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나의 비례대표 후보 생활기

교육희망 | 기사입력 2004/04/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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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나의 비례대표 후보 생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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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4/04/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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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일 후보로 등록하고 나서 내 생활은 180도 바뀌었다. 생전 처음 낯선 ‘정치’에 뛰어들었기 때문일까. 앞뒤 돌아보지 않고 우직하게 밀고 나가기보다는 새로 접한 것에 두리번거리고 신기해 한 적이 더 많았다. 평당원 중에서도 4만번 대 늦깎이인 데다가 집회에서는 늘 ‘일반 대중’이었던 나였기에 지난 한달 반을 되돌아보면 아찔한 어지러움이 앞선다.

출마서류를 준비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위임장 가져오세요.”였다. 청바지에 티셔츠와 당 점퍼를 걸친 젊은 여자가 공직출마용 서류를 뗀다 하니 공무원들은 당연히 당 사무를 맡아보는 직원일 거라고 짐작한 듯. “제가 출마하는데요.”하면 깜짝 놀라다가 “아, 민주노동당이요.”하고는 금세 태도가 호의적으로 바뀌는데, 그 변화가 싫지 않았다. 결국 그 호의들이 모아져 공무원노조의 민주노동당 지지선언이 나왔겠지.

당원 대상 유세에 가서 놀랍게 느낀 것은 이른바 ‘현장정서’였다. 집회라 하면 문화단체 집회나 촛불집회 같은 안전하고 명랑한 이벤트식 집회에 익숙해져 있던 내게, 울산 현대중공업 앞에서 벌어진 집회는 그 진지함과 격렬함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15년 전 최루탄과 백골단의 방패가 난무하던 대학 저학년 시절로 돌아온 듯한 장중하고 비장한 분위기라니……. 그러나 노동현장에서 사측의 억압은 15년 전과 변함이 없다는 것을 보고 듣고 느낀 다음에는 그것을 ‘촌스럽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 대한민국에는 15년 전의 현실과 2004년 광화문의 촛불 축제가 묘하게 공존하고 있었다!

이 느낌은 그 뒤로도 계속됐다. “점점 시민운동에 끌려가고 있는 것 같아요. 노동자 중심성을 견지해야 하지 않습니까?”하는 어느 인천 당원의 열변과 “이제 천편일률적인 시위문화 이미지를 탈피해서 좀더 세련되게 국민들에게 다가가야죠.”하는 쓴소리와 함께 지지선언을 해주신 문화예술계의 어느 분 말씀은 서로 기이하게 충돌하면서 많은 고민거리를 남겨주었다. 지금의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은 서로를 잘 모르면서, 잘 모르기 때문에 경원시하고 서로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는 조바심을 느끼는 것일까? 경계를 풀고 함께 갈 수는 없을까?

비례대표 후보 경선이 끝나고 나는 주로 장애인 차별철폐 투쟁에 결합했는데, 이때는 이런 어려운 문제에 맞부닥칠 일이 없어서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장애인이동권연대의 멋진 분들을 알게 된 것은 개인적으로도 커다란 기쁨이었다. 그분들이 장애인이라서, 혹은 투쟁의 일선에 나섰기 때문에 멋지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사회가 부과한 상처를 딛고 스스로 당당해진 사람들 특유의 여유와 넓이, 인품에 매료됐다. 그분들만큼 자신의 권리에 당당하고 여유로운 분들, 사회와 자신이 맺고 있는 관계를 잘 알고 있는 분들을 나는 별로 보지 못했다.

지구당 후보와 당원들의 헌신성도 빼놓을 수 없다. 국회에 들어가지도 못한 처지에 이렇게 말하기는 쑥스럽지만, 모든 비례대표 후보들은 자신의 당선 가능성보다 당을 알리기 위해 뛰었던 지역구 후보와 당원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다른 당 후보들이 자신이 당선되려고 아득바득 애쓰는 것과 달리, 이분들은 당을 알리기 위해 뛰었다.
이 모두가 바탕이 되어 4월 15일 열 석의 민주노동당 의석이 꽃피었다. 이제 시작이다! 하지만 그 시작을 있게 해준 2004년의 모든 기억들도 우리 진보운동의 귀한 자산으로 고이 간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 손을 꼭 쥐어주던 시장 아주머니와 장애인들의 손에서 전해지던 온기와 함께.


송경아(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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