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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연봉 6천만원과 과로사
 
교육희망 기사입력  2003/09/08 [09:00]
백 순 환
금속노조연맹 위원장


요즘같이 분통 터지는 시절도 그리 많지 않았다. 지난 4월부터 시작된 보수언론의 노동조합 헐뜯기가 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그들이 언제는 노동조합에 우호적이었느냐, 되물으면 할 말은 없지만 최근의 중상 모략은 정말 해도 너무 한다. 너무나 집요하다보니 심지어는 조합원들까지 그 악선전에 감염되고 있어 여간 걱정이 아니다.
8월중순 어느 대기업노조 창립 기념식에 가서 막걸리를 한잔하는데 조합원들이 “위원장님예, 현대자동차 조합원은 한 달에 6000만원 받는다는데 그기 맞십니꺼?” 만나는 사람마다 내게 묻는 거다. 같은 제조업에 근무하면서 자신도 한달 100시간 넘게 잔업하면서 보수언론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일반 국민이야 오죽 하겠는가.

상당수의 국민 정서는 다음과 같을 게다. “고등학교밖에 안 나온 공돌이들이 감히 연봉 6000만원을 받어?” “1년에 166일 놀고 6천만 원이나 받는 놈들이 그것도 모자란다고 파업해?” “주5일 근무제 하는 현대 자동차 때문에 중소기업 망한다.” “협력업체 피 빨아먹고, 소비자들에게 가격인상해서 다 뒤집어씌운다.” 한 술 더 떠 “당신들 배 부르제? 우리 같은 노가다는 일감이 없어서 오늘도 공치는데, 뭐 1년에 1천만 원 더 내놓으라고 파업해?” 이런 악담이 연일 홈페이지를 도배질하여 아무리 설명하려고 해도 귀담아 듣지 않는다.
심지어는 조합원들의 가족까지 원성이다. 누구는 시골집 어머니가 텔레비전을 보고 전화를 걸어와 “너그는 그마이 많이 벌면서 아직까지 집도 하나 못 사나? 살림을 어째하는 기고?” 나무랐단다. 만나는 사람마다 돈 많이 버는데 한잔 사라고 난리란다.

지난 여름 현대자동차노조의 임,단협 결과와 조합원들의 임금과 휴가 부분에 대한 언론의 보도가 아주 악의적이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연봉 6000만원과 휴일 166일이 어찌 양립하는가. 올초 어느 고참 노동자가 주어진 휴가도 거의 다 반납하고 일한 끝에 평균임금 5400만원 수령도 헛되이 ‘과로사’했다. ‘지금 경기 좋을 때 벌어둬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그를 죽음으로 몰고간 것이다.

이들은 14년 근속자의 기본급이 평균 115만 원이다. 이 임금으로 4천만 원을 넘게 받으려면 1년에 362일 출근하여 무려 3000시간 넘게 일해야한다. 이렇게 살인적으로 노동하는데 골병 들지 않으면 비정상이다. 근골격계 질환과 위장병이 그를 기다린다. 나이가 들면 컨베이어를 타기도 어렵다. 전쟁 같은 고역으로 1년에 18명 넘게 질병사, 과로사(過勞死)한다. 제 살을 깎아 목숨을 이어가는 것이다. 대다수 언론은 ‘보도의 윤리’를 저버렸다!

상반기 보수언론들이 NEIS 거부에 나선 전교조가 마치 생트집을 잡는 것처럼 헐뜯었을 때 나는 무어라 말할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 자본과 정권은 이처럼 노동자들이 서로를 삐딱하게 바라보도록 끊임없이 악선전을 일삼는 것이다.
노동계급 내부에는 교사노동자, 사무직, 제조업, 전문직, 비정규 노동자 등 직종과 직위가 서로 다른 수많은 노동자들이 있다 이들이 서로를 불신하는 순간 스스로 하나씩 고립되어 허물어지고 말 것이다. 총자본과 보수정당의 총체적인 이념공세 속에서 “노동자는 하나!”라는 기본 원칙을 과연 세워낼 수 있느냐? 우리 노동운동의 미래는 바로 이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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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09/08 [09:00]  최종편집: ⓒ 교육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