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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참교육달력 6월의 삽화 © 전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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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지필평가 성적 처리를 끝내고, 체육대회와 현장체험학습까지 치르고 나면 몸과 마음이 지친다. 그렇게 달력을 한 장 더 넘기면 우리는 유월에 도착한다. 신학기 연수 때 빨간 펜으로 표시해 놓은 방학 날짜가 가까워졌기에 기대가 되면서도 1학기를 잘 마무리해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게 된다.
계기교육에 큰 관심이 없는 교사들이라도 유월이 ‘호국보훈의 달’이라는 표현은 한 번쯤은 들어봤을 성싶다. 6월 6일 현충일, 6·25 전쟁일과 같이 정부 기념일로 국가보훈부에서 기념행사를 주관하기 때문이다. 물론 대한민국 사회의 일원으로서 공동체를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지켜낸 국가 유공자의 정신을 기리고 그 공훈에 대해 보답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은 시민의식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문제는 호국보훈 교육이 전쟁의 참상을 돌아보고 평화의 중요성을 배우는 데 머물지 않고 북한과 중국에 대한 적개심을 키우는 방향으로 흘러갈 때다. 적개심은 한반도와 동북아의 현실을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바라보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된다.
유월 달력에서 우리는 6·10 민주항쟁, 6·15 남북공동선언, 6·20 세계 난민의 날 그리고 앞서 언급한 6·25 전쟁일을 만난다. 이 기념일들을 역사적 순서에 따라 다시 배열해 보면, 우리가 민주시민교육을 통해 지향하는 사회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다.
먼저 1950년 6·25전쟁은 국제 정세 속에서 빚어진 전쟁의 참화로 피난민의 아픔을 겪은 과거의 상처이다. 뒤이어 1987년 6.10 민주항쟁은 권위주의 국가에 맞선 시민들의 힘이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킨 사건이다. 이러한 한국 사회의 발전은 남북한 체제 경쟁에서 우위라는 자신감과 평화통일에 대한 지향을 바탕으로 북한과 합의한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으로 이어진다. 서로 총을 겨누던 상대와의 공존과 평화를 모색하고자 한 사건이며 6·25 전쟁 이후 처음으로 열린 남북정상회담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하지만 최근 북한의 개헌 속 통일 언급 삭제뿐 아니라 김정은의 "공화국 민족역사에서 '통일', '화해', '동족'이라는 개념 자체를 완전히 제거해버려야 한다."라는 발언을 종합해 보면 입맛이 쓰다. 그럼에도 이제 우리는 과거의 우리처럼 고통받는 세계의 난민들에게 손을 내밀고 연대할 수 있는 성숙한 세계시민임을 2001년 UN이 제정한 6·20 세계 난민의 날을 통해 되새길 수 있다.
6.25전쟁일: 전쟁의 기억을 적개심이 아닌 평화 감수성으로 연결하기
6.25전쟁일 계기교육은 필자가 초등학교 재학 중일 때도 비중 있게 이뤄졌던 걸로 기억한다.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그날을”로 시작하는 6.25 노래를 따라 부르고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의 기습적인 남침으로 낙동강 전선 아래로 포위되었다가 UN군의 인천상륙작전과 함께 반격에 나서 압록강까지 진출했으나 중국군의 개입으로 다시 서울을 빼앗기는 등 전쟁의 진행 과정에 대한 간략한 연표를 배웠었다. 이 같은 역사적 배경과 참전국의 도움, 전쟁의 상처와 교훈을 주 내용으로 하는 계기교육이 북한과의 관계가 해빙과 경색을 오간 최근 이십여 년 동안에도 꾸준히 학교 현장에서 이루어져 왔다.
물론 전쟁의 참상과 역사적 교훈을 공유하고, 호국정신과 안보의식을 고취한다는 기념일의 취지는 공감할 수 있다. 동시에 존중과 자율, 연대라는 시민적 가치를 기르는 민주시민교육의 관점에서 6.25전쟁일 계기교육에서는 북한의 남침과 전쟁의 참화를 분명히 다루되,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국민방위군 사건, 보도연맹 사건, 거창 양민 학살 사건 등 전쟁 중 국가가 시민에게 가한 폭력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6·25 전쟁일 계기교육은 평화 감수성을 키우기보다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주적’ 논쟁처럼 적개심을 확인하는 질문으로 좁아질 위험이 있다. 그보다는 부패하고 무능한 정부가 이념 갈등의 상황을 이용하여 공동체 구성원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저버리고 심지어는 앞장서서 살해하기까지 했다는 역사를 인식하고 이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을 고민하면 좋다.
또한 전쟁으로 인해 최대 651만여 명의 피난민이 발생했고 26년 4월 기준으로 134,536명의 이산가족이 상봉을 기다리고 있다는 점을 짚을 수 있다. 현재 중고등학생이 2008년생에서 2013년생이니 그들에게 전쟁 당시의 피난민들은 증조부모 세대 정도이므로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도 6.25 전쟁으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고 피난을 갔었던 적이 있다.”라고 언급하며 사진 자료를 제시하면 쉽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또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봉쇄와 같이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전쟁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어려움을 다룬 기사를 함께 읽으며 전쟁을 일으키는 이들에 대한 문제의식과 평화의 소중함을 되새길 수 있다.
6.10 민주항쟁: 오늘날의 자유와 권리가 어떻게 주어졌는지 질문하기
1987년 6.10 민주항쟁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그 은폐 조작, 4.13 호헌조치, 이한열의 죽음에 분노한 시민들이 거리로 나서며 폭발했다. 시민들은 대통령 직선제와 독재 타도를 요구했고, 결국 6.29 선언을 이끌어냈다. 이 사건은 오늘날 학생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표현의 자유와 선거권이 결코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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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7년 6월 9일 이한열 열사가 연세대학교 정문에서 최루탄에 맞아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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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보도 지침’으로 언론을 통제하던 과거와 오늘날의 자유로운 SNS 활동을 비교해 볼 수 있다. “만약 내가 학교 급식이 맛없다거나 교칙이 잘못됐다고 비판하는 글을 SNS에 올렸을 때, 경찰이 집에 찾아온다면?”과 같은 상황을 제시해 자유로이 의견을 나누게 하고 실제로 유신 헌법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수감생활을 했다가 긴급조치 제9호가 위헌으로 결론 난 이후 재심을 거쳐 무죄를 받은 사례를 읽으며 오늘날 우리가 자유롭게 정치적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는 것은 민주화의 결실임을 이해할 수 있다.
다음으로 “학급 회장 선거를 할 때 선생님이 정해주는 사람만 뽑아야 한다면?”을 나눠볼 수 있다. 영구 집권을 꾀했던 박정희가 유신 개헌으로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을 간접 선출하게 했던 것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전두환 역시 선거인단을 통한 간접 선거로 선출되었다. 이런 방식은 국민의 의사를 온전히 반영할 수 없고 누구를 선거인단에 포함할 것인지 결정할 수 있는 권력자의 의사가 더 강하게 반영되므로 비민주적인 제도임을 학생들과 공유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가요의 가사 한 줄, 책 한 권도 검열을 거처야 했던 과거와 오늘날의 자유로운 창작 환경을 비교해 볼 수 있다. 기사를 보면 누구라도 알 수 있지만 금지곡으로 선정하는 데 기준이 불분명하며 시쳇말을 빌리자면 검열관의 ‘뇌피셜’로 가사의 의도를 추측한 것에 불과하다. 특히 다양한 갈래의 음악과 아티스트를 사랑하는 학생들이라면 민주화 이전의 대중문화에 대한 이와 같은 공권력의 억압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민주화의 가치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6.15 남북공동선언: 갈등 상대와의 공존을 위한 대화의 조건 생각하기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은 당시 대한민국과 북한의 지도자였던 김대중과 김정일의 회담 결과 발표되었다. 당시 초등학생이던 필자는 어린 마음에 ‘이제 군대 가지 않아도 되는 건가?’라고 기대했었다.
역사 시간이나 도덕 시간에도 간단히 배우지만 6.15 남북공동선언이전에도 통일을 위한 움직임은 꾸준히 있어 왔다. 먼저 7.4 남북공동성명이 있었다. 각각 남한의 유신헌법과 북한의 사회주의헌법 제정 직전, 박정희와 김일성이 국내 정치에 이용한 것이라는 평을 듣기도 하지만 오늘날까지도 통일의 대원칙으로 받아들여지는 ‘자주, 평화, 민족 대단결’의 원칙을 확립한 중요한 사건이었다.
뒤이어 노태우 정권 시절에 남북한의 총리가 서명한 남북기본합의서역시 남북한의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원칙을 명시한 것으로 화해와 불가침, 교류와 협력이라는 중요한 합의이다.
6.15 남북공동선언은 이러한 배경 속에서 탄생한 것으로 통일 문제의 자주적 해결 원칙과 통일 방안의 방향 합의, 인도적 문제 해결, 경제·사회·문화·체육·보건·환경 등 제반 분야의 협력과 교류 활성화라는 굵직굵직한 합의를 담고 있다. 실제로 이러한 선언 내용에 따라 남북 관계의 개선을 꾀해왔으나 정권의 성향과 북한의 정책 변화에 따라 경색과 해빙을 번갈아 반복해 왔다.
그러나 2019년 북미정상회담의 ‘하노이 노딜’ 이후 2024년 김정은은 ‘적대적 두 국가’를 선언했다. 뒤이어 최근 정부의 남북 대화 노력에도 “가장 적대적인 실체인 대한민국과 상론할 일이 전혀 없고, 한국을 동족이라는 범주에서 영원히 배제할 것”과 같이 앞서 선언한 ‘적대적 두 국가’ 원칙을 분명히 한 바 있다.
단순히 한 민족이니 통일해야 한다는 감상적인 논리를 떠나서 생각하더라도 한반도 내에 일상적으로 군사적 긴장이 지속된다면 복지, 문화 등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사회적 자원의 낭비로 이어질 것이다. 또한 철 지난 색깔론으로 이득을 보는 정치세력의 준동도 계속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학생들과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을 가지는 것은 민주시민교육의 관점에서 충분히 의미 있다. 그리고 남북 관계가 다시 얼어붙은 지금, 6.15 남북공동선언은 ‘갈등하는 상대와 대화하기’의 의미를 되묻게 한다.
먼저 “6.15 남북공동선언은 남북의 정상이 분단 이후 최초로 직접 만나 대화를 통해 이뤄낸 결과물입니다. 평소 나와 의견이 전혀 다른 친구와 갈등이 생겼을 때, ‘직접 만나 대화하기’는 어떤 효과가 있을까요?”와 같은 질문을 사용할 수 있다. 적대적 공존을 지속하던 두 사회가 대화를 통해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를 모색하는 출발점을 마련한 것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공동선언의 배경을 살펴보고 위 질문에 답해보는 시간을 통해 갈등 해결 과정에서 대화의 중요성을 되새길 수 있다.
다음으로 “6.15 남북공동선언 제2항을 보면 남측의 ‘연합제’와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가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했습니다. 이처럼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서로 조금씩 양보해 중간 지점을 찾아낸 경험이 있나요?”에 대해 답할 수 있다. 자주, 평화, 민족 대단결과 같은 앞선 통일 논의가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대원칙 위주였다면, 공동선언에서 제시한 통일의 구체적 방향은 상호 합의에 도달한 결과라는 점을 출발점으로 하여 평화를 위한 노력과 이러한 정신을 다른 분야에서도 적용해 볼 궁리를 할 수 있다.
끝으로 “정권이 바뀌거나 시간이 흐르면서 과거의 합의들이 잘 지켜지지 않기도 했습니다. 국가 간 약속이나 사회 구성원 간의 합의가 시간이 지나도 단단하게 유지되려면 어떤 제도나 시민들의 노력이 필요할까요?”를 나눠볼 수 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노력으로부터 나온 합의가 꾸준히 계속됐으나 국제 정세와 남북의 내부 사정에 따른 부침 또한 항상 있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외적 상황은 어쩔 수 없지만 의미 있는 합의 내용과 정신이 지켜질 수 있으려면 제도와 시민사회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 학생들과 이 질문을 나눠보면서 남과 북이 평화롭게 공존하기 위한 구체적 방법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진다면 유의미할 것이다.
교육부에서 발표한 <2026년 민주시민교육 추진계획>처럼 한반도 통일과 통합의 의미를 배우며 평화 의식과 감수성을 키우는 것은 중요하다. 이와 동시에 위와 같은 질문을 활용해 학생들과 한반도의 평화에 관한 생각을 나눠볼 수 있다. 평화를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서로 다른 체제와 가치관을 가진 존재들이 어떻게 평화롭게 공존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시간을 꾸리는 것이다. 이렇게 할 때 학생들은 북한에 대한 일방적인 적대나 막연한 이상론을 넘어 균형 잡힌 인식을 바탕으로 한반도 평화를 위해 뜻을 보태는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6.20 세계난민의날: 과거의 피난 경험을 오늘날의 세계시민 감수성으로 확장하기
UN은 2001년 6월 20일을 세계난민의날로 지정했다. 난민은 전쟁과 박해, 폭력 때문에 자신의 나라로 돌아갈 수 없거나 돌아가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다. 국제 사회는 이들을 보호해야 할 존재로 규정해 왔다.
2018년 제주에 예멘 난민 500여 명이 무사증 입국하며 한국 사회는 전례 없이 난민 수용에 대한 견해를 놓고 큰 갈등을 겪었다. 당시 한국 사회에서는 이슬람에 대한 낯섦과 편견, 안전에 대한 불안, 난민 제도에 대한 낮은 이해가 뒤섞이며 큰 논란이 벌어졌다. 세계적으로 전쟁과 자연재해, 기아 등 여러 요인으로 난민이 증가하고 있고 1993년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에 가입한 대한민국은 협약 내용에 따라 난민을 수용하고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정치권을 비롯한 각계각층에서 난민 수용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높았던 것이 안타깝다. 물론 잘 모르는 대상에 대한 공포와 불안은 자연스러운 감정이지만 시민들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정부와 언론의 노력이 부족했던 것은 아닐지 생각이 든다. 당시 난민들의 국내 체류를 허용한다면 여러 종교적, 사회적 문제가 발생할 거라며 악성 선전과 선동을 일삼던 이들이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있었으나 십 년 가까이 지난 지금에서 보면 공포와 혐오에 기인한 근거 부족한 주장이었음을 알 수 있다.
2018년 예멘 난민 사태 이후 2021년 아프가니스탄 철수,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을 비롯한 여러 상황으로 전 세계의 난민 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이 인도주의적 관점을 바탕으로 한 세계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우리의 노력이 필요하다.
먼저 난민이 전쟁, 분쟁 및 기후 위기 같은 위기 상황에 안전을 찾아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라는 점에 주목하여 “우리 역사 속에서 일제 강점기 만주와 연해주로 떠나야 했던 동포들, 병자호란과 임진왜란 때 피난길에 올랐던 조상들, 그리고 6.25 전쟁 당시 전국의 피난민들은 사실상 고향을 잃은 '난민'이었습니다. 역사 속 선조들이 겪었던 피난길의 고통과 두려움은 오늘날 뉴스 속 세계 난민들의 모습과 어떻게 닮았나요?”와 같은 질문을 공유할 수 있다.
한국사를 들춰보면 19세기 중엽부터 재해와 흉년을 견디다 못해 간도로 이주한 재중한인이 있다. 일제의 만주사변 이후 조선인 집단 이주 정책으로 1940년에는 145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에게 가해졌던 폭력적 통치는 선조들로 하여금 중국 외에도 일본, 러시아를 비롯한 여러 곳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게 했다. 정치망명이자 독립운동 성격이 강했던 연해주로의 이주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처럼 우리가 겪었던 역사적 사실을 확인함으로써 현재 난민들의 처지를 우리의 과거와 견주어 보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또한 “6.25 전쟁 당시 우리나라는 유엔 한국재건단(UNKRA)와 국제 사회의 도움으로 전쟁의 상흔을 딛고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과거 우리가 받았던 이 '인도주의적 도움'을 고려할 때 2025년 기준 세계 13위의 경제 강국이 된 대한민국은 지구촌의 어려운 이웃을 대할 때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요?”와 같은 질문을 나눠볼 수 있다. 난민들이 처한 상황이 결코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역시 과거에 도움을 받았었으며 국제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상황에 국내에 들어온 난민들을 인도주의적으로 대우해야 함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만약 우리 학교나 우리 동네에 전쟁을 피해 도망쳐 온 난민 청소년과 그 가족들이 정착하게 된다면, 우리는 민주시민으로서 이들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요? 문화와 종교가 다른 난민들과 평화롭게 공존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나 사회적 준비는 무엇일까요?”와 같은 질문에 답해볼 수 있다. 실제 아프간 특별 기여자 가족들의 울산 정착 시 故 노옥희 교육감이 직접 청소년들의 손을 잡고 등굣길을 함께했었던 사진을 보여주면 좋다. 이 질문은 난민 문제를 먼 나라의 사건이 아니라 우리 학교와 동네가 마주할 수 있는 현실의 문제로 체감하게 한다. 그 과정에서 학생들은 타자와의 공존을 위해 필요한 태도와 사회적 준비의 필요성을 구체적으로 성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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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옥희 교육감이 청소년들의 손을 잡고 등교하고 있다. © 노옥희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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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유월 달력 속 기념일을 따라가다 보면 대한민국이 지나온 길과 앞으로 나아갈 방향이 한눈에 보인다. 6.25 전쟁은 전쟁과 피난의 고통을, 6.10 민주항쟁은 시민의 힘으로 꽃피워 온 민주주의를, 6.15 남북공동선언은 갈등 속에서도 대화를 포기하지 않는 평화의 태도를, 6.20 세계난민의날은 국경을 넘어 고통받는 모든 이들과 연대해야 할 책임을 일깨운다. 교실에서 이 기념일들을 질문으로 바꾸어 나갈 때, 학생들은 과거를 기억하는 데서 머물지 않고 오늘의 사회를 성찰하며 더 나은 공동체를 상상하는 민주시민으로 자라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