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여름, 전국 교사들은 서이초 청년교사의 안타까운 죽음을 추모하며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교사 생존권 보장’과 ‘공교육 정상화’를 외쳤다. 11차례의 전국교사집회에 연인원 80여만 명의 교사가 모인, 대한민국 교육 역사상 유래 없는 광경이 광장 위에 펼쳐졌다.
<교육희망>은 전국교사집회 또는 지역교사집회에 참여한 조합원 중 집담회 참여를 희망한 조합원 16명을 7월 6일 전교조회관에 초대하여 집담회를 열었다.
▲ 집담회에 앞서 묵념을 하는 참가자들 © 송승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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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희 사회자
안녕하세요? 집담회 사회를 맡은 5차 교사집회 사회자 김지희입니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한자리에 모이기가 쉽지 않은데 집담회 참가 신청을 해주셔서 감사하고, 자리를 만들어 주신 교육희망에도 감사드립니다. 며칠 후인 7월 18일은 서이초 선생님이 돌아가신 지 1주기가 되는 날입니다. 먼저 서이초 선생님과 우리가 알지 못한 수많은 선생님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다시 한번 기억하고 추모하는 의미에서 묵념으로 집담회를 시작하겠습니다. 다함께 묵념!
오늘 이 집담회에서는 교사집회 참여 동기, 기억에 남는 순간, 현장의 변화와 이후 전교조의 과제 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총 5가지 질문을 드릴 예정이고 답변에 대한 키워드를 스케치북에 적어주시면 됩니다. (키워드는 #○○○으로 표기)
이야기 1_ 교사집회에 참여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요?
안지혜 #엎지마!
저는 3차 집회 사회자와 9․4집회 집행부 일을 했어요. 처음엔 검은점으로만 참여하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2차 집회 후 한 주 쉬자는 의견이 나오면서 3차 집회가 엎어졌어요(취소되었어요). 그때 참 실망스럽고, 황당한 마음도 컸어요. 그래서 총괄할 사람이 없다길래 교사들의 목소리를 이어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사회를 맡았어요. 이후 9.4집회 때도 엎자는 분위기가 있었죠. 내가 아니더라도 누구라도 당연히 진행할 테지만 집회가 엎어지는 게 두렵고 싫어서 진행팀, 언론팀, 홍보팀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었어요.
이기백 #1정 연수장에서의 분노
저는 충북 버스 총괄과 홍보팀 등에서 활동했어요. 서이초 사건이 있고 3일 뒤에 1정 연수를 받았는데 연수자들이 서이초 선생님과 다들 비슷한 또래라서 1정 분위기는 슬프고 침체된 분위기였죠. 그런데 충북교육감이 연수장에 와서 서이초 사건을 언급하며 “학교에서 힘든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학부모들을 상대할 때 눈에 힘을 주어야 한다”고 연설을 시작했고, “교사라면 학생들을 대할 때 ‘예비 살인자’라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며 망언을 했어요. 이 말을 듣자 큰 분노가 일었고,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집회 참여를 결심했죠. 교육감의 망언 이후, 청주 버스가 1대에서 2대, 3대... 점점 늘어났어요.
김유리 #버스가 부럽다
저는 제주지역 비행기 담당과 지역집회 사회자를 했어요. 일을 하게 된 시작은 매주 서울집회에 어느 어느 선생님이 참여한다는 소식을 들으며 ‘함께 더 많이 올라갈 수는 없을까?’ 그 생각부터였어요. 다른 지역은 버스 한 대 40명, 개인당 1만 원 정도만 내면 되지만 7, 8월 성수기라 제주에서는 항공료만 20만 원 정도가 들거든요. 개인적으로 올라가시는 선생님들이 대단하다 생각되었어요. 그래서 교육청 메신저로 함께 참여할 선생님들을 모았고, 이후 인디스쿨에서 경비 지원도 받았어요. 7차 9.2집회 때 제주에서 200명이 참여했어요. 대단한 인원이었죠. 항공료 정산하는 데 일주일이 넘게 걸렸지만, 그 과정에서 선생님들을 많이 알게 되었고, 그분들과 9.4제주집회도 함께 준비할 수 있었어요.
최선정 #청계천 보신각
7월 22일 청계천에서 열린 전교조 주관 추모집회와 보신각에서 열린 1차 교사집회에 참여했습니다. 당시 1차 집회에 참여한 5천여 명 교사들의 ‘추모 열기’와 ‘분노’가 심상치 않다는 게 확 느껴지더군요. 선생님들의 목소리가 잘 전달될 수 있도록 뭔가 도움되는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운영팀에 참여했습니다.
이야기 2_ 교사집회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신다솔 #교육감의 뻘짓
부산 버스 담당을 맡았고, 이 과정에서 교사들을 많이 만났어요. 부산은 교육감이 ‘기초학력 보장’ 명목으로 일제고사를 강요하고 교육현장과 괴리된 아침체인지 같은 정책들을 밀어붙이고 있어요. 버스에 탄 선생님들이 ‘교권침해’는 학부모 민원뿐 아니라 ‘교육청’이 하고 있다는 의견이 많았어요. 그래서 9.4 부산교사집회 전체 총괄을 하게 되었고 1부는 추모, 2부는 교육청에 바라는 교사들의 요구를 담아 진행해서 선생님들로부터 큰 공감을 얻었어요.
문수경 #간디학교
저는 8차 발언자와 9.4집회 운영팀 활동을 했어요. 교사집회에서 노래 ‘꿈꾸지 않으면’을 합창할 때마다 작사가 양희창 선생님이 떠올랐어요. 9.4집회 때 처음 운영팀으로 참여해 양 선생님과 간디학교 학생들을 무대 위에서 공연하도록 기획하고 실행한 것이 뿌듯하게 느껴져요. 반면에 모 교육감 섭외는 실패했었죠. 지킬 것이 많은 사람은 나서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고, 징계 위협이 있는 가운데서도 잃을 각오를 하고 함께해 준 선생님들이 감사하고 든든했어요.
백성동 #버스 50대 모으기
저는 전국 버스 총괄을 맡았는데 9.2집회 참여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광주 버스 50대를 갑자기 구해야 했어요. 버스 20대가 넘어가니 계속 연락하던 버스 회사에서 추가가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여기저기 교사 채팅방에 도움을 요청했더니 샘들이 인근 장성, 담양 버스회사를 섭외해주어 8군데 지역에서 광주 버스 50대가 출발할 수 있었어요. 광주 공동체의 힘을 강하게 느꼈던 날이었죠. 9.4집회는 징계 위협이 컸기 때문에 버스를 모으는 과정도 감동이었어요. 그리고 제가 전국 버스 총괄을 맡았기에 광주 1번 버스가 ‘전국 1번 버스’라는 생각에서 나오는 자부심도 컸어요.
김유리 #3분의 1
9.4 제주 집회 기획단이 10명이었어요. 가장 큰 고민이 피켓 인쇄를 몇 장 할까였는데 구글 신청이 700명이라 1,000장을 주문했죠. 그런데 집회 시작도 하기 전에 동이 났어요. 사회자로 무대에 올라 약간 울먹이며 “저희가 선생님들을 믿지 못했습니다. 피켓을 천 장밖에 준비하지 못했는데 여기 2천 명이 모였습니다”라고 말하며 같이 감동을 받고 힘을 냈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제주 지역 교사가 6,000명인데 3분의 1 이상이 참여한, 제주 역사상 가장 많은 교사가 참여한 집회였어요.
강규현 #우회와 직진
저는 세종 지역 9.4집회 운영팀 활동을 했어요. 교육부가 9.4집회 징계 얘기를 하면서 우리 지역도 분위기가 무척 삼엄했어요. 세종시 집회 운영 줌 미팅에서 “징계 얘기가 나오니 그만하고 싶으면 그만하라”는 이야기가 나왔죠. 베이비 조합원으로 마음이 위축돼 그만둔다고 손들고 싶었지만 다들 손을 안 들길래 가만히 있었어요. 그런데 학교에 갔더니 동학년 선생님들의 지지와 응원 덕분에 힘을 낼 수 있었어요. 9.4집회를 무사히 마무리한 후 ‘결국 교육부는 숫자의 힘을, 단합의 힘을 이길 수 없구나! 이게 민주주의구나!’라고 깨달으며 뿌듯해 했던 기억이 납니다.
안지혜 #사실 정치 맞아요
여기 있는 분들을 교사집회 전에는 사실 한 분도 몰랐어요. 우연히 모였고, 전교조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모였는데 전교조 조합원이라는 걸 알게 된 상황이 감동적이었어요. 엎어지려는 9.4집회를 하자고 했기에 나를 믿고 참여한 선생님들이 징계를 받을까봐 모든 국회의원들에게 연락하는 것이 아침 루틴이었어요. 국회의원들이 집회에 참여하면 교육부가 징계를 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죠. 드디어 9월 4일 아침, 국민의힘 소속 의원 등등 해서 많은 곳에서 연락이 왔어요. “어디로 가면 됩니까?”라면서요.
“정치하지 마세요”라는 말이 집회가 진행되는 중에 많았죠. 하지만 집회를 하고, 정당에 교사들의 요구를 알리고, 법 개정을 요구했던, 우리가 했던 그 모든 행위가 정치였어요. 우리가 정치를 더 했어야 ‘딱 맞는 대책’이 나왔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장은정 #전교조 혐오를 만나다
저는 2차 지역버스 3, 4차 교사집회 안전팀 활동을 했어요. 1차 교사집회 후 언론에서 같은 날 있었던 전교조 추모행동 집회 사진을 기사에 썼다는 것으로부터 전교조 혐오가 시작되었어요. 전교조의 의견이 공평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죠. 교사요구 사항이 ‘법 개정’으로 정리되는 과정에서 온라인 공간에서 같은 의견을 내도 “너는 전교조냐?”고 의심과 공격을 받았어요. ‘9.4 공교육 멈춤의 날’이 논의되는 상황에서 어떤 이들은 “휴업을 요구하고 집에 있겠다. 집회에 나가서는 안 된다. 전교조처럼 해서는 안 된다. 피해가 나면 전교조는 나몰라라 한다. 전교조 해직교사는 힘들게 산다. 전교조가 너무 싫다” 등등 이런 표현을 하며 9.4 집회를 엎으려 했죠. 뿌리깊은 전교조 혐오로 많은 조합원들이 상처를 입었어요. 하지만 9.4 집회에 징계를 각오하고 얼굴을 가리지 않고 참여한 조합원 선생님들을 본 감동이 아직 기억에 남아있어요.
이야기 3_ 교사집회를 거치며 깨달은 점은 무엇인가요?
▲ 이태근 조합원이 쓴 키워드 '반짝반짝 검은점' © 송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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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근 #반짝반짝 검은점
저는 9, 10차 진행팀과 재정팀에서 활동했어요. 집회를 준비하는 입장에서 보면 집회 진행이나 구호가 시원시원한 느낌을 주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전교조 조합원들이 많았어요. 반짝반짝 검은점 속 전교조 조합원들의 반짝임을 직접 보는 경험을 했었죠.
강규현 #딕션과 악센트
집회 발언자들이 준비된 연설자가 아닌데도 언변이 수준급이었어요. 안지혜 선생님이 3차 집회 사회자로 무대에 섰을 때, 조용하게 말하다가 순간 힘주어 말하니 사람들이 크게 환호하는 것을 보고 수업에 써 먹어야겠다 싶었죠. 이후 제가 세종 지역집회 무대 설 때 크게 도움이 되었어요.
문수경 #해직교사가 되는 길
저는 2017년에 학부모의 교권침해로 송사를 겪고, 가해 학부모가 100만 원 벌금을 내는 것으로 일이 정리되었어요. 절박한 과정에서 교육청의 불합리한 처분을 보며 교사를 지켜주는 곳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죠. 이미 죽은 목숨이었는데 전교조 교권상담실이 함께 송사를 해주어 저를 살려줬어요.
교사들이 스스로 쟁취해야 하는 노동3권 중 ‘단결권’은 89년 전교조 결성 때 1500여 명의 해직교사가 길을 열었고, ‘단체교섭권’은 진보교육감 시대가 열려 확보되었어요. 9.4 집회는 교육부의 징계위협이 있었지만 ‘단체행동권’이 없는 교사들이 단체행동을 통해 무력화시킨 의미있는 사건이라 생각해요. 제가 개인적으로 2017년 교권침해 사건을 겪으며 명퇴하거나 의원면직하지 않고 단체행동권을 쟁취해 놓고 교직을 떠나야겠다 생각했기에, 작년 9.4집회 앞두고 해직교사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운영팀에 참여했어요.
김지희 #벽
선생님이 좋아서 교사가 되었고, 진보적인 성향이 아니었지만 초임 때부터 전교조 샘들과 재미있게 놀면서 조합원이 되었어요. 그런데 집회 과정에서 전교조에 대해 편견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느껴 뭔가 위축되는 마음이 있었어요. 어떻게 하면 교사들에게 전교조가 하는 일을 모든 교사들에게 알릴까 고민하게 되었어요.
이야기 4_ 교사집회 후 바뀐 것과 바뀌었으면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안아름누리 #기준과 학교 변화
저는 9.4집회 집행부에서 일을 했어요. 학교에서 학생지도할 때 혼란스러울 때가 많아요. 저와 똑같은 방식의 학생지도를 한 선생님이 아동학대 신고를 당하는 것을 보며, 나는 운이 좋은 건가라는 생각을 했죠. 그럼 나는 ‘학생지도를 어떻게 해야 하나’하며 혼란스러웠어요. 작년 집회가 거듭될수록 내가 했던 생활지도 방식이 맞았구나 하며 명확한 학생지도 기준이 생겼어요. 그래서 학교에서 학생지도할 때 안정감이 생겼고요. 이렇게 내 마음가짐은 바뀌었지만, 학교는 달라진 게 별로 없더라구요. 법은 바뀌었지만, 학교에서 어떻게 실행할지 함께 논의하고 공동 대응하는 문화가 만들어지면 좋겠어요.
백성동 #생각보다 없는 느낌
“학교가 바뀐 게 없다”, “선생님들이 무기력하다”는 이야기를 여전히 듣고 있어요. 하지만 작년 교사집회를 거치면서 이런 문제들이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교육제도와 정책의 문제라는 인식이 생겼고 이걸 풀어가는 과정에서 교사들의 힘도 느낄 수 있었다 생각해요. 하지만 여전히 현장에서 힘들어하는 교사들이 많기에, 체감할 수 있는 변화가 있어야 된다고 봐요.
이소희 #-10+10 #교육당국 교권침해
저는 3차 때부터 운영팀 활동을 했어요. 교사집회가 시작되자마자 내가 사랑하는 전교조가 온갖 공격을 받으니 밥이 넘어가지 않았어요. 지금은 돌아왔지만, 당시 체중이 10kg가량 빠졌어요. 9.4집회 때 징계위협을 뚫고 참여한 검은점들, 조합원 선생님들. 여의도의 냄새, 공기, 선생님들의 표정이 지금도 기억이 나요. 9.4집회는 교사들의 연대를 확인하고 전교조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했던 날이라 생각이 들어요.
교육부와 관리자는 교권침해 문제를 악성민원을 하는 학부모, 교사를 공격하는 학생들과 교사들 사이의 대립구도로 만들려고 해요. 하지만 저는 교육당국이 저지르는 교권침해가 교사를 가장 괴롭히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이 부분이 제대로 다뤄지고 처벌할 수 있는 체계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강규현 #각자도생
제도가 바뀌어도 내가 뭔가를 하지 않으면 바뀌지 않는 게 학교라 생각해요. 지금 근무하는 학교는 전교조 조합원이 많은 학교이고 도와주지 못해 서로 안달을 낼 정도예요. 공동체가 살아있는 학교문화를 경험하고 있죠. 저는 전교조에 따뜻한 마음을 가진 분들이 많이 모인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각자도생하지 않는 학교를 위해서는 전교조 조합원이 많아지는 것이 중요해요. 그리고 따뜻한 교사들을 전교조에 많이 캐스팅하면 좋겠어요.(웃음)
전승혁 #교사의 힘
저는 집회 과정에서 6개 교원단체 협의회에 전교조 대표로 참여했어요. 집회에 나오는 것보다 학교에서 내 목소리를 내고 불합리에 맞서는 것이 더 힘들다 생각을 해요. 학교에서 공동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집회의 힘이 이어지지 않고 우리 일터는 여전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편에서는 ‘교사들은 약하고 보수적이다’며 교사집회를 평가절하하는 이야기도 있죠. 하지만 교사집회가 1, 2차로 끝나지 않고 12차까지 진행되는 모습을 보면서 ‘교사들은 마음먹으면 이만큼 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느꼈어요. 학교 안 각자도생 모습에 실망하면 할 수 있는 게 없을 것 같아요. ‘교사의 힘’을 믿었으면 합니다.
이야기 5_ 전교조에 바란다
이기백 #T→F
저는 MBTI에서 ‘F’(감정형)가 100%예요. 전교조 활동을 하기 전 바깥에서 볼 때, 전교조는 너무나 ‘T’(이성형)였어요. 교사들의 속상하고 슬픈 마음을 공감하고 어루만져주기 보다는 “이것은 교육부 OO정책 때문에 고통을 받는 것이며, 이렇게 알고 이렇게 행동하면 된다”고 설명을 해요. 그동안 훌륭한 주장으로 실질적인 변화를 이뤄낸 것이 많았죠. 하지만 이번 교사 담론은 T에서 F로 흘러가며 형성되었어요. 전교조가 선생님들이 느끼는 불안과 두려움, 공허함을 더 공감하고 반응하는 조직이 되었으면 해요.
이소희 #관상은 과학이다
사람을 만났을 때 나와 어울릴 것인가 말 것인가는 3초 안에 결정된다고 봐요. 전교조의 가치만 그대로 남기고 겉으로 보이는 모든 것을 다 바꾸는 것에서 새로운 한발을 떼는 시작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김민영 #현장요구+단체행동
집회과정에서 탈퇴 조합원들을 만났는데 “전교조의 주장이 와닿지 않았다”고 전교조에 서운했던 점을 이야기하시더군요. 교사집회를 통해 확인한 것은 현장의 요구와 단체행동이 만났을 때 얼마나 많은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확인했다는 점이에요. 교사들의 힘겨움을 밀착해서 파악하고, 체계적인 과정으로 힘있게 단체행동까지 나아가면 좋겠어요.
이동규 #오프라인의 힘
온라인 상 여론이 큰 영향력이 있지만 그것이 다가 아님을 알게 되었어요. 9.4집회가 엎어지려고 할 때, 개인적으로 집회를 하자는 연락을 많이 받았어요. 자발적으로 참여한 원주버스 담당자 중 알고 보니 12명 중 11명이 조합원, 강원집회 운영팀도 9명 중 8명이 조합원이었어요. 몰랐는데 정말 곳곳에 조합원들이 다 계셨어요. 전교조가 오프라인 힘이 정말 강하다는 것을 느꼈죠. 잘하는 것을 더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해요.
김지희
서이초 선생님이 돌아가신 후 1년이 지났습니다. 오늘 집담회는 뜨거웠던 작년 검은점의 연대와 그 속에서 조합원들의 존재를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전교조가 나아가야 할 방향도 생각해보는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현장은 바뀐 것도 많지만 아직 바뀌어야 할 것도 많습니다. 그 속에서 전교조와 조합원들이 할 역할을 집단지성으로 함께 풀어나가길 바라며 집담회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연결 기사 보기 : [포토] 전국교사집회 속 전교조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