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미래를 먼저 경험했습니다’에서는 서울 서남권 중등교사들의 다문화교육 연구 공동체 <각색교사모임> 교사들의 교육활동 및 연대활동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기획 연재 제목은 아프간 난민과 함께한 1년을 기록한 시사IN 김영화 기자의 동명 저서에서 차용했습니다.
똑똑똑, 중도입국·외국인 청소년이 용기 내어 교문을 두드린다. 활짝 열릴 줄 알았던 문이 빼꼼 열리더니 누락된 서류를 꼼꼼히 확인하고, 한국어는 잘하는지 묻는다. 의심하는 눈초리와 난처한 기색. 낯선 나라에서 낯선 언어로 새로운 시작을 앞둔 (예비)학생들의 부푼 마음이 금세 푹, 하고 꺼진다.
중도입국·외국인 학생들은 학교에 들어가는 것부터 난관이다. 중고등학교에 들어갈 때 필요한 서류를 모두 갖춰도, 학생이 한국어를 못하면 ‘우리 학교는 ‘다문화학생’ 경험이 많지 않아서 학생이 적응하기 힘들 것이니 본인을 위해서라도 다른 학교를 알아보라’며 슬그머니 교문을 닫는다. 거절당하는 경험이 한국 학교에 대한 첫인상인 중도입국·외국인 학생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한국어가 낯선 학생들은 수업에서 배제되는 현실
서울다문화교육지원센터는 ‘한빛마중교실’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아동·청소년들이 일정 기간 한국어를 배운 뒤, 학적을 생성할 수 있도록 연계하는 프로그램이다. 모든 이주배경학생이 한빛마중교실을 거치지는 않는다. 위의 사례처럼 바로 학교로 취학·편입학하는 학생들이 더 많다.
한빛마중교실에서 3~6개월간 한국어를 배운 학생들이라 하더라도 학교에 들어가면 교과 수업을 버거워한다. 출신국과의 교육과정이 달라 배워야 할 내용은 많은데 선생님의 말은 빠르고, 온통 어렵고 낯선 단어들이다. 한빛마중교실 중등반 학생이 물었다. “(학교에서) 한국어를 잘 못하면 차별받나요?” ‘차별’은 학교 편입을 거절당하는 적극적인 차별 장면에서부터 적절한 지원이 없어 수업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채 교실에 멍하니 앉아 있는 장면까지 수많은 구체적인 장면을 포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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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다문화교육지원센터는 이주배경 학생들이 일정 기간 한국어를 배운 뒤 학적을 생성할 수 있도록 연계하는 한빛마중교실을 운영한다. © 서울다문화교육지원센터 누리집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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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마중교실을 수료한 베트남 출신 A를 ‘받아주는’ 고등학교를 알아보기 위해 서울다문화교육지원센터 다문화코디네이터는 열 곳이 넘는 학교에 전화를 돌려야 했다.
어렵사리 학교에 들어갔지만 A는 수업 내용을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국적은 한국이지만 어머니의 모국인 베트남에서 줄곧 생활해온 터라 한국어를 배운 지는 5개월이 채 되지 않았다. 교사에게 휴대전화 AI번역기 사용을 요청했다. 수업 시간에는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법’이라며 서울시교육청에서 제공하는 학생용 태블릿인 ‘디벗’을 건네받았다. 학습용 앱은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야 사용할 수 있다. 디벗을 켜보니 A가 쓸 수 있는 번역기는 파파고뿐이었다. 디벗으로 역사, 사회, 과학 등 교과 수업 용어들을 실시간으로 번역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나는 절대 AI번역기의 필요성을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교실에서 한국어 능력이 수준급인 어린이·청소년을 ‘학생’으로 상정하고 학습 상황을 설계하고 있으며, 지금의 교육 시스템에서는 다양한 배경을 지닌, 한국어가 낯선 학습자들이 수업에서 배제되기 쉽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한국어 능숙도를 고려하지 않는 수행 및 지필평가... 사실상 모든 과목 평가가 '한국어' 평가
수업 설계뿐 아니라 평가 역시 그렇다. 수행평가나 지필평가에서 이주배경학생들은 한국어 능숙도와 관계없이 다른 학생들과 동일한 평가에 참여한다. 평가는 학생의 성장을 측정하는 도구다. 한국어가 어려워 이해하지 못했을 뿐, 적절한 언어 지원이 있었다면 해결했을 과제이지만, 한국어 수준별로 계획을 수립하여 수업과 평가를 진행하는 데에 많은 품이 드는 데다, 성적 산출이라는 민감한 이슈에 이주배경학생에게 성적 상의 특혜를 제공한다는 식의 민원 우려가 있다 보니 획일적인 평가를 실시하게 된다.
이주배경학생에게는 국어, 사회, 수학, 과학, 역사, 영어, 음악, 도덕 할 것 없이 모든 과목의 평가가 한국어 평가나 다름없다. 성장할 기회가 박탈된 채, 형식적으로 진행되는 평가와 성적 산출에서 한국어가 낯선 이주배경학생은 다른 학생들의 들러리가 된다. 이주배경학생의 높은 학업중단율(전체 대비 약 1.5배)과 낮은 대학진학률(약 40%)에서 학교가 이주배경학생들을 포용하기보다 바깥으로 밀어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학교는 이주배경학생을 구성원으로 상상하지 않는다. 학생들 입장에서 자신이 ‘우리’ 안에 포함되지 않는 학교를 이탈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교사들 역시 이러한 상황이 찝찝하기만 하다. 수업과 학교생활이 학생에게 조금이라도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지만, 적절한 지원체계 없이 교사 혼자 또는 개별 학교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학교 구성원이 다양화되는 추세에서 학교 교육의 틀과 내용을 그대로 유지한 채 이주배경학생과 현장 교사들에게 숙제를 떠넘기는 지금과 같은 상황은 한계에 봉착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미래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어마어마한 예산이 투입되고, 교육노동과 수업현장 구석구석에 AI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지만, 정말로 시급한 ‘미래’는 이미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와 이미 현실이 되어있다.
위의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이 2012년부터 2025년까지 전체 학생 수는 줄어든 반면 이주배경학생 수는 꾸준히 늘었다. 이중 외국인 학생의 증가율이 두드러진다. 완전히 새로운 상황에서도 수십 년간 해온 방식을 바꾸지 않고 학생들을 성적대로 줄 세우는 해묵은 과거를 ‘미래’라고 내세우고 있다니 통탄스럽다. 기술의 미래가 아니라 사람의 미래를 고민하는 교육 현장에서 이주배경을 지닌 다양한 구성원과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진짜 미래교육’을 할 수 있도록 변화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 현장에 필요한 것은 늘 ‘사람’이다.
진짜 미래 교육이 필요한 때
지금처럼 교사들이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일하는 학교에 도착한 이주배경학생은 적절한 도움을 제공받지 못하고 덩그러니 방치되기 쉽다. 학생을 지원할 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그를 믿고 지지할 ‘사람’이다. 주눅들 때 손 잡아주고, 긴장했을 때 곁에서 웃어주는 사람.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학교 현장에는 잠깐 왔다가 떠나는 시간제 인력이 아닌 안정적인 고용 형태로 상주하는 전문 인력의 지원이 절실하다.
아무리 좋은 지원체계를 만들어놓아도, 바쁘고 예민해진 학교에 그것은 또 하나의 버거운 일로 여겨지기 쉽다. 이주배경학생과 관련된 업무의 양과 종류가 많아지면 업무 부담이 학생에 대한 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 지원체계가 잘 작동할 수 있도록 학급 당 학생 수를 줄이고, 교사의 수업 시수와 업무 부담을 줄이고, 학교 당 교사 정원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화장실 갈 시간 아껴가며 가까스로 쳇바퀴를 돌리고 있는 현장에는 다양한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
“선생님, 죽겠어요. 너무 어려워요.”
A가 지친 얼굴을 하고 센터에 찾아왔다.
베트남과 한국을 잇는 인권 변호사가 되겠다던 포부를 가진 A의 어깨가 축 늘어져 있다. 며칠 전 A는 고등학교에서 첫 중간고사를 보았을 테다. 몇 달 새 괴로워하는 표정만큼은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고등학생들과 똑같아져 있었다.
입시 경쟁 상황에서는 어떤 인권교육이나 민주시민교육, 다문화교육도 쉽게 웃음거리가 된다. ‘모두가 평등한 세상’에 대한 수업을 아주 많이 한다면 정말로 평등한 학교가 될 거라고 믿는 이는 아무도 없다. 학교는 학업성적에 따라 차등적으로 보상을 지급하며, 차별하고 차별받는 제도에 학생들을 길들인다.
아무리 ‘착하게 살자’고 외쳐도, 거대한 입시경쟁 시스템 안에서 내 동료는 친구이면서 이겨야 하는 적이다. 나부터 살아야 한다. 살벌한 입시경쟁의 장에 이주배경학생들을, 아니 모든 학생들을 다른 학생들과 똑같은 출발선에 세우고, 이토록 불평등한 세상에서 ‘그래도 시험 점수만큼은 공정하다’고 착각하게 하는, 모두가 차별받고 있는 상황을 지당하게 여기도록 가스라이팅하는 이 파국적인 블랙코미디의 결말을 바꿔볼 수는 없을까.
2021년, 울산에 아프간 난민이 도착했을 때, 울산시교육청은 100명에 가까운 아프간 학생들을 위해 한국어 교사부터 장애인 돌봄교사, 여건 개선 교사, 통역사 등 지원 인력만 90명을 투입했다. 울산시교육청 예산으로 26억원 가까운 돈을 썼고, 교육부가 특별교부금 약 19억 원을 지원했다.
우리가 봐야 할 것은 ‘그 돈을 국민에게 써야지’가 아니다. 차별적인 구조는 교활하게도 자신의 존재는 숨기고 동료 시민들이 서로를 미워하게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읽어내야 할 것은 우리는 절대로 동료 시민을 홀로 두지 않는다는, 그와 함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기어코 함께 해냈다는 경험이다. 새로운 우정의 힘으로 함께 차별적인 구조를 바꿔나가자. 새로운 이웃을 맞이하는 과정에서 가장 많은 수혜를 입는 건 해로운 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유지해 온 낡은 체제를 바꿀 기회를 얻은 선주민 사회일 것이다.
*지난 4월 6일, ‘이주배경학생 교육지원체계 모색을 위한 국회토론회’에서 사용했던 토론문을 재구성하여 작성하였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