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학교 (김목)

| 기사입력 2001/04/18 [09:00]
왕과 학교 (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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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1/04/1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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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와 비리를 확인했다. 세금을 과도하게 추징하면 망할 것 같아 깎아주라고 했다.'
너희가 고뇌를 아냐며, 얼마전 고뇌를 좋아하는 사람의 그런 고뇌(?)의 토로가 있었다. 우리에겐 고통이었던 그 고뇌가 힘들다면 그 자리를 그만두면 될터인데…. 그저 그 고뇌란게 의심스럴 뿐이다.
"수천, 수만 종업원을 먹여 살리는 일이 쉬운 일인줄 아느냐?"
그러나 그런 자리가 힘들어서 그만두겠다는 사람도 아직 보지 못했다.
하긴 권력과 돈을 거머쥐는 자리를 내놓고 싶을까? '고뇌'나 '힘들다'는 표현은 '아무나 하는 자리가 아니다'라는 선택적 우월감의 또 다른 표현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래서 신을 섬기는 일부 종교단체에서도 세속처럼 자리 대물림이 이루어지나 보다.
"사립학교재단이요? 말썽을 내고 속으로는 쾌재를 부르지요. 왜? 시끄러워지면 관선이사가 와서 시설을 비롯해 막대한 교육투자로 부실을 떼워주지요. 그런 뒤, 구 재단이 슬그머니 복귀해 더 불어난 재산을 차지하면 되니까요."
국민의 혈세로 공교육비가 투자되어도 사립학교라는 이유로 사유재산이 되는, 이해하기 어려운 계산이 당연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남 위에 서 있는 자리가 얼마나 위풍스럽고 흐뭇하며 대 물림의 미련까지 끊지 못하게 하는지, 최근의 한 실례를 들어보고자 한다. 그러면서 이 얘기가 한 지역 한 별종의 일에 불과하기를 바라는 맘이다.
그렇다. 그 교장은 '왕'이다. 왕은 진노를 했다. 학기 초 학교 직원친목회 회장을 뽑았다. 그런데 아랫것들이 무엄하게도 왕을 떨치다니. 12표와 6표의 낙선에 왕의 손끝이 떨렸다.
'어떻게 했길래 그런 반란이 일어난 거야?'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왕에게 교감은 황송의 머리를 조아렸다. 교감은 당장 12표를 한 표씩 불렀다. 설득과 회유와 협박이 진행되는 동안 당선회장의 자진사퇴가 있었다. 그런데 이럴 수가? 이번엔 학교운영위 교사위원 선거에서 감히 자기가 지명한 교사를 낙선 시키다니.
왕은 진노를 멈출 수가 없었다. '이래서 아랫것들은 초장에, 초록치마 때 잡아야 해.' 왕은 전 교사의 각서를 받으라고 다그쳤다.
'각서. 본인은 연구학교를 추진함에 업무와 특근 등에 일체의 불만을 갖지 않겠습니다.'
각서를 받고도 왕은 만족할 수 없었다. '모이게 해선 안 돼. 모이면 불평이나 하니.' 왕은 출퇴근시 남녀가 한 차를 타서도 안된다는 긴급조치를 발령했다.
'왜냐? 풍기문란의 소지가 있다. 타려면 배우자의 각서를 받어와.' 라는 단서를 붙였다.
그래도 왕의 진노는 풀리지 않았다. '연구를 하라. 보고서를 안써 점수를 따지 못하는, 벼슬을 포기한 교사는 교사가 아니다.' 이렇게 훈시하고 이번엔 비상조치를 발령했다.
'내일의 수업안을 써서 검열을 받고 퇴근하라. 매사에 긍정적인 사고를 하라. 시키는 일에 긍정적인 교사만이 승진한다.'
왕은 왕의 분노가 뭔지 아느냐?며 교감을 불러 만일의 사태를 위한 대비책을 일렀다.
'만약 불만을 말하면 각서를 내밀어라. 약속은 소중한 거야.'
교육이란 최소한 이기고 지는 힘겨루기 자리가 아니다. 그리고 학교에는 배우고 가르치는 사람과 그들을 지원하는 체계가 있을 뿐이다. 명령과 지시를 하는 자와 그걸 받들어 모시는자가 있는 게 결코 아니다.
그러나 다음의 일도 현실이다.
'흐흐흐, 그럼, 그렇지. 내가 누군데. 이 자리가 어떤 자리라고 반항을 해.'
비로소 왕의 얼굴에 선택된 인간의 위풍과 우월감이 범벅 된 회심의 미소가 그려졌다.
'세상 사람들아! 들으라. 나는, 나는 왕이로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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