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가 만든 마른하늘에 날벼락’ 이 말이 지금을 두고 하는 말 같다. 주말을 앞두고 박순애 장관이 발표한 만5세 초등 취학 이야기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아무리 무지가 나은 말이라고 생각하려 해도, 유치원 현장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있는 교사로서 너무 화가 났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또 교육부의 수장이라고 하는 사람이 어떻게 아이들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조차 못하고 있을까? 잠 못 이룰 만큼 화가 나기도 했고, 유아교육을 얼마나 우습게 알았으면 이럴까라는 생각에 분노가 치밀었다. 그러다 아이들을 생각하니, 서럽기까지 했다.
나는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현장 교사로 15년을 지내왔다. 경력이 어느 정도 쌓인 지금도 매일매일 아이들을 통해 배우고 있는 게 있다면, 유아기가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지, 유아들의 삶과 행복을 생각할 때 놀이가 얼마나 중요한가라는 것이다. “다른 건 다 잊어도 선생님 이것만은 잊으면 안 돼요.”라고 말하기라도 하듯… 아이들은 끊임없이 몸을 움직이며,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기도 하고, ‘놀이’로 자신들만의 세상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며 교사에게 배움을 준다. 어른들이 아무리 노력하고 애써 봐도 아이들의 놀이를 따라 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유아들만이 가지고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걸 알기에 만 5세 아이들을 외면한 지금 상황이 아프기까지 하다.
윤석열 정부는 유아교육이 왜 중요하고, 유아기의 발달이 평생을 살아가는 데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아무리 대통령이라고 할지라도, 유아의 삶에서 1년의 놀 시간과 권리를 빼앗을 수는 없다. 만5세와 만6세는 단편적인 경제 논리로만 보았을 때는 그저 숫자 1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만5세와 만6세는 단순히 숫자1의 차이가 아니다.
유치원 또는 초등 저학년의 자녀를 둔 부모라면, 또는 현장에서 유아 및 초등 저학년을 만나고 있는 교사라면 누구나 이 말에 동의할 것이다. 놀이가 중심이 되는 유치원 생활과 초등학교 생활은 비록 기간으로는 1년이지만,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할 만큼 많은 차이가 있다.
만 5세 유아는 놀이과정 중심 유아교육과정의 완성 시기다. 2019년 정부는 우리나라 만 3세에서 만 5세까지 모든 유아들에게 충분히 놀이를 경험함으로써 놀이과정에서 유아가 몰입과 즐거움을 얻고 그 속에서 자율성과 주도성을 키우도록 하는 교육과정으로 ‘국가수준의 공통 교육과정’을 만들었다. 놀이의 주인인 유아들에게 놀이를 온전히 돌려주고, 진짜 놀이의 주인으로 살아가도록 교사, 학부모, 교육행정당국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할 일이다.
만5세 유아들은 놀이를 스스로 만들기도 하고 여러 명의 친구와 함께 놀이를 하면서 창의력을 기르고 협력을 하면서 배우고 발달한다. 그리고 관계를 배운다. 만 5세는 그야말로 폭발적으로 놀이를 하면서 충분한 발달과 성장을 한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놀이를 통한 유아교육과정의 완성 단계인 1년을 송두리째 빼앗으려 하고 있다. 만5세 유아들은 충분히 놀아야 하고, 충분히 건강해야 하고, 충분히 행복해야 한다.
만5세는 아이들이 주도성을 갖고 놀이에 몰입하면서 힘을 기르는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이런 힘을 기르는 시기를 거쳐야만 만6세부터 이어지는 초등학교 생활을 즐겁게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은 이미 학부모들을 통해, 교사들을 통해 무엇보다도 만 5세 유아들을 통해 입증된 사실이다. 지금도 법으로 만5세 조기취학을 허용하고 있지만, 조기취학을 바라는 학부모와 유아는 매우 극소수다.
그런데 현 정부가 그 차이를 단순한 경제 논리로 본다는 것은 교육이 얼마나 중대한 사안인지를 모르고 하는 무지한 처사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결국 돈 앞에서는 유아의 삶과 행복은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유아기는 모든 발달의 기초를 다지는 시기이고, 유아기에 어떠한 환경에서 무엇을 경험했느냐에 따라 지능이나 성격 형성에 많은 영향을 준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또한 유아기는 발달에 있어 매우 민감한 시기이기도 하고, 결정적 시기다. 그만큼 유아기 발달은 때를 놓치면 회복하기도 힘들다. 그런 유아기의 중요성을 외면한 채, 윤석열 정부는 만 5세 초등학교 입학이라는 불안의 늪으로 유아들을 떠밀고 있다. 결국 고통과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들의 몫으로 남을 것이다.
나는 어른으로서, 그리고 현장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교사로서, 우리 아이들이 1년이라는 시간을 빼앗기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다. 윤석열 정부가 만 5세 조기입학 정책을 철회하는 그날까지, 이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