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소영 칼럼] 울고 웃고 꿈틀대며 살아가기

정소영 교사 | 기사입력 2024/06/21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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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영 칼럼] 울고 웃고 꿈틀대며 살아가기
작은 변화 하나를 만들기 위해 끝없이 희망하며 행동한 사람들을 떠올려 본다
살아있는 나를 의식하며, 끊임없이 반응하고 희망하며 꿈틀꿈틀대려 한다
정소영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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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4/06/21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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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변화 하나를 만들기 위해 끝없이 희망하며 행동한 사람들을 떠올려 본다
살아있는 나를 의식하며, 끊임없이 반응하고 희망하며 꿈틀꿈틀대려 한다

▲ 정소영 교사     

 

오늘 하루도 학교에서 정신없이 보내며 몇 번씩 일희일비했다. 이만큼 나이 먹었으면 어떤 일에도 마음에 잔잔한 파문 정도 일었으면 좋겠는데, 작은 일에도 내 마음은 큰 파도가 휘몰아친다. 특히나 울그락불그락하며 화를 낸 날이면 스스로 조금 부끄럽다.

 

그러다 저녁, 다니카와 슌타로의 시 ‘산다’를 만났다.

 

산다는 것

지금 살아 있다는 것

울 수 있다는 것 

웃을 수 있다는 것 

화낼 수 있다는 것

자유라는 것

 

많이 웃고, 가끔 울고, 자주 화내고, 그렇게 종종거리며 살아온 순간들이 살아 있어서 할 수 있는 일로 다가오는 순간이다. 다행이다. 살아 있어서. 다행이다. 화낼 수 있어서.

 

요즘 가장 크게 화를 냈던 일은 에어컨 때문이었다. 6월 10일, 때 이른 폭염에 열혈 10대 학생들도 기운이 쭉쭉 빠지는 날이었다. 우리 학교는 ‘에너지 관리 위원회’의 결정 사항을 지키느라 에어컨을 3~4시간만 가동하고 철저하게 통제했다. 교실은 물론이고 교무실과 급식실, 청소 노동자 휴게실, 방과후 자기주도적 학습실마저 정해진 시간 외엔 에어컨이 가동되지 않았다. 꼭대기 층인 5층 교실은 30도가 넘어갔다 한다.

 

‘공교육 기관인 학교가 이게 뭔가? 학생들에게 학원이나 스터디카페에 가서 공부하라고 해야 하는가?’하며 울화통이 치밀어 올랐다. 화가 난 사람은 나만이 아니었다. 학교의 많은 구성원들이 화가 났고(확실히 교육 ‘가족’이다!), 여러 방식으로 의견을 표현했다.

 

그러자 다음날부터 에어컨 가동 시간이 확 늘어났다. “아! 살만하다”하는 기쁨의 말과 함께 ‘그런데 고작 에어컨 문제로 이렇게 화를 내면서 살아야 하는가?’하는 자괴감이 몰려왔다.

 

며칠 후, 교육희망 기사를 보니 취업예정자가 범죄경력조회 서류를 직접 인터넷으로 발급받아 제출할 수 있게 되었다는 소식이 있었다. “오! 신난다.”

 

학교에서는 기간제교사는 물론, 단 1시간을 강연하는 강사도 반드시 성범죄·아동학대 범죄경력조회를 거쳐 모셔야 하는데, 이게 교사들의 업무가 되어 채용 업무를 맡은 선생님을 엄청나게 괴롭혔다. 그런데 이제 드디어 취업예정자가 직접 인터넷으로 증빙서류를 발급받아 제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작은 변화 하나 만들기 위해 전교조가 수년 동안 얼마나 목소리를 내왔던가? “좋다!.”

 

교사가 해선 안 될 채용 업무가 완전히 교사의 손을 떠난 것도 아니고, 고작 범죄경력조회 서류 인터넷 발급이 가능해진 것뿐인데 이렇게나 좋다.

 

이럴 일이냔 말이다. 이렇게 사소한 일에 울고 웃고 화낼 일인가 말이다. 그런데 그게 살아 있어서 가능한 일이라니. 사소한 일에 울고 웃고 화냈던 자신을 다독여 본다. 그리고 작은 변화 하나를 만들기 위해 끝없이 희망하며 행동한 사람들을 떠올려 본다. 그 사람들의 열기와 좌절, 환희를 짐작해 본다.

 

고작 범죄경력조회 인터넷 발급 하나 가능해진 데에도 많은 이들의 분노와 눈물, 웃음이 어려 있다는 걸 안다. 사실 학교 안 곳곳에 에어컨을 설치하고 운영할 수 있는 데에도 실로 많은 이들이 울고 웃고 화낸 역사가 있다. 거슬러 올라가면 근무조 없는 온전한 방학에도, 사전 구두 결재 없이 올리는 연가에도, 친환경 무상급식에도, 자유로운 복장과 머리 모양에도, 많은 이들이 울고 웃고 화낸 역사가 있다. 이렇듯 끝없이 꿈틀대며 살아온 사람들이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변화를 이뤄왔다.

 

그러니 현실은 참담할지라도 살아갈 일이다. 1정 연수를 받는데 과제물을 개떡같이 내지 말라고 연수원 담당자가 모욕적인 말을 던지더라도. 신박한 ‘을질’ 방지 조례를 만들어 교사의 입을 틀어막을 시도를 하더라도. 이주호 장관이 던진 디지털 교과서 전면화 정책이 또 어떤 고통을 불러올지 암담하더라도. 화를 내고, 울고, 웃으며 살아갈 일이다.

 

오늘도 지구는 더울 것이고, 학교에선 바쁜 일과로 꽉 찰 것이다. 그 사이사이 가깝고 먼 곳에서 크고 작은 자극이 올 것이다. 그 자극에 나는 가만히 있지 않고 웃고, 울고, 화를 내며 꿈틀꿈틀대려 한다. 살아있는 나를 의식하며, 끊임없이 반응하고 희망하며 꿈틀꿈틀대려 한다. 특히 교사를 괴롭히고 교육을 망치는 일들에는 보다 살아있는 반응으로 응답할 수 있기를 자신에게 부탁해 본다.

 

* 덧 : 다니카와 슌타로의 시 ‘산다’ (-> 시낭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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