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미래를 먼저 경험했습니다’에서는 서울 서남권 중등교사들의 다문화교육 연구 공동체 <각색교사모임> 교사들의 교육활동 및 연대활동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기획 연재 제목은 아프간 난민과 함께한 1년을 기록한 시사IN 김영화 기자의 동명 저서에서 차용했습니다.
새로운 교육감님께
저는 소위 ‘다문화 학생 밀집 학교’의 교사로서 지금 만나고 있는 한 학생의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이 학생은 중학교 2학년이고 한국에서 태어났습니다. 나이가 아주 많은 아버지와 초등학교 3학년, 5학년의 동생들이 있습니다. 동포이신 아버지는 건설 노동을 하시는데, 나이가 70세 이시고 건강이 좋지 않으셔서 자주 일을 하지 못하십니다. 학생은 아버지를 도우러 가끔 따라갔던 건설 노동 현장을 아버지 없이 홀로 나가기도 합니다. 어린 학생이 새벽부터 일하러 가는 것이 마음 아파, “주민센터에라도 도움을 청하지 그러냐…?” 하고 물으니, “저는 외국인이에요.”라고 합니다. 순간 먹먹했습니다.
이주배경 학생들은 자주 비난의 말을 듣습니다. ‘한국어를 못한다’라는 이유로, ‘다른 언어로 자신들을 비난한다’라는 이유로, ‘잘 모르겠다. 그래서 의심스럽다’라는 이유로, ‘시선이 좋지 않다’라는 이유로, ‘이런저런 소문을 들었다’라는 이유로.
소문은 소문을 낳고 의심은 의심을 낳고 여기에 정치인들의 차별 선동 발언이 더해지기도 하면서 차별과 혐오 표현이 아이들의 일상에 스며들고 있습니다. 차별과 혐오의 일상은 한국어 교육을 하는 것조차 역차별이라고 하여 이 아이들의 삶을 어둡게 합니다.
저는 한국에서 태어나 14년을 살아온, 한국말만 할 줄 아는 제 학생이, 형편이 어려우면 주민센터에서 지원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수학여행이나 수련회, 체험활동에 슬그머니 빠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학생들처럼 지원받아 함께 하는 것이 당연한 학교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성화고에 가면 다른 여느 학생들처럼 실습도 취업장려금도 제대로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런 제 믿음이 이 시대에 이 세상에 어울리지 않는 것인가요?
제도적인 차별은 곳곳에서 이주 배경 학생들의 일상을 괴롭힙니다.
선주민들은 모르는, 이주민들에게만(외국인에게만) 그려진 경계, 이 제도적 차별을 폐기하기 위해서 저는 차별금지법을 지지하고 응원합니다. 한국말을 잘하건 못하건, 선주민 학생이건 이주 배경 학생이건 모든 학생이 평등하게 교육받아서, 학교생활을 회고할 때 차별을 경험하고 목격하는 시간이 아닌, 함께 어울리는 공존의 시간을 보냈다고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교육감님, 우리 학교 중앙현관에는 “공존의 힘으로 미래를 향하는 00중학교”라는 구호가 붙어 있습니다. 구호는 미래를 지향하는 언어이고 현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슬쩍 의미하기도 하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소위 밀집 지역의 학교에서는 공존의 힘은 점점 약해지고 미래에 대한 전망은 어두워집니다.
왜 그럴까요? 교육청도 이주배경 학생의 교육을 위해 매해 무엇인가를 합니다. 인력지원보다는 00운영지원금을 주시지요. 사람보다는 사람을 채용할 00 지원금을 주시지요. 교육청의 계획서는 화려한 컬러 디자인과 다양한 정책으로 가득한데, 현장은 왜 점점 더 힘들어지는 것일까요? 기본적으로 외국인에 대한 차별 내용을 너무 모르고 그 대체 방안에 대한 장기 계획을 외면하기 때문입니다. 즉각적 대응을 하기엔 외국인 학생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더욱 많은 학생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장기 대책은 무엇일까요? 저는 정책을 잘 모르지만, 시작이 어떠해야 하는지는 알 것 같습니다. 장기 대책의 시작은 외국인이라고 차별하는 모든 정책을 검토하여 시정하는 것입니다.
일부 교육감 후보는 거리에 ‘동성애·퀴어 교육 아웃’이라는 현수막을 걸었습니다. 이런 현수막을 보고 등교하는 아이들 앞에서 어찌 인권과 공존을 가르칠 것인지 마음이 무겁습니다. 당사자일 수 있는 아이들은 또 얼마나 아플 것인지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이 후보는 학교에서 차별과 배제를 가르치라는 것일까요? 차별금지법이 있는 사회여야 특정 집단을 비난하고 배제하는 이 무서운 혐오로부터 아이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건강하게 성장시킬 수 있지 않겠습니까?
교육감님, 미래 교육을 계획한다면, 외국인 학생들이 교육에 있어 어떠한 차별도 겪지 않도록 차별금지를 위한 실질적인 조치를 취해주십시오. 더 나아가 차별금지법이 만들어지도록 정치인들을 움직여 주십시오.
사람을 위한 지원보다 운영비만 찔끔 늘어나는 정책들, 즉흥적이고 단편적인 요란한 정책들이 아니라 긴 흐름을 가지고 아이들의 삶을 단단하게 세우는 조치들이 있어야 이 땅에 사는 학생들이 교육의 틀 안에서 평등하고 공존하는 삶을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야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묵묵히 힘든 시간을 보내는 학생과 이를 지켜보며 차별을 학습하는 학생들이 없는 미래 교육이 가능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