듀파인이라는 전산 시스템으로 대체되었습니다. 학교 역시 이른바 '전자정부'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자정부 체계의 학교에서는, 과거의 권위주의적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여전히 유령처럼 떠도는 부당한 문화가 존재합니다. 바로 전산 상신에 대한 '사전 대면 결재(구두 결재)'강요입니다. 이미 복무나 업무 관련 내부 기안을 전산으로 정당하게 상신했음에도, 관리자가 직접 찾아와 보고하지 않았다며 교사를 교장실이나 교무실로 호출하는 행위입니다.

 

▲ 사다리 결재 도장

 

현장의 목소리가 증명하는 끊이지 않는 구태

신규 선생님들을 위한 멘토링과 현장 선생님들의 교권 상담을 하다 보면, 소소해 보이지만 선생님들을 끊임없이 지치게 만들고 모욕감을 주는 단골 민원이 바로 이 사전 대면 결재(구두 결재) 문제입니다.

 

“조퇴를 올렸는데 왜 교무실에 와서 사유를 설명하지 않느냐며 질책을 받았어요.”

“공문 기안을 올릴 때마다 관리자 앞에 서서 설명을 해야 해서 자괴감이 듭니다.”

 

이러한 민원의 대부분은 안타깝게도 학교에 막 발을 들인 신규 선생님이나 저경력 선생님들에게 집중됩니다. 관리자들은 이를 '저경력 교사에 대한 지도'라는 명분으로 포장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는 교육적 지도가 아니라, 명백한 권위주의적 '길들이기'에 불과하다고 생각됩니다.

 

학교 조직의 생리를 잘 모르는 사회 초년생이라는 점을 악용하여, 대면 보고라는 형식으로 심리적 압박을 가하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선생님들은 민주적이어야 할 교직생활의 시작부터 갑질(직장 내 괴롭힘)에 준하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법령과 시스템이 보장하는 '비대면 전자결재'

과거의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관리자들은 사전 대면 결재(구두 결재)가 마치 '조직 관리의 효율성'이나 '소통'을 위한 것인 양 합리화합니다. 하지만 이는 현행 법령과 전자정부 체계를 정면으로 위배하는 행위입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행정기관의 행정업무 운영에 관한 법령에 따라 행정업무의 간소화·표준화·과학화 및 정보화를 도모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막대한 예산을 들여 전자정부 체계를 구축·운용 중입니다. 따라서 관련 법과 규정에 맞춰 전산으로 정당하게 상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전 대면 결재(구두 결재)를 강요하거나, 대면 보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결재를 고의로 지연·반려하는 행위는 명백한 법령과 규정 위반입니다.

 

전교조부산지부는 이러한 구태를 해결하기 위해 단체협약에 명문화하였지만, 법령과 규정, 단체협약의 존재 알지 못하는 저연차 선생님들에 대한 사전 대면 결재(구두 결재)강요는 유령처럼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행정업무의 운영 및 혁신에 관한 규정

 

제5조(문서 처리의 기본 원칙)① 행정기관의 장(법령에 따라 행정권한을 위임받거나 위탁받은 자를 포함한다. 이하 같다)은 문서의 기안·검토·협조·결재·등록·시행·분류·편철·보관·보존·이관·접수·배부·공람·검색·활용 등 처리절차를 전자문서시스템 또는 업무관리시스템 상에서 전자적으로 처리하도록 하여야 한다.

 

제6조(문서의 성립 및 효력 발생)① 문서는 결재권자가 해당 문서에 서명(전자이미지서명, 전자문자서명 및 행정전자서명을 포함한다. 이하 같다)의 방식으로 결재함으로써 성립한다.

 

 

교원휴가에 관한 예규

 

제4조(휴가실시의 원칙) ④ 근무상황부는 교육정보시스템(나이스)에 의하여 개인별로 관리하되, 교육정보시스템(나이스)에 의한 근무상황부를 운용하지 아니하는 경우 학교의 장은 별도로 근무상황부를 비치·관리할 수 있다.

 

전교조부산지부-부산시교육청간의 단체협약서

 

제22조【갑질 근절 대책】⑪ 조퇴, 외출 등의 복무사항은 사전대면 결재 및 구체적 사유 작성을 강요하지 않도록 관리자 교육을 실시한다.

 

"무슨 일 때문이신가요?"라는 질문이 가져온 변화

저 역시 신규시절과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이 부당한 관습의 피해자였습니다. 과거에는 근무상황부나 종이로 된 내부문서를 직접 들고 관리자의 결재판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이 당연한 풍경이었습니다. 하지만 전산 시스템이 완벽히 안착한 이후에도 구태의연한 관습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교내 전화로 다짜고짜 “교장실로 오세요”라는 호출이 왔을 때, 초임 시절의 저는 그저 잔뜩 긴장한 채 불려 가 지적을 당하곤 했습니다. 무슨 문제로 왜 가야 하는지, 가서 무슨 말을 들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불려 다니며 순응했던 것입니다.

 

변화는 작은 용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전교조에서 관련 법과 규정을 배우고 나니, 이 문화가 얼마나 비합리적인지 뼈저리게 다가왔습니다. 또다시 아무런 맥락 없이 교장실로 오라는 요구가 내려왔을 때, 저는 처음으로 단호하게 대답했습니다.

 

"무슨 일 때문이신가요? 이유를 알려주시면 자료를 준비해서 교장실로 가겠습니다.“

 

굳이 대면해야 할 정당한 이유를 묻자, 교장실의 호출은 거짓말처럼 멈추었습니다. 그 이후로 저에 대한 무조건적인 호출과 대면결재 요구는 사라졌습니다. 교사가 부당한 관습에 대해 이유와 근거를 질문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학교 현장의 고질적인 권위주의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습니다.

 

'협의'라는 핑계 속에 가려진 '통제' 

대면결재를 거부하는 것은 결코 관리자와의 소통을 거부하거나 독단적으로 업무를 처리하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많은 관리자가 착각하는 부분인데, '결재'와 '협의'는 엄연히 다릅니다.

 

학교의 교육과정이나 대규모 예산이 수반되는 계획, 혹은 교직원 간의 세밀한 조율이 필요한 사업이라면 당연히 기안을 올리기 전에 사전 협의를 거쳐야 합니다. 관리자와 동료 교사들과 함께 논의하는 과정은 학교를 민주적이고 건강하게 만드는 원동력입니다.

 

그러나 단순 복무 신청이나 이미 협의가 끝난 서류 양식, 통상적인 내부 기안마저도 관리자의 권위를 확인받기 위해 책상 앞에 직접 가서 허락을 구해야 하는 사전 대면 결재(구두 결재)는 소통이 아니라 권위주의적 구태일 뿐입니다. 결재라는 행정 행위를 빌미로 교사의 시간과 정신을 구속하는 구태는 결코 '협의'라는 이름으로 미화될 수 없습니다.

 

민주적인 학교 문화를 향하여

학교는 관료제의 정점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교육의 장이어야 합니다. 관리자들은 '내가 왕년에 평교사일 때는 다 찾아가서 결재받았다'라는 식의 철 지난 향수와 수직적인 사고방식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합니다.

 

전산 시스템의 도입 취지에 맞게 행정을 효율화하고, 교사가 불필요한 감정 소모 없이 오롯이 수업과 학생 지도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학교 내의 유령 같은 구태인 사전 대면 결재(구두 결재)관습은 이제 완전히 청산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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