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초심(初心)

교육희망 | 기사입력 2004/12/15 [09:00]
연재
컬럼
[컬럼] 초심(初心)
교육희망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기사입력: 2004/12/15 [09:00]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1989년, 나는 고3이었다. 5월, 선생님들이 중세의 기사처럼 중무장한 전경들의 봉쇄를 뚫었다. 나중에 영상으로 봤는데, 그 눈빛이 하나같이 처절했고 비장감이 감돌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직선제 개헌이니 민주화가 되었느니 하지만, 해고되고 구속되고 삶과 목숨을 위협받을 각오를 하지 않고서는 노동자임을 선언하고 노조를 결성하는 일이 여전히 어려운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전교조가 시작되었고, 잇따른 대량해고, 출근투쟁… 내가 다니던 학교에도 전교조 선생님이 한 분 계셨다. 딱 한 분. 이사장 겸 교장의 횡포가 서슬 퍼런, 교사나 학생이나 무력감에 젖어 하루하루를 때우던, 그런 후진 학교였다. 그분은 외로이 출근투쟁을 시작했다. 동료의 차가운 눈초리, 학생들의 무관심함. 모두들 그분을 마마 환자처럼 피했다.
나는 홀로 고함 소리가 나는 교무실과 교장실 부근을 맴돌며 마음을 졸였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느 학교에선가 학생들의 전교조 지지투쟁이 일어났다는 소문이 들려왔지만, 내가 다니던 학교는 아무런 기미가 없었다. 그분은 고3 우리반 수업에 들어오셨는데 그 수업 시간에 다른 선생님이 들어와도 학생들은 그러려니 할 뿐이었다. 담임도 맡지 않았고 입시와는 무관한 과목이었기에 더 그랬으리라. 나 혼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더구나 입시를 눈앞에 둔 고3이?

담임과 얘기하다가 고민을 털어놓았다. 담임은 공부 잘하는 학생이 엇나갈까봐 두려웠던지 얼른 나를 달랬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야. 하지만 얼마 지나면, 그 선생님도 다시 복직될 거야. 예전에도 그런 일들이 있었는데, 결국 복직이 되더라. 딴 생각 말고 공부만 해.”
그 위로는 초점이 빗나갔다. 나는 단지 해고 사실을 가슴 아파 한 것이 아니었다. 그 선생님과 친분 관계는 없었다. 내가 괴로워한 것은 내 비겁함, 불의를 목격하고도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나 자신이었다.

‘나 혼자 어찌’, ‘몇 달 뒤면 바로 졸업인데’, 이런 핑계로 나는 눈앞의 불의에서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몇 달 뒤 합격한 대학을 찾아갔을 때, “전교조 1세대 여러분, 환영합니다”하는 신입생 환영 플랭카드가 대학 정문에 걸려 있는 것을 발견하고 몹시 부끄러웠다. 나는 그때 다짐했다. “내 인생에서 첫 실패다. 다시는 이런 실패를 되풀이하지 말자.”

15년이 지났다. 전교조의 역사도 그만큼 깊어졌고, 나도 나이를 먹었다. 어느 덧 또 한 해가 끝나가고 있다. 문득 생각해 본다. 스무 살 약관에 다짐한 것을 지키며 살아왔는가?
불의는 여전히 서슬 퍼렇다. 15년 전과 꼭같이, 단지 노동자임을 선언했다는 이유로 수많은 공무원들이 쫓겨나고 갇혔다. 15년 전과 꼭같이 빨갱이 소동이 벌어지는 가운데, 남의 나라 침략에 동참한 파병은 은근슬쩍 연장될 모양이다. 나는 이러한 불의를 묵인하지 않고 행동하고 있는가? 결심한 대로, 15년 전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고 살아왔던가?

초심(初心)을 지키면서 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세월의 더께에 묻혀 잊어먹기도 하고, 날카롭던 칼날은 빛을 잃고 무뎌진다. 이따금 꺼내들어 때를 벗기고 벼려야 한다.
세밑에 한번쯤 초심을 떠올리는 것도 좋은 일일 듯 하다. 나도, 그리고 내 스무살에 평생 간직할 초심을 만들어준 전교조도.


장귀연(방송통신대 강사)
이 기사 좋아요
ⓒ 교육희망.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 도배방지 이미지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
PHOTO News
메인사진
[만화] 쉴 땐 쉬어요
메인사진
[만화] 돌고 도는 학교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