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토머리를 지나고 개나리와 벚꽃이 동시에 피는 이상한 봄을 거치면 우리는 한낮 기온이 성큼 올라서 있는 5월에 접어든다. 봄꽃이 진 자리에 새잎이 나고 거리마다 초록이 진해지는 터라 눈이 즐겁고 낮 기온이 많이 올라 학생들의 옷차림도 가벼워진다. 이런 물리적 변화뿐 아니라 1학기를 두 달 정도 보낸 시점이라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 역시 눈에 보이지 않는 경험들이 켜켜이 쌓여 학기 초와는 사뭇 다른 형태로 바뀐다. 5월에는 어떤 제재로 민주시민교육을 시도할 수 있을까?
5월엔 정체성의 혼란이 찾아옵니다
근로자도 아니고
어린이도 아니고
어버이도 아니고
스승도 아닌데다
성년을 맞이하지도 않은 나는,
과연 누구입니까
나는 나의 어떤 면을 축하해줄 수 있습니까
<1년, 오은> 가운데
위 시를 인용한 까닭은 이번 글의 제재를 두 개나 다루고 있어서이다. 참교육달력의 5월은 첫머리부터 세계노동절이 반겨준다. 이번 정부 들어 ‘근로자의 날’에서 ‘노동절’로 이름을 되찾고 공휴일이 된 것이 참으로 기껍다. 그리고 어린이날은 시에 등장한 두 번째 기념일이다. 여기 더해 민주시민교육을 위한 제재로 참교육달력 속 기념일 중 세계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아이다호)과 5.18광주민주화운동기념일을 다룰 수 있을 것이다.
노동절 : 되찾은 이름
먼저 노동절 기념 수업을 할 때는 도입으로 표준국어대사전의 단어 용례를 활용할 수 있다. ‘노동’과 ‘근로‘의 뜻풀이를 비교해 보는 것이다.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하여 육체적 노력이나 정신적 노력을 들이는 행위’와 ‘부지런히 일함’은 학술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전자는 노동자의 능동성이 강조되는 것에 비해 국가나 사용자의 관점에서 ‘부지런히 일함’이 더 선호되기에 이승만과 박정희 등 과거 정권에서 꾸준히 ‘노동’을 지우고 ‘근로’를 정착시키려고 했던 역사를 짚고 시작할 수 있다. 1923년 5월 1일 시작된 노동절 행사를 1957년, 이승만의 주문에 따라 3월 10일로 바꾼 것과 1963년 노동절을 ‘근로자의 날’로 바꾼 사례를 비롯해 우리 사회에서 ‘노동’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다 보면 ‘노동’에 덧씌워진 부정적 관념을 확인할 수 있다.
뒤이어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이 조사한 <2025년 초중등 진로교육 현황조사> 속 학생들의 장래희망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중고등학생의 경우 상위 20개에 속한 직업 중 교사, 간호사, 경찰관, 제과제빵원 등 대다수의 직업이 노동자에 해당함을 짚어주는 것이다. 하종강 선생님의 말씀을 빌리자면 이 교실에 함께 있는 학생들이 “대부분 노동자가 된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면 본격적인 수업을 위한 준비가 된 셈이다.
다음으로 1886년 5월 6일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발생한 ‘헤이마켓 사건’에 관한 영상을 시청하면 좋다. 4:25까지만 시청하라는 이유는 채널A에서 제작한 영상답게 파업은 최대한 자제하고 협상, 중재, 여론 호소 등 평화적 수단을 통해 성공적으로 노동 운동을 했다는 식의 프레임 때문이다. 파업하는 노동자들이 무임금뿐 아니라 형사처벌 등을 감수하고 어째서 파업에 돌입하는지에 대한 상황 맥락을 외면한 프로파간다지만 역사적 사건에 관한 설명은 학생들과 함께 보기에 충분하다.
마지막으로 민주노총 등 노동단체가 노동절 의제로 다루는 ‘원청교섭과 초기업 교섭’, ‘모든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 ‘노동중심 사회대개혁’이 각각 의미하는 바를 간략히 공유하며 노동절의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다. 한국일보의 인터랙티브 기사 <중간착취의 지옥도>의 간접고용 노동자 인터뷰를 선택하여 읽고 기사를 통해 알 수 있는 문제점을 정리하거나 배달, 대리운전, 택배, 학습지 교사 등 우리 생활과 밀접한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들의 상황을 조명한 기사를 활용한다면 학생들의 몰입을 도울 수 있다. 또한 고등학생이라면 현재 카페나 패스트푸드점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도 더러 있기에 자연스레 완결성 있는 노동인권교육으로 마무리하기에 충분하다.
어린이날 :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어린이날에 무슨 계기교육일까? 하는 독자들의 의아한 표정이 예상된다. 하지만 어린이날은 단순한 법정공휴일이 아니다. 소파 방정환(1899-1931) 선생이 ‘어린이’라는 단어를 널리 퍼뜨리고 1922년 어린이의 날 선언에 이어 1923년 아동인권선언문을 발표한 것은 식민지 조선에서 어린이에 대한 인격적 예우, 아동노동 철폐, 배움과 여가 등을 주장하기 위함이었다.
성평등가족부에서 발표한 ‘2025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조합원들이 직장에서 만나는 중고등학생 의 10명 중 4명은 평상시 스트레스를 느끼며 10명 중 2~3명은 최근 1년 내 우울감을 경험했다고 한다. 또 정규 수업 시간을 제외하고 평일 하루 3시간 이상 학습하는 비율은 초등학생이 33.1%, 중학생이 40.3%, 고등학생은 42.8%이다. 물론 산업혁명 시기의 영국이나 20세기 초 미국이 아닌 다음에야 한국에서 아동노동은 엄격히 규제되고 있지만 공부 역시 ‘학습 노동’임을 생각하면 가볍게 생각할 문제는 아니다. 개인차야 있겠지만 학습 시간을 어린이와 청소년이 발달 수준 등을 고려해 과중하지 않은 수준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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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 청소년의 스트레스 인지율과 우울감 경험률 © 성평등가족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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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어린이날의 탄생 배경과 오늘날의 사회문화적 맥락 속 어린이, 청소년의 행복에 관해 연결 지점을 찾으면 학생들의 흥미와 관심을 불러일으키면서도 아동 인권의 측면에서 유의미한 계기교육을 준비할 수 있다.
이때 학생들이 아동 인권에 관해 잘못 이해하여 뭐든지 자신의 마음대로 하는 것으로 오해하지 않도록 소파의 “어린이를 재래의 윤리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여 그들에게 대한 완전한 인격적 예우를 허하게 하라.”를 되새겨볼 수 있다. 인용구 속 ‘재래의 윤리적 압박’이 유교의 영향에 따른 효도 관념이나 어른의 권위에 기댄 비인격적 대우라면 오늘날의 아동인권은 공부할 권리뿐만 아니라 쉴 권리를 충분히 보장받는 것, 모든 폭력으로부터 안전할 권리인 것이다. 더 나아가 학생들과 예의 있는 반말, 평어 사용을 지향하는 교사라면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의 “어린 사람은 아랫사람이 아니다” 캠페인을 소개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또한 학생들이 자신의 일과표를 작성한 뒤 이를 기반으로 ‘나의 학습 노동 시간’을 성찰하고 ‘쉴 권리’에 대해 토론하는 것도 준비하는 품은 적으면서도 학생들의 마음 속에 오랫동안 남는 수업이 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