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먼저 경험했습니다⑤] 착한 독재자는 다양성을 가르칠 수 있을까

한채민 교사·각색교사모임 | 기사입력 2026/06/22 [15:15]
참교육
이런 교육 어때요
[미래를 먼저 경험했습니다⑤] 착한 독재자는 다양성을 가르칠 수 있을까
각자의 세계를 짊어지고 이곳에 도착한 학생들... 완벽한 수업보다 중요한 것은?
'다문화 교육' 너머 '다문화적 존재'의 경험 쌓아가길
한채민 교사·각색교사모임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기사입력: 2026/06/22 [15:15]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각자의 세계를 짊어지고 이곳에 도착한 학생들... 완벽한 수업보다 중요한 것은?
'다문화 교육' 너머 '다문화적 존재'의 경험 쌓아가길

 


[편집자주] ‘미래를 먼저 경험했습니다’에서는 서울 서남권 중등교사들의 다문화교육 연구 공동체 <각색교사모임> 교사들의 교육활동 및 연대활동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기획 연재 제목은 아프간 난민과 함께한 1년을 기록한 시사IN 김영화 기자의 동명 저서에서 차용했습니다.

 

2025년부터 서울 대림동에 있는 서울다문화교육지원센터에 파견을 나와 있다.

 

입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한국어가 낯선 청소년들이 취학 전 3개월간 이곳에 개설된 ‘한빛마중교실’에서 한국어 공부를 하며 학교 갈 준비를 한다. 작년까지 한 학기 단위였던 교육과정이 올해부터 12주 단위가 되면서 3개월마다 새 학기가 찾아온다.

 

나는 한빛마중교실에서 중국, 태국, 방글라데시, 파키스탄에서 온 청소년 10명의 담임을 맡고 있다. ‘공동체’라는 이름이 붙은 과목을 맡아 수업도 한다. 공동체 시간은 교사의 재량껏 구성할 수 있어서 인권, 환경, 문화다양성 등을 다루고 있다. 교육과정 비중이 가장 큰 ‘한국어’ 수업은 한국어 선생님들이 담당하신다.

 

1년 전, 갓 파견을 나와 막 한글을 배우는 학생들을 만나 수업하던 첫날, 나는 잔뜩 긴장한 채 수업 자료를 모든 학생의 언어로 번역해서 준비했다. 수업의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시험 진도에 맞춰 수업 목표를 세우고, 45분 동안 정해진 분량을 완수하는 중학교 교사의 관성이기도 했다.

 

그러나 야심차게 45분 분량으로 준비한 내용을 반의 반도 끝내지 못하기 일쑤였다. 언어 설정만 바꾼다고 해서 곧장 호환되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은 휴대전화도 홈페이지도 아니니까. 각자의 세계를 이고 지고 대림동의 교실까지 도착한 학생들과의 만남을 위해서는 언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안개같이 뿌옇고 어렴풋한 고민 속에서 얼렁뚱땅 1년을 보냈다.

 

학교로 찾아가는 다문화교육... '다문화적'이지 못한 '일방적 강의'의 고민

파견을 나와 하는 일 중에는 ‘학교로 찾아가는 다문화교육’도 있다. 전교생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방송 교육 문의가 많이 들어오지만 대체로 고사한다. 대신 학생들을 직접 대면하는 학급 단위 수업을 하러 중·고등학교에 출장 나가 1년에 2차시씩 40학급과 만난다.

 

의욕이 앞선 나는 2차시 동안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보따리에 넘치게 싸갔다. 딱 한 번 하는 수업이니만큼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해서 강의해야 할 것 같았다. 학생들이 흥미로워할 사례를 잔뜩 담아 알차게 수업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1년의 출장 수업 뒤 최종적으로 하게 된 생각은 내가 가르치고 온 것이 나에게서부터 학생들로 흐르는 일방향적인, 그렇기때문에 ‘다문화적’이지 못한 태도뿐이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현존하는 지배 체제를 강화하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가르칠 수 있다는 확신을 절대로 양보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려면 교수가 강의실에서 독재자가 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꼭 알아야 했다.”

 

벨 훅스의 ‘경계 넘기를 가르치기’에는 위와 같은 구절이 나온다. 교사가 된 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받을 때마다 꺼내어 곱씹는 문장이다. ‘현존하는 지배 체제를 강화’하고 있을 뿐인 것 같다는 생각이 자괴감처럼 밀려올 때 말이다.

 

▲ 서울다문화교육지원센터 벽에 붙여진 세계인권선언. 다양한 언어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 한채민 교사


학생 한 사람 한 사람 서로의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듣는 것이 ‘가르치는 일’에 밀려 영원히 부차적인 일로 취급받을 때, 학생들의 고유성을 지워내고 익명의 학생 다수에게 가르침을 주겠다는 오만함을 정당화할 때, 단시간에 성과를 내겠다며 효율성을 우선시할 때, 교실 안에 구체적인 질감으로 존재하는 건 오직 교사인 나 하나뿐이다. 교실 속 독재자가 되기를 택한 셈이다. 심지어는 착하고 유능한 독재자가 되고 싶은 것이다.

 

타인과의 공존은, 타인에 대한 존중은 과연 교사에 의한 가르침의 결과일까? 교사가 인권교육을 아주 많이 한다면 인권 존중 세상이 될까? 교사의 ‘착한 독재’를 정당화하는 한 학생들은 권력에 순응하는 몸으로 길러지고 있을 뿐이지 않을까? 교사가 인권과 다양성을 ‘가르치는’ 행위는 효율적으로 보이지만 권력의 얼굴이 바뀌면 한순간에 뒤집히는 무력한 방식이지는 않나? 그건 얼마만큼 인권적이며 다문화적인 방식인 걸까?

 

'교실 속 착한 독재자'를 벗어나기 위한 도전 

최근 교실 속 혐오표현과 학생들의 극우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어 혐오 없는 교실을 위한 실천 방안과 교육 방법 논의도 활발해지는 것 같다. 혐오와 차별에 민감하게 대응하려는 이야기가 일상에서도 수업에서도 많아지고 다양해지는 건 중요하다.

 

그러나 학생들에게 ‘(혐오표현을 쓰는) 너희가 틀렸다’는 가르침을 주는 게 교육의 목적이라면 금세 한계에 봉착할지 모른다. 학생들이 혐오표현을 발명해 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혐오가 왜 틀렸는지도 설명해야 하겠지만, 매번 새롭게 발명된 혐오표현과 영원히 끝나지 않을 두더지게임을 할 수는 없다. 교사가 혐오표현을 하는 학생과의 논쟁에서 이겼다고 해서 혐오를 이겼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2021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실시한 ‘온라인 혐오표현 인식조사’에 따르면 혐오표현의 원인으로 ‘정치인 등 유명인이 혐오표현을 써서 문제라고 느끼지 않게 되었다’는 응답이 76.3%였다.

 

청소년들에게는 자신의 일상 속 권력을 의심하거나 문제제기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떠먹여주는 대로 소화해 내라고 청소년을 다그치는 구조에서 비청소년이 발명한 혐오가 청소년에게까지 퍼지지 않을 개연성은 낮다. 교실과 청소년을 혐오의 온상으로 지목하기보다 권력을 가진 비청소년의 언어와 행동을 수용하고 순응하도록 기르는 시스템을 바꿔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교실에서 어떤 도전을 해볼 수 있을까.

 

“기존의 것과 다르고 급진적인 주제를 다룬다고 해서 해방 교육이 창출되지 않으며, 단순히 교과 과정을 바꾸는 것보다는 수업 시간에 개인의 경험을 말하도록 하는 것과 같은 단순한 실천이 건설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것입니다. (...) 진보적인 교육을 의심하는 동료들은, 당신이 교실에서 당신의 경험과 학생들의 경험을 이야기하도록 한다는 점을 당신이 교수로서 맞지 않는다고 여기는 근거로 제시합니다. 그러나 개인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그 경험적 지식을 학문적 정보와 연관시키면,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은 더욱 강화됩니다.” ― 벨 훅스, 『경계 넘기를 가르치기』

 

갓 입국한 학생들의 담임 역할을 한 지도, 출장을 나가 다문화교육을 한 지도 2년차가 되었다. 지금은 한빛마중교실 3개월, 출장 수업 2차시라는 짧은 시간 동안 수업의 내용을 통해 다문화적인 태도를 가르치려는 욕심을 내려놓으려 애쓴다.

 

수업은 잊혀도 사라지지 않을 개인적이고 공적인 경험

다만 교실 속에서 학생들이 자기 자신의 존재를 잊지 않도록, 그럼으로써 서로의 존재를 의식하도록 동그랗게 둘러앉아 각자가 가져온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는 방식으로 수업 시간을 보낸다. 수업의 내용은 금세 잊히더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며 생생하게 존재하는 개인적이고도 공적인 경험은 고요하고 은은하게, 천천히 쌓여갈 거라 믿는다.

 

다문화교육이라는 범주 안에서 가르침을 주려하기보다 다문화적으로 존재해보는 경험에 학생들과 함께 새롭게 도전하는 중이다.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고 목소리를 들으며 환대와 우정, 의심과 갈등, 취약성과 외로움 그 모든 것과 함께 존재할 용기가 가능해지기를. 가르칠 수 없는 변화가 역동하기를.

이 기사 좋아요
ⓒ 교육희망.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 도배방지 이미지

혐오, 다문화교육, 각색교사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