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흙바람 솔솔’에서는 '환경과생명을지키는서울초등교사모임' <흙바람> 교사들이 환경교육을 연구하고 학생들과 함께 진행한 환경생태교육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매년 3월 마지막 주 토요일, 1시간 불을 끄는 세계적인 캠페인인 어스아워(Earth Hour)는 매해 학생들과 함께하는 첫 번째 캠페인이다.
이번에도 친구들에게 어스아워를 소개하고 캠페인 참여를 독려하는 시간을 가졌다. 캠페인을 앞둔 수요일 아침, 시간표 한 칸에 ‘어스아워’를 적어두고 친구들을 맞이했다.
“어스아워? 뭐지? 지구 시간?”
“영어에 어스아워에... 오늘 시간표 별로네.”
‘어스아워’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대뜸 별로라니!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보다는 경계심이 먼저 발동하는 친구도 있는 모양이다. 어스아워는 세계자연기금(WWF)이 주관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기후 위기 대응 캠페인으로 올해로 20주년을 맞이했지만, 여전히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야 함을 새삼 느끼며 친구들에게 어스아워 캠페인을 소개하였다.
“지구에 휴식을 주는 의미로 매년 3월 마지막 주 토요일, 전 세계가 오후 8시 30분부터 9시 30분까지 1시간 동안 불을 꺼요. 우리가 환경을 위한 실천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왠지 어렵게 느껴지지만, ‘1시간 불 끄기’는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요?”
친구들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이어 불을 끄고 할 수 있는 재미있는 일은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갑자기 친구들이 눈을 반짝거리며 신나게 의견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한강 산책, 무서운 이야기하기, 탱탱볼 주고받기, 술래잡기, 가족끼리 서로 얼굴 그려주고 1시간 뒤에 비교하기 등 의견이 나오자 “너무 재미있겠다.”, “어스아워가 기대된다.”는 반응을 보이며 캠페인에 대한 기대와 관심도 자연스레 높아졌다.
“그런데 우리 대부분도 수업 전까지 어스아워가 무슨 행사인지 몰랐잖아요. 이 캠페인이 의미가 있으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도록 알려서 캠페인에 참여하는 한 시간에 더 많은 불이 꺼지게 해야겠지요.”
친구들에게 문고리에 거는 어스아워 홍보물을 만든 뒤, 사람들이 잘 볼 수 있는 곳에 걸어두자고 안내하였다. 친구들은 다른 반 친구들에게 제대로 알리겠다며 주변 교실의 실내화 가방걸이, 교실 문과 창가에 홍보물을 주렁주렁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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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들이 직접 만든 어스아워 홍보물. © 정봄이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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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옆집 문에 걸어 옆집에도 어스아워를 알릴래요.”
“학원 선생님께도 알리고 학원 친구들에게도 참여하라고 할 거예요.”
열심히 만든 홍보물을 손에 들고 신나게 하교한 친구들은 다음날, 자신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캠페인을 알렸다며 뿌듯해했다.
드디어 어스아워 캠페인의 시간. 불을 끄고 한강으로 향했다. 전날 “선생님은 한강을 산책할 건데 만나면 인사해요.”라고 친구들에게 이야기했더니, “저도 갈 거예요!” 하던 친구들이 있었기에 우리 반 친구들을 만나게 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도 있었다.
한강 근처에서부터 ‘펑’하고 화약이 터지는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설마 어스아워에 불꽃놀이를 하는 건 아니겠지.’
한강에 나가보니 다리 건너편 하늘에서 불꽃이 터지는 것이 보였다. 서울시는 어스아워에 동참하는 의미로 매년 신청사, 구청사, 교량 등 불 끄기에 참여하고 있기에 서울시가 주최하는 행사는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지만 ‘어스아워에 불꽃놀이라니….’ 납득하기는 어려웠다. 민간 업체라 하더라도 전 세계가 불을 끄며 에너지를 아끼는 1시간에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하며 환경오염 물질을 배출하는 행사를 진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이런 부적절한 행사로 불쾌한 나의 마음과 달리 불꽃이 터지는 소리를 듣고 모여든 시민들은 느긋하게 벤치에 앉아 불꽃을 구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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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스아워 당일 불꽃놀이가 한창이던 한강의 모습. © 정봄이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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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에게 알려줘야 할 것이 하나 생겼다.’며 발걸음을 옮겼다. 국회의사당과 교량의 불이 꺼져 평소보다 어두운 한강을 바라보며 걷다가 가족, 친구와 함께 한강 산책을 나온 친구들을 두 팀이나 만났다.
“선생님, 생각보다 밖이 어둡지 않아요.”
“저희 좀 더 걷다 갈 거예요. 월요일에 봬요!”
온 가족이 함께 나와 어스아워를 실천하는 친구들을 만나 한강 산책을 행복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어스아워가 끝나자, 인증을 알리는 사진과 댓글이 속속 하이클래스에 올라오기 시작했다.
“선생님, 그날 외국에서 친구가 오는데 어떡해요. 저 참여 못할 것 같아요.”
어스아워 캠페인을 소개했던 날, 친구가 온다며 난색을 표했던 친구의 인증사진도 올라왔다. 새까만 어둠만 가득한 사진 아래에는 학부모님의 글이 덧붙어 있었다.
‘친구가 놀러 왔는데 어스아워라 불을 껐더니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웃음이 떠나지 않네요. 뜻깊은 행사도 하고 즐거운 추억도 쌓고 감사합니다.’
월요일 아침, 다시 만난 아이들은 어스아워의 경험을 나누느라 벌써부터 들떠 있었다. 서로의 인증사진과 글을 하나하나 소개하며 어스아워 시간을 공유했다. 심지어 4시간 동안이나 불을 껐다는 친구의 말에 교실에는 큰 박수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한강에서 선생님을 만난 친구들 이야기가 나오자, 여기저기서 "나도 갈걸!" 하는 아쉬움 섞인 탄식이 이어졌다. 우리는 내년에 꼭 한강에서 만나자며 기분 좋은 약속을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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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급 학생들의 어스아워 인증사진. © 정봄이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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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끝에 나는 어스아워 당일 한강에서 보았던 불꽃놀이 이야기를 꺼냈다. 축제의 화려함 뒤에 숨겨진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 문제를 조목조목 설명하자 아이들은 이내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선생님, 어스아워 시간에 그건 정말 아니죠! 불꽃놀이 대체 누가 했대요?”
매년 가을이면 한강에서 화려한 세계 불꽃축제가 열린다. 하지만 우리 반 아이들은 이제 불꽃의 찬란함 이면에 가려진 문제를 떠올릴 것이다. 비판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한 아이들을 보며, 어스아워의 1시간이 단순히 불을 끄는 시간을 넘어 아이들의 마음속에 '지구'라는 나무를 심어주었음을 느꼈다. 우리가 지구를 위해 정성껏 만들어 낸 어둠은 그 어떤 불꽃놀이보다 훨씬 더 값지고 눈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