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행정기관인가, 교육기관인가?

강신만 | 기사입력 2001/06/27 [09:00]
학교는 행정기관인가, 교육기관인가?
20세기 청산 다시서는 학교교육(10) 초등
강신만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기사입력: 2001/06/27 [09:00]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20세기 청산 다시서는 학교교육(10) 초등
지금 수업이 문제야?
빨리 공문 보내야지!



풍경 하나
날마다 계속되는 공문 만들기,
‘나는 왜 이 자리에 서 있나?’





ㅁ초등학교 교육정보부장 강교사는 아침부터 열불이 난다. 출근하여 교무실 서류함을 열어보니 공문이 들어 있다. ‘저소득층 정보화교육현황'을 보고하라는 공문이다. 보고일자를 보니 오늘까지다. 불쾌한 김에 교감에게 한마디한다.
“오늘까지 보고하라는 공문이 지금에야 제 손에 들어오면 어떡하라는 거지요?"
“어제 늦게야 접수했어. 할수 없지 뭐. 빨리 해서 보내야지."
교감의 말을 들으니 더 열불이 난다. 강교사는 4층 계단을 오르며 공문을 훑어 본다. 조사할 표가 두 장이다. 한숨이 나온다. 6학년 2반 교실에 들어서니 아이들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그러나 강교사는 반갑게 인사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머릿속은 공문처리 할 생각으로 복잡하기만 하다. 아이들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하고 자리에 앉는 순간 아차! 하는 생각이 든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조사표를 돌리려면 공문에 붙어 있는 표를 복사해야 하는데 깜박 잊고 교실로 올라와 버린 것이라. 강교사는

“조용히 책 읽어!"
괜히 한번 소리치고는 공문을 들고 다시 교무실로 내려온다. 표 두장을 각각 6장씩 12장을 복사해서 교실로 올라온다. 책 읽고 있는 아이들 6명을 불러내서 표를 각 학년 부장교실로 보낸다. <점심시간 전까지 꼭 조사해서 보내주십시오>를 빨간 볼펜으로 적어서 보냈다. 미리 수문이라도 쳐놓을까 하고 컴퓨터를 켜는데, 1교시 시작종이 울린다. 다시 머리에 열이 오른다. 수업준비를 하지 않고 소란스러운 아이들의 목소리에 짜증이 난다. 신경질적으로 ‘꽥' 소리를 지르자 아이들이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뜬다. 수업준비도 없이 1교시를 그냥 때운다. 2교시, 3교시, 4교시, 그럭저럭 시간을 보내면서 조사표 오기만을 기다린다. 그러나 점심시간이 되어도 한 학년도 조사표가 들어오지 않는다. 강교사는 학년부장들 교실에 인터폰을 한다.

“아직 조사가 안 된 반이 있어서..."
모두들 한결같은 대답이다. 속에서 부아가 치만 강교사,
“급하다고 빨간 글씨로 써보냈는데..., 협조 좀 잘해 주셔야지. 하여간 빨리 좀 보내주세요."
퉁명스럽게 말하고 전화를 끊는다. 전화를 끊고 나니까 '내가 왜 이러나.'하는 생각이 들어 굉장히 불쾌한 마음이 된다. 5교시가 되었다. 수업 중에 수시로 아이들이 조사표를 들고 온다. 수업이 중간중간 끊어져 또 화가 난다. 그러나 조사표가 오니까 반가운 마음도 있다.
조사표는 6교시 끝날 때쯤 다 들어왔다. 6교시가 끝나고 아이들 청소까지 시켜서 보내고 나니 오후 3시, 늦었다. 서무실로 전화를 한다.
“김기사님 교육청에 나갔나요?"
“아직."
“잘되었습니다. 4시까지만 기다려 달라고 해주세요. 오늘 꼭 나가야 될 공문이 있어서요."

강교사는 한숨을 쉬고, 학년별로 걷어온 조사표를 보고 통계를 낸다. 통계표는 주문이 많아 꼭 회계장부를 꾸미는 것 같다. 범례를 몇 번씩이나 들여다 보면서 통계표를 작성한다. 통계표를 작성하고 나니 벌써 3시 40분, 급하다. 점심시간에 미리 쳐둔 수문과 기안문 그리고 통계표를 들고 교무실로 뛰어간다. 통계표를 복사하여 기안문에 붙이고 수문 뒤에는 통계표 원장을 붙여서 결재서류판에 넣어 교감에게 간다. 교감은 슬쩍슬쩍 보고 나서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없이
“늦었네. 김기사 아직 안나갔나?"
하고 사인을 한다. 숙이고 있는 교감의 대머리를 보면서 강교사는
‘당신이 이런 급한 공문은 좀 대신해주면 안되나?'
하는 말을 목까지 올렸다가 꾹 내려보낸다. 교감결재를 받은 강교사는 급한 걸음으로 교장실로 간다. 예상대로 교장은 교장실에 없다. 강교사는 교장실에 붙은 서무실로 가서 교장 어디 있냐고 물어 본다.

“아까 재배원에 계시는 것 같은데..."
대답을 듣자마자 재배원으로 달려간다. 결재서류와 볼펜을 쥐고 말이다. 교장은 하얀 모자를 쓰고 재배원 풀에게 물을 주고 있다.
“고생이 많군. 정보부가 할 일이 많지?"
교장은 한마디하고는 사인을 해준다. 강교사는 다시 교무실로 뛰어와 공문 수발철에서 문서번호를 딴 다음, 서무실로 가져간다. 김기사가 늦었다며 서무실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학교장 직인을 찍어서 김기사가 공문을 들고 가는 것을 보고 강교사는 교실로 터덜터덜 올라왔다. 자리에 퍼져 앉아 벽시계를 보니 4시 20분, 퇴근할 시간이 다 돼간다. 강교사는 담배를 한 대 피워 물고 운동장을 내려다보고 서있자니 갑자기 고함이라도 지르고 싶어진다. 거의 날마다 계속되는 공문 만들기. 강교사는 자문해 본다. ‘나는 왜 이 자리에 서 있나?'



풍경 둘
“수업하고, 애들 일기검사하고 상담하느라고
공문은 까맣게 잊어 먹었어요.”



점심시간, ㅅ초등학교 교무실. 한 여선생이 교감 앞에 머리를 숙이고 서 있다. 갓 발령 난 새내기 교사다.
“이선생, 모르면 물어 봐야지. 이렇게 시간을 놓치면 어떡합니까? 나 참."
교감의 열 받은 소리에 새내기 선생의 어깨가 움칠움칠한다. 교무실에 들어온 선생들이 하나같이 놀란 얼굴로 그 광경을 지켜본다. 무슨 일일까? 사실을 알고 보니, 어제까지 교육청에 보내야 할 공문을 아직까지 안 보냈다는 거였다. 그 때문에 교육청 담당장학사가 교감에게 전화를 했다는 거였다. '공문을 왜 때맞춰 보내지 않느냐?'고 말이다. 교감에게 된통 혼나고 나온 새내기 교사가 울먹이면서 하는 말은 이랬다.
“수업하고, 애들 일기검사하고, 애들하고 상담하느라고 공문은 까맣게 잊어 먹었어요. 그리고 기안문을 어떻게 작성하는지도 몰라요."
옆 반 선배교사가 혀를 찼다.

“나한테 물어 보지. 공문을 늦게 보내면 교감들이 얼마나 닦달을 하는데. 교감들은 교육청에 잘 보여야 하거든."
또 다른 선배교사가 말했다.
“아니, 교감은 둘씩이나 되면서, 뭘 하나. 이런 공문은 자기들이 해서 보내도 되잖아."
“그 씨도 안 먹히는 얘기하지도 말아. 교감들이 자기 앞으로 온 공문이 아니면 하는 것 봤어?"
말을 듣고 있던 또 다른 선배교사 말했다. 흥분한 목소리였다.
“아, 평교사가 뭐 자기 부하인가? 같은 교원으로서 우리는 수평적인 관계가 아니냐고. 마치 상사가 부하에게 꾸짖듯이 그렇게 화를 펄펄 내면서 난리를 쳐도 되는 거냐고오-"
얘기는 결론 없이 끝났다. 맥빠진 걸음으로 교사들은 자기 교실로 돌아갔다.

대표집필 장주식(주간 교육희망 현장연구팀)


[문서 생산량]

한 해 정리한 문서 대장만도 11권!

필자는 97년부터 2년간 교육정보부장을 한 적이 있다.
연말이 되면 한 해 동안 받은 공문과 보낸 공문을 모두 묶어 두는데, 정리해보니 노란 껍데기 문서철이 8권이었다. 한꺼번에 들기도 버거운 분량이었다. 문서철뿐이 아니다. 소모품대장, 소프트웨어 대장, 컴퓨터관리대장, 교단 선진화 기기 관리대장, 회의록…, 게다가 작은 학교라 과학부장을 겸했기 때문에 연말에 정리한 대장만도 11권이었다. 파란 하드 커버 대장과 노란 껍데기 문서철을 쌓아 놓고 한숨이 나왔다. 일년동안 나는 무얼 했나?
이 산더미 같은 문서철과 대장 대신에 수업지도안과 학습자료가 내 앞에 쌓여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해본 적이 있다. 이때부터 필자는 부장이라는 소리만 들어도 진저리가 쳐졌다.

공문 처리 소요시간

전교생 대상 공문 하루 온종일,
교사 스트레스의 주요인

아무리 가벼운 공문도 처리시간이 기본적으로 1시간 이상 든다.
기안문 작성, 수문 작성, 자료정리, 부장결재, 교감결재, 교장결재, 문서번호 따기, 서무실이관. 이 결재선은 요지부동이며 교사들 스트레스의 중요한 원인이다. 그러나 1시간 소요의 공문은 혼자서 작성할 수 있는 아주 가벼운 공문일 경우 그럴 뿐이다.
전교생을 대상으로 하는 자료를 조사해야 될 경우(대부분의 공문이 그렇다), 하루 온 종일 그 공문작성에 바쳐야 한다. 물론 대부분 시간이 빠듯하기 때문에 수업시간에 회람을 돌려야 한다. 수업시간에 자료를 조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업시간에 방해받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교사가 있을 경우 회람은 한 교실에서 묵기 마련이고, 그 만큼 공문작성은 어려워지기 마련이다. 수업시간을 방해받지 않겠다는 데야, 뭐라 할말도 없고 다만 벙어리 냉가슴 앓듯 공문담당교사의 스트레스만 쌓여갈 뿐이다.

[공문 통치 ]

“초등 교사만 같으면 장학사도 해먹을 만 해!"

'공문통치'라는 말이 공공연할 정도로 공문의 위력은 대단하다.
학교관리자인 교감교장은 교육청에서 오는 공문을 금과옥조처럼 떠받든다. 특히 교감의 입장에서는 공문에 목을 맨다. 교감의 근무평정 가운데 일정 부분을 지역교육청에서 담당하는데 공문을 제 때에 보내지 않으면 그 만큼 교육청으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교 안에서도 공문을 제 때에 잘 처리하는 교사가 교감 입장에서는 예뻐 보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교사가 교실에서 아무리 수업을 잘 한다고 해도 그게 교감 입장에 도움이 되는 바는 전혀 없기 때문이다.
필자가 있는 서울의 경우, 웃지 못할 소문이 떠돈다. "초등학교 교사만 같으면 교육청 장학사도 해먹을 만 해!" 라는 말이다. 공문을 제때에 보내지 않으면 큰 일이라도 나는 줄 아는 초등학교의 관행을 비꼰 말이다. 아 서글픈 현실이여!
이 기사 좋아요
ⓒ 교육희망.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 도배방지 이미지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
PHOTO News
메인사진
[만화] 돌고 도는 학교
메인사진
[만화] 새학기는 늘 새로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