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꽃을 든 청소년 프로젝트 활동을 하는 학생들 © 박범철 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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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는 동작구에 위치한 남자 사립고등학교이다. 인근에는 국립현충원이 자리하고 있어 시험이 끝나거나 봉사활동시간이 필요할 때면 자주 찾아 창의적 체험활동을 진행했다. 특별히 의미 있는 활동이라기보다는 학교에서 가깝고, 코로나19 기간에도 인원 제한이 없는 넓은 녹지 공간이라 단체활동으로 적당했다.
학생들과 별다른 고민 없이 다녀오다보니 현충원이라는 장소가 무슨 연유로 조성되었으며 누가 어떤 이유로 안장되었는지에 대하여도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동작구는 현충원 이외에도 한국전쟁과 관련한 장소가 곳곳에 산재해 있지만 제대로 교육활동에 활용되고 있지는 못하였다.
그러다 혁신교육지구 교사분과(分科) 활동을 통해 마을주민들과도 접촉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동작구 중등 ‘마을 교과서’ 작업과 ‘마을탐방 프로그램’에도 참여하게 되면서 마을을 달리 보게 되었다. 그리고 학교 안에서 혼자 힘으로는 부족했는데, 혁신교육지구 활동 선생님들과 함께하는 활동들이 하나하나 쌓여 마침내 지역사회 연계 청소년 사회참여 활동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런데 12개 지역교육청과 25개 자치구가 서울시교육청과 함께한 혁신교육지구 사업은 오세훈 서울시장이 취임하면서부터 위기가 찾아왔다. 2023년 서울시의회는 서울형 혁신교육지구 예산 165억 원 전액 삭감을 포함하여 학생의 수업과 건강, 안전과 직결된 서울시교육청 예산 총 5,688억 원을 삭감했다. 서울시 혁신교육지구 예산 0원의 결과는 10여 년간 축적되어온 혁신교육지구와 민관학 거버넌스를 붕괴시켰다. 2023년부터 시작된 미래교육지구 사업에 대한 실망감은 참여 의지 부족으로 이어졌지만 교사분과(分科) 선생님들과 그동안 함께해 온 끈끈한 관계맺음과 서로 간의 신뢰는 혁신교육지구 사업 종료 이후에도 이어졌다.
2022년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하여 경문고등학교 학생자치회 사업으로 출발한 <꽃을 든 청소년 프로젝트>는 지역사회 주민 1000여 명의 서명을 받아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에게 전달하는 청소년 사회참여 활동으로 이어졌다. 청원 내용은 ‘전쟁과 관련한 공간이 많은 동작구에 평화를 염원하는 공간을 조성해 주세요.’라는 민주시민 캠페인 활동이었다.
한국전쟁 중에 총을 들고 싸우다 전사한 학도의용병에 대한 추모행사를 전쟁 대신 평화를 염원하는 학생들의 목소리를 담아 총 대신에 꽃을 들고 평화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지역사회 연계 사회참여 활동으로 만들었다. 서울시교육청도 취지에 부응하여 2023년 청소년 지역사회 연계활동 예산을 지원하였으나 이것만으로는 <평화의 조형물> 설치를 위한 비용 마련이 턱없이 부족했다.
▲ 경문고에 있는 <평화의 조형물> © 박범철 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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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이번에는 마을 주민들이 기꺼이 함께 움직였다. 평화의 조형물 제작을 위한 크라우드 펀딩에 마을주민, 이웃 학교 학생들, 지역사회 곳곳에서 십시일반으로 참여하여 마침내 평화의 조형물 제작을 할 수 있었다. 2023년 11월 3일 동작관악지역 10개 학교 학생자치회의 이름으로 흑석동 학도의용병 현충비 옆에 지역사회와 함께한 청소년 사회참여 활동의 결과물로 제94회 학생의 날 행사 <평화의 조형물> 제막식을 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동작구 <평화의 조형물>은 제막 행사 이후 경문고에 고이 모셔져 있다. 동작구청이 기부채납 등과 관련한 서류 제출이 이뤄졌음에도 해당 공원 부지 사용 허가 등을 아직까지 해주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에도 세계 곳곳에서는 전쟁이 일어나 여성, 어린이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고통받고 있다.
올해는 동작관악교육지원청 산하 60개 학생자치회의 이름으로 아니 더 나아가 서울 소재 600여 개 학교 학생자치회의 이름으로 11월 3일 학생의 날을 맞이하여 청소년 사회참여 활동으로 전쟁의 기억이 서려 있는 공간을 평화의 공간으로 바꿔 나가려는 노력을 하려고 한다.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들이 주도하는 활동을 넘어 지역사회 주민들과 연대하여 앎의 공간과 삶의 공간을 일치시키는 사회참여 활동을 통해 삶의 주체로 청소년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함께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