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전교조, 실천교사모임 등 다양한 교원단체에 적을 두고 활발히 저술, 강연, 상담 활동을 하고 있는 전북지부 정성식 교사를 익산에서 만나 교사들의 '법 생활'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Q. 반갑습니다, 선생님. 온라인에서는 자주 뵈었지만 실제로는 처음 얼굴을 뵙습니다. 제가 보기에 온라인을 가장 잘 활용하는 교사 중 한 분이십니다. 요즘 온라인 활동은 어떻게 하고 계신가요?
페이스북 나오기 전 싸이월드 시절부터 교단일기나 육아일기 등을 써왔습니다. 지금은 오픈 채팅방 등에서도 선생님들과 자주 소통하고, SNS에서도 제 생각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Q. 최근 어느 매체에서 인터뷰 후 본인이 ‘관계자’로 표현되자, SNS에서 ‘그 관계자는 나’라고 밝히셨더군요.
저는 교사소통 오픈 채팅방 등에서 익명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내 말의 책임은 내가 지겠다는 생각으로 모든 톡방에서 실명을 씁니다. 익명을 사용할 경우 선 넘는 발언을 많이 할 것 같아서요. 매체 인터뷰에서도 실명을 걸어야 신뢰성을 줄 수 있다 생각해요. ‘관계자’, ‘핵심 관계자’ 등 이런 말 무척 싫어합니다. 기자들이 간혹 실명나가도 되냐하면 항상 실명으로 하라고 하고, 대신 학교 이름은 빼달라고 합니다. 학교로 항의 전화가 들어와 동료들이 힘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술집에서 안줏거리로 욕할 바에는 공개적으로 글을 쓰는 게 맞다 생각합니다. 그래서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는 전화도 오는데, 내가 뱉은 말은 책임질 테니 그 뒷감당은 본인이 하시라고 말합니다.
Q. 지난해 전교조와 실천교사모임은 ‘공교육 멈춤의 날’ 재량휴업일 지정을 징계하겠다는 이주호 교육부장관을 공수처에 고발했습니다. 선생님을 비롯한 246명의 교사는 같은 이유로 서거석 전북교육감을 ‘직권남용권리행사 방해죄’로 전주지검에 고발했고요. 선생님 행적에 법과 관련한 발빠른 대응이 많아 놀라는 일이 많습니다. 언제부터 법에 관심을 갖게 되셨나요?
대학교 때 학생운동 관련해 수배가 되면서 법 한 줄이 내 인생을 절단낼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이후 법이 달리 보이게 되었어요. 공소장이나 판결문, 이런 건 보통의 시민이 볼 일이 잘 없잖아요. 근데 제가 막상 이런 상황을 겪으니 내가 법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때부터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 지난해 서거석 전북교육감을 전주지검에 고발하는 정성식 교사 © 정성식 교사 제공
|
그리고 교육법이 폐지되기 전인 97년에 교육법전을 읽다가도 큰 충격을 받았죠. 교육법 제75조 3항 ‘교사는 교장의 명을 받아 학생을 교육한다’를 읽고서 말이죠. 87년 6월 항쟁이 끝난 지 1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우리교육 현실은 이렇구나 하며 개탄했습니다.
87년 6월 항쟁의 결과로 법에서 대통령 선거 주체가 ‘대통령 선거인단’에서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법 문구의 주어가 바뀌었죠. 그런데 교육법을 보니 교육계에서의 6월 항쟁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이라고 판단했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법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발령 이후에는 학교에서 부딪히는 하나하나의 사안에 대해 법적인 근거를 따져보게 되었어요.
제가 발령받고 얼마되지 않았을 29살 때, 교육지원청 단위 행사에 학교를 많이 동원했어요. 수업 결손까지 하게 하면서 말이죠. 그래서 교육청 주관 행사로 학교 수업이 얼마나 파행을 겪는가를 전부 수첩에 기록을 했어요. 학교 공문서에는 수업을 다 한 것처럼 콩도장 찍어서 결제를 받던 시절이었죠. 행사 동원으로 하지 못한 수업을 다 기록한 후 교육장실로 찾아갔어요. “교육청 행사 동원으로 수업을 못 했는데 나는 이렇게 공문서 위조를 했다. 나를 징계하라”면서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언론에 이 내용을 그대로 제보하겠다”고 했죠. 당시 전교조 지회장님과 제가 교육청이 할 수 있는 권한이 어디까지인지, 학습권을 어떻게 침해하고 있는지 등을 관련 법규정 등을 찾아보며 열심히 준비해 들어간 거죠.
Q. 패기와 열정이 넘치는 20대 신규교사셨군요. 실제 학교생활에서 법과 관련한 실천활동이 있으신가요?
학교에 오는 공문 중에는 법률안 검토 의견을 묻는 공문도 꽤 오는데 저는 의견서를 다 써서 보내요. 단체 회장할 때는 단체 공식 의견으로 보냈고, 그렇지 않을 때는 개인 의견이라도 써서 보내죠. 요즘은 온라인으로도 가능해 의안정보 시스템에 등록하고 있어요.
제 핸드폰에는 ‘법령’이라는 폴더가 있어요. ‘의안정보 시스템’을 비롯해 ‘어린이 보호구역 주차위반 신고’ 등 이 폴더 안에는 법과 관련한 앱들이 깔려있어요. 저는 이걸 '법생활'이라고 해요. 그냥 생활이죠. 법생활은 내가 알고 있는 법률적 지식이나 상식 이런 것들을 실생활에 적용하고 실천하는 것이라 생각해요.
▲ 정성식 교사의 핸드폰 속 '법령' 폴더 안에 있는 애플리케이션 © 현경희 편집실장
|
하다못해 저녁에 산책하는데 가로등이 깜빡거리잖아요. 그러면 저는 찍어서 바로 신고를 해요. 시민공원 운동기구에 페인트가 벗겨져 있어도요. 어린이 보호구역 불법주차는 제가 교사로서 더 민감하게 신고하는 부분이고요. 가로등도 그렇고 운동기구도 그렇고 누군가는 불편을 겪거나 안전에 위협을 당할 테고, 그렇지만 누군가가 얘기를 해주면 세금이 쓰여야 할 곳에 쓰이게 되죠. 그렇지 않으면 또 12월 돼서 보도블록만 바꿀 거란 말이죠.
그래서 이런 법생활은 시민으로서 나의 권리 찾기이죠. 법에 둔감하게 살수록 법은 민감하게 우리에게 말을 걸어와요. ‘법 없이도 살 사람’이 더 이상 자랑이 아니라는 거죠.
저는 제 책 <같이 읽자 교육법!>을 쓰면서 “법 없이도 살 사람이 아니라 모르고 산 사람이다”라며 제 자신을 먼저 인정하고 시작했어요. 왜? 초중등교육법에서 ‘교사는 교장의 명에 따라 학생을 교육한다’에서 ‘교사는 법령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학생을 교육한다’로 바뀌었는데 어디서도 가르쳐주지 않잖아요. 법을 예비교사 때도 안 가르쳐줘, 현직 교사가 돼서도 가르쳐주지 않아. 결국 그렇다면 나 몰라라 하고 조상 탓하고 살아야 되는가 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난 지금부터라도 법을 알아야겠다며 공부를 시작하고 책도 내게 되었죠.
Q. 지금 하신 말씀은 전교조 교권실의 김민석 선생님이 늘 하시는 말씀과 겹치네요.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말은 좋은 말이 아니다”라고
김민석 선생님도 저도 같은 생각일 거예요. 교육 운동을 포함한 모든 사회운동은 법 한 줄을 어떻게 바꾸느냐로 귀결된다고. 지난해 서이초 사건 후 관련 교육법이 바뀐 것도 그렇고요. 바뀐 법이 세상을 바꾸고 교육을 바꾸는 거잖아요. 그래서 교사로서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저는 날마다 법을 읽어요.
Q. 우리나라 교육법에서 우선 바꾸어야 할 부분은 무엇일까요?
전태일 열사가 노동법에 가졌던 관심만큼 우리는 교육법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 묻고 싶어요. 전태일 열사가 바꾼 노동 현실은 어마어마하죠. 지금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고요. 그런데 우리는 얼마만큼 교육법을 알고 있는가? 제가 제 선배들한테 노동법은 달달 꿰고 있으면서 교육법은 뭐 하나 알고 있냐고 따졌던 이유도 그런 이유예요.
우리의 본질은 노동자면서 교사잖아요. 교육과 관련한 어떤 법을 바꿀 거냐고 묻는다면 아는 게 있어야 바꿀 수 있지 않겠어요? 교육 3주체는 교사, 학생, 학부모라고 하잖아요. 그러면 주어여야 하잖아요. 그런데 우리 교육법의 주어는 다 교육부 장관, 교육감, 학교의 장이에요. 저는 이 체제를 바꾸는 운동을 하고 싶어요. 핀란드의 교육법은 주어가 피플(people)이 많아요.
우리 교육법에서는 교육 3주체라고 하면서 정작 3주체는 다 목적어예요. 대상이란 말이에요. 이 판도를 바꾸는 게 저는 ‘교육 개혁’이라고 생각해요. 87년 6월 항쟁도 결국 주어를 국민한테 주는 거였거든요. 교육도 너무 뜬구름 잡지 말자. 작은 거 하나부터 바꾸자는 생각이에요.
초중등교육법 제9조를 보면 학생 평가권이 교육부 장관에게 있어요. 이게 말이 되나요? 이게 일제고사 시행의 근거였잖아요. 교육부 장관은 뭘 할 수 있고, 교육감은 뭘 할 수 있다고 하는데 학생에 대한 평가에서 교사는 어느 자리에 있나요? 저는 이런 걸 현실에 맞게 뜯어 고치고 싶어요.
제가 읽어봤던 교육 관련 법만 해도 800개가 넘는데 그중에서 교사가 주어로 나오는 게 ‘교사는 법령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학생을 교육한다’ 이 문구 하나란 말이에요. 이게 대한민국 교사의 현실이죠.
Q. 그럼 이걸 바꾸기 위한 로드맵은 어떻게 돼야 할까요?
국회에서 알아서 바꿔주면 좋겠는데 알아서 누가 바꿔줄까요? 심지어 교사 출신 국회의원들이 겨우 국회 문턱에 들어가기 시작한 시점이죠. 법률상 교사에게 평가권이 없고, 명문화된 수업권이 없고, 교직원의 임무가 없고 등등. 크게 반발이 없는 선에서부터 하나하나 명문화하고 법을 개정해야죠. 저는 사실 싹 새로 썼으면 좋겠어요.
교권, 학생인권조례 등으로 서로 논쟁을 삼을 게 아니라 학생의 권리와 의무, 교사의 권리와 권한 등을 초중등교육법이나 교육기본법에 명시를 해서 논쟁을 비켜가면서도 실질적으로 해결했으면 해요. 이게 진영 간의 논리로 가면 해결되는 게 하나도 없어요.
늘봄, 방과후학교 등을 관련 법도 없이 2022 개정교육과정 총론에 한 줄 들어간 근거로 진행한다는 게 말이 되나요? 늘봄에 지금 예산이 몇 조가 들어가는데 관련 법적 근거 하나 없이 진행한다는 게 말이 안되는 일이잖아요.
학폭 가해 사실 생기부 기재가 다 법에 있다라고 알고 있는데 사실은 교육부 훈령에 있는 거예요. 상위법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교육부장관 명령인 훈령에 근거해 시행하고 있어요.
그래서 정치권에서의 역할이 중요하죠. 저는 어떤 정권이나 정파에 휘둘리지 않고, 국회에 간 사람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줬으면 좋겠어요. 정성국 의원이나 강경숙 의원, 백승아 의원이 대승적인 차원에서 이런 활동을 해줬으면 해요. 진영, 정파, 소속되었던 단체를 떠나서 우리나라 공교육을 위해서 말이죠.
Q. 선생님, 긴 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전국의 교사분들께 전할 말씀이 있으실까요?
요즘 방학 동안 뜸했던 선생님들의 고충 상담 전화가 개학과 동시에 다시 이어지네요. 오죽하면 저에게까지 도움을 요청할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돌이켜 보면 그만큼 우리 교단의 현실이 막막하고 고달프다는 반증인 것 같기도 해요.
상담 내용은 사연에 따라 제가 딱히 해결할 수 없는 일도 있지만 그래도 누군가 공감해주면 위로라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상담에 임하고 있어요.
오늘의 교단은 과도기라고 생각해요. 어렵고 힘든 일이 있더라도 '어떻게 된 교사인데' 이 말을 되짚어 보며 마음을 다잡으면 좋겠어요. 고충도 있지만 분명 그 속에 보람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