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 2년 차 새내기 교사의 죽음이 온 나라를 뒤흔든 지 1년이 되었다. 처음 집회를 제안한 선생님들조차 그리 많은 교사들이 모여 거대한 물결을 이룰지 몰랐을 정도로 교사들의 자발적인 의사표현은 강력했다.
매주 거르지 않고 11차례나 치러진 교사집회에는 연인원 50만 명 이상이 참여해 자발적 교사집회의 새로운 역사가 되었다. 그것은 교사들이 교육현장에서 부딪치는 어려움이 그만큼 크며 그 해결을 간절하고 절박하게 바라고 있다는 외침이었다.
학교 안의 ‘삶’에 주목하게 되다
대한민국에 태어나면 거의 대부분이 학생이 되고, 500만 넘는 학생들의 부모들이 있어 전 국민의 1/3 가까이는 교육과 직접 관련을 맺는다. 그만큼 국민생활에 밀접한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 교육문제는 학력 문제나 입시관련 문제가 아니면 거의 사회적 주목을 받지 못해 왔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그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은 어떤 환경에 처해 있는지, 이대로 가도 모든 부모들이 바라듯 아이들이 잘 자랄 수 있고, 행복해질 수 있는지 따위 문제는 진지하게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지난 5년간 사망한 학생이 800명, 사망한 교사가 200명이나 되었지만 그들 죽음은 개인문제로 치부되었고 제대로 된 기사 한 줄 나오지 않았다.
학교와 학원을 뻉뺑이 돌며 경쟁교육에 시달리는 아이들은 마음도 몸도 아프다고 절규하고, 그 아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정책적 지원은 주어지지 않은 채 우리 교육이 병들고 있는 동안 교사들은 온전히 홀로 그 아이들을 감당해야 하는 독박교육에 내몰리고 있었다. 견디고 견디다 절망의 벽에 부딪힌 교사들이 검은 점의 물결이 되자 비로소 사회는 성적과 입시만이 아닌, 학교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삶’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여전한 ‘절망의 벽’
정치권도 바쁘게 움직였다. 초단시간에 소위 교권 4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법은 최소한의 방향과 기준을 정하는 것일 뿐 그것이 실현될 수 있는 예산과 인력 등 정책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는 한, 종이 위 활자에 불과하고 단지 선언에 그치기 십상이다. 정치권은 그 후속 조치 마련과 추궁에 미흡했으며, 일부 추궁에도 불구하고 정책담당자들은 고시 하나 달랑 던져놓고 마치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보였다. 교권 4법 실현을 위한 예산은 제대로 책정조차 하지 않은 채 무려 1년에 5,333억이나 되는 예산을 쏟아붓겠다며 어느새 디지털교과서니 AI교육이니 하는 것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교권 4법은 호흡곤란 상태에 빠진 교육현실에 인공호흡기를 꽂는 응급조치에 불과한 조처다. 그마저도 정책적 후속지원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으니 변화와 개선을 요구했던 교사들이 “변한 게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아우성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아동학대 신고가 지금보다 제한되거나, 교사의 지도권이 더 강화된다고 교사들이 그렇게 외쳤던 ‘잘 가르칠 권리와 잘 배울 권리’가 정말 살아날 수 있을까? 서이초 선생님이 부딪쳤던 절망의 벽은 무엇이었을까?
서이초 사건의 뿌리
기실 서이초 사건은 우리 교육이 앓고 있는 깊은 병증이 가장 극단적이고 비극적 형태로 발현된 것이다. 1995년 5.31 교육개혁 이후 교사와 학교를 교육서비스 제공자로, 학생과 학부모를 교육상품 소비자로 간주하는 천박한 시장주의 교육관이 본격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일부 구매력 높은 학부모는 자신의 아이를 경쟁교육의 승자로 만들어달라는 소비자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했고, 학교는 ‘소비자는 왕’이라는 시장논리에 속절없이 무너져 왔다. 세상에서 사법의 세계와 가장 멀리 있어야 할 곳이 교육임에도 소비자 권리를 침해당했다 생각하는 이들에 의한 고소와 고발, 수사와 소송이 교육을 압도하는 ‘교육사법화’ 세상이 되었다.
교육 핵심주체인 교사가 존중받고 신뢰받지 못하는 곳에 배움과 성장이 설 자리는 없다. 수도권 대학 진학률로 교육성패가 결정되고 그에 진입하지 못하는 무수한 아이들은 그림자 취급을 받는 교육, 그래서 성적이 좋으면 좋은 대로 경쟁압박에 시달리고 성적이 낮은 아이들은 배제와 소외에 상처받는 교육 시스템 속에서는 어떤 아이도 건강하게 성장할 수 없다.
특히 2년 반 동안 아이들이 고립과 방치 속에 있었던 팬데믹이 아이들에게 남긴 상처는 상상 이상이다. 국가와 전 사회가 나서 이 아이들이 앓고 있는 고통 해결에 합심해도 부족한 마당에 가장 강력한 교육 시장주의자인 현 교육부장관은 시장주의 교육정책을 남발하며 신이 나 있다. 당연히 정책해법이 나올 리 없고, 이 모든 짐은 교사 개인이 져야 하는 현실에서 서이초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검은 물결이 되어 다시 외쳐야 한다
그러니 우리는 아동학대신고 제어에서 머무를 수 없다. 아이들이 아프니 교사도 아프고, 아이들이 죽어가니 이제 교사마저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암에 걸려 배 아픈 환자에게 소화제나 진통제는 잠시 통증을 덜어줄 수 있으나 치료제가 될 수는 없다. 문제는 우리 교육이 암에 걸린 중환자라는 인식이 정치권과 교육당국에는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이제 서이초 사건 1년을 맞아 우리는 이 비극의 진짜 해법이 무엇인지 찾는 일에 나서야 한다. 그리고 더 거대한 검은 점의 물결이 되어 다시 외쳐야 한다. 아이들을 살리고, 교사를 살리고, 교육을 살려내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