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살 아이 5시간 수업? 아동학대부냐”
안녕 못한 1000여 유치원 교사들 성토

최대현 | 기사입력 2014/01/23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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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살 아이 5시간 수업? 아동학대부냐”
안녕 못한 1000여 유치원 교사들 성토
[현장] 22일 열린 유아교육 정상화를 위한 전국교사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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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4/01/23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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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22일 열린 유아교육 정상화를 위한 전국교사대회
▲ 전국에서 모인 1000여 명의 유치원 교사들이 22일 오후 세종시 어진동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앞에서 5시간 수업 강제지침 철회 등을 요구하며 교사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 최대현
 
“유치원 교사들이 안녕하지 못한 이유를 교육부가 모르는 것 같아서 알려주기 위해 왔어요.”
 
22일 오후 2시, 교육부가 이사한 세종시 어진동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건물 앞 빈 터에 발을 들여놓던 나윤미 교사(경기 연현초 부설유치원)는 이렇게 말했다.
 
나 교사는 “3살 아이에게 수업을 5시간이나 하라고 하고, 8시간 이상을 유치원에 있어야 한달 지원금 5만원을 받을 수 있다고 도저히 얘기할 수 없다. 왜 교사를 사기꾼으로 만드냐”라고 안녕 못한 이유를 설명했다.
 
나 교사와 같은 마음으로 서울과 경남, 전남 등 전국에서 유치원 교사 1000여 명이 이곳에 모였다. 전교조가 연 ‘유아교육 정상화를 위한 전국교사대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전교조 조합원은 물론 조합원이 아닌 교사도 함께 했다. 교육부가 세종청사로 이전한 뒤 열리는 첫 집회를 유치원 교사들이 벌인 것이다.
 
유치원 교사들은 교육부가 일괄 하루 5시간 수업을 강제하는 것을 가장 먼저 문제제기했다. 교육부는 지난 2012년 만든 누리과정을 올해 만3~5세 유아에게 적용하면서 수업시간을 모두 5시간으로 하는 방안을 강행하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 해 11월 위탁 연구를 통해 유치원 교육과정(누리과정) 운영에 필요한 적정 수업시간으로 만3세부터 5세까지 모두 동일하게 5시간(60분 기준)을 적용하는 것을 제시한 바 있다.
 
유아교육계의 반발이 있는데도 교육부는 올해부터 이를 밀어붙여 만3세 아이까지도 원칙적으로 오전 9시부터 오후2시 수업을 하라는 지침을 내려 보냈다. 이는 초등학교 1학년이 40분 기준으로 하루 160시간(4시간) 수업을 하는 것보다도 많은 시간이다. 아이들 발달에 교육부가 역행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해까지 각 유치원은 교육과정에 맞게 수업시간을 3~5시간 안에서 자율적으로 선택을 할 수 있었다.
 
김은형 전교조 유치원위원회 위원장은 “1차 교육과정부터 하루 교육시간은 대체로 180분이었다. 유아발달에 적합한 교육활동 시간이 180분이라는 학계의 의견을 반영한 것”이라며 “이를 무시하고 5시간으로 강요하는 것은 유아 발달을 무시한 비교육적 처사이며 반인권적 처사”라고 못 박았다.

▲ 22일 교사대회에서 유치원 교사들이 행정업무를 떠맡는 문제를 상징의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 최대현

교육부가 수업시간을 늘리면서도 교사들에게 계속 행정업무를 맡기는 것도 큰 불만 사항이다. 전교조 유치원위원회에 따르면 전국의 4300여 개 공립 병설유치원 가운데 행정업무를 전담하는 공무원이 배치된 곳이 한 군데도 없다. 이로 인해 교사들이 기본 행정업무 외에도 공문수발, 물품 품의, E-유치원시스템, 유아학비지원 업무, 정보공시, 유치원운영위원회 업무 등을 떠안고 있다.
 
충남의 한 교사는 “일과를 마치고 수업연구를 하면 좋겠는데 밀린 행정업무에 치여 엄두를 못 낸다. 이런 지경에 몰아넣고는 무슨 수업시간을 늘리겠다는 것이냐. 교사가 가르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일을 먼저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집회는 교육부 성토에서 그치지 않았다. 앞으로는 유치원 교사들이 직접 나서 유아교육을 바로 잡자는 다짐으로 이어졌다. 조정하 교사(광주 송정동초 병설유치원)는 “교육청이 오후 2시까지 수업하라고 했는데 못 하겠다고 했다. 동료들과 함께 얘기해서 지금은 오후 1시까지 하고 있다. 혼자면 작고 보잘 것 없지만 우리에겐 거부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강원의 한 교사는 “아무 얘기도 하지 않고 열심히 하면 알아줄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다. 더 힘들어지더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이제는 직접 얘기하고 잘못되는 교육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해서 왔다”고 밝혔다.
 
이날 함께 한 전북의 함계남 학부모는 “선생님이 30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혼자 가르친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았다. 내 아이도 보내는 데 내 문제구나 싶었다. 공부하는 로봇이 아닌 사람으로 키우려는 선생님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말했다.
 
김태정 평등교육실현을위한전국학부모회 집행위원장은 “유치원생에게도 많은 수업을 시키려는 교육부는 아동학대부”라며 “선생님들이 편하게 가르치고 돌볼 수 있는 여건이 돼야 아이들의 교육도 좋아진다. 노동조건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22일 교사대회에 참가한 한 교사가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최대현
전교조는 유치원 교사들과 함께 하겠다고 밝혔다.
 
김정훈 전교조 위원장은 “교육의 기본이자 첫 걸음인 유아교육을 파괴하고 있다. 참교육의 가치인 발달과 협력을 못하게 하고 초등학생보다 많은 수업을 시키는 것은 아이들에 대한 폭력”이라며 “유아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날 집회를 진행하던 오후 3시쯤 김은형 위원장을 비롯해 전교조 유치원위원회 집행부 6명은 교육부를 방문해 유아교육정책과 관계자들에게 유치원 교사들의 입장을 전달했으나 별다른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집행부들은 이 자리에서 5000여 명이 이름을 올린 ▲현행 수업시간 3~5시간 유지 ▲유치원별 운영시간 자율성 보장 ▲방과후 전담교사 확보 내용의 서명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전교조 유치원위원회는 오는 28일 오후 교육부 지방교육지원국장을 다시 면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유치원 교사들은 당초 예정된 2시간의 집회 시간을 3시간이나 초과해 오후 7시 15분쯤에야 끝냈다. 양민주 전교조 유치원위원회 부위원장은 “2004년 1월 유아교육법이 제정된 이후 전국 사안으로 유치원들이 모여 주장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그동안 쌓인 분노와 불만이 폭발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 같은 교사들의 열기로 이곳에 쌓였던 2cm가량의 눈은 녹아있었다. 그리고 유치원 교사들은 자리를 떠나기 전 손에 촛불을 들고 이렇게 외쳤다.
 
“5시간 강제지침 철회하라”
“방과 후 전담 교원 확보하라”
“행정업무 전담 인력 배치하라” 

 
▲ 전교조는 교사대회에 앞선 22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어 누리과정 5시간 수업 강제지침 철회 등을 촉구했다.     © 최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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