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수업나눔은 교사의 일터이며 학생의 삶터인 20평 남짓한 교실, 그 안에서 가르치고 배우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선생님들의 일상을 공유합니다.
“제28조 1항. 교육감, 학교의 설립자·경영자, 학교의 장 및 교직원은 빈곤 학생, 장애 학생, 한부모가정 학생, 다문화가정 학생, 외국인 학생, 운동선수, 성소수자, 일하는 학생 등 소수자 학생이 그 특성에 따라 요청되는 권리를 적정하게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네, 여기까지 읽을게요. 서울학생인권조례를 함께 읽어봤습니다. 모르거나 중요해 보이는 조항, 그리고 특히 우리학교에서 잘 지켜지지 않는 조항들을 표시해 두었죠? 다음 시간에 그 조항들을 같이 보면서, 인권을 더 잘 보장하는 우리학교를 위한 제안을 만들어갈 겁니다.”
다행히 마냥 졸리고 지루해하진 않은 표정들이다. 학생들의 표정을 더 살피게 되는 건, 수업방식이 아주 단조롭기 때문인데. 한 시간 내내, 한 사람당 한 조항씩 돌아가면서, 서울학생인권조례의 1조부터 28조까지 읽는다(인권 보장의 구체적 내용들이 담긴 28조까지 같이 읽으면 중학교 45분 수업 중 40분 정도 걸린다. 29조부터 51조까지는 위원회, 기관 등 운영 체계에 대한 것이어서 생략해도 된다). 교실이 현란한 테크(tech)시연장으로 되어가는 시대에, 종이에 빽빽이 적힌 법조항을 그저 소리 내어 읽자고 하다니.
중학교 3학년 사회수업 첫 단원의 주제는 ‘인권’. 전 시간에는 헌법 제10조부터 제37조 1항까지의 인권 보장의 내용을 봤다. 인권을 공부하는 건, 법지식을 해박하게 외거나 교과서에 몇 개 제시된 인권 침해 사례의 분석에 그칠 수 없다. 인권 수업에서 우리는 ‘인권의 눈’으로 나와 내 주변을 새롭게 바라봐야 한다. 교실과 학교가 인권 친화적인 곳인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이 성취기준(?)을 달성하기 위해선 학생인권조례만큼 알맞은 수업준비물도 없다. 학생인권조례엔 차별받지 않을 권리(제5조),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제6조), 휴식권(제10조), 개성을 실현할 권리(제12조), 사생활의 자유(제13조), 자치활동의 권리(제18조), 학교의 복지, 환경, 급식, 건강에 관한 권리(제21조~제24조), 소수자 학생의 권리 보장(제28조) 등이 자세히 적혀있다.
“혐오 표현을 하지 않는 문화를 위해 어떤 노력하고 있을까요?”
“축제 계획은 여러분들의 의견을 진지하게 듣고 반영되나요?”
“휴식하기 위한 쾌적한 휴식공간이 마련되어 있나요?”
인권 보장의 내용이 우리의 얼마나 가까이 연결되어 있는지, 그렇지만 법과 현실이 또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 생각해보는 발문을 중간중간에 한다. ‘오, 이게 뭐지?!’ 하며, 몰랐던 세계를 마주한 표정도 있다.
“개인 스타일에 대해 공개적으로 창피를 주는 일이 없었으면 해요.”(개성을 실현할 권리)
“학교 뒤편의 노후한 외벽과 깨진 보도블럭이 위험해 보여요.”(위험으로부터 안전할 권리)
“수련회, 외부체험 활동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을 모으면 좋겠어요.”(문화활동을 향유할 권리)
반대로, 기대와는 달리 별다른 감흥을 이끌어내지 못할 때도 많다. 나이에, 위계에, 경쟁교육에, 짓누르는 통제의 언어에 자주 노출되어 살아왔기 때문일 거다. ‘이건 모두 너의 소중한 권리야’라고 하는 문구들이 아직은 어색하다.
그래서 내 입이 근질거린다. ‘스포츠 시간에 성별을 구분하여 신청을 받는 종목이 꼭 있어야 할까?’, ‘자전거 도로가 없고 거치대가 부족한데, 괜찮아?’ ‘징계 기록을 이유로 학생회장 입후보 자격을 자체를 제한하는 게 이중 처벌은 아닐까?” 그렇지만 내뱉지 않고 참는다. 각자가 천천히 인권의 눈을 만들어가길 바라면서.
이 수업을 시작할 때의 주의사항. 중학교 입학할 때 그 많던 수다쟁이들이 3학년이 되면 입이 무거워진다. 일년 내내 목소리 한 번 듣기 힘든 학생들도 많다. 그래서 한 조항씩을 읽는 게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닐 거라며, 자신의 차례에 다른 친구들도 잘 들리게 읽어달라고 한다.
그리고 꼭 이 말을 덧붙인다.
”목이 아프거나 또다른 사정으로 읽기 어려운 사람은 읽지 않아도 괜찮아요. 선생님에게 눈짓을 보내도 되고 그냥 망설이고 있으면 됩니다. 선생님이 알아차리고, 옆에 가서 같이 읽거나 대신 크게 읽을게요.”
약시, 난독증, 느린학습자, 선택적 함구증, 우울증으로 인한 대인기피증(사회불안장애), 한글을 아직 배우지 않은 이주배경 학생, 청력이 약해 발음이 새는 게 부끄러운 학생, 사람들이 자신에 주목한다는 느낌을 받으면 긴장하여 자해 행위를 하게 되는 학생 등.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할 수 있는 다양한 색을 가진 학생들이 있다는 걸 안다. 그래도 괜찮다. 그로 인해 비어버린, 버벅이는, 들릴까말까한, 그 어정쩡한 시간을 다른 친구들은 묵묵히 기다려준다. 잘 읽는 못읽든, 한 글자만 읽든, 선생님이 같이 읽어주든, 한 공간에서 우리는 읽는다.
한 명의 목소리가 다른 모두의 귀에 닿는다. 목소리를 내고 목소리를 듣는다는 건 우리를 다음 차원으로의 관계로 나아가게 한다. 서로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이 시공간은 일종의 ‘리추얼’이다. ‘리추얼(Ritual)’은 틀에 박힌 반복적인 업무인 ‘루틴(Routine)’이 아니다(「리추얼의 종말」 한병철(김영사, 2021)). ‘리추얼’은 의례, 정확히는 공동의 의례다. 리추얼은 공동의 가치를 공유하는, 그래서 연결된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함께 머무르는 시간’이다. 우리가 보장받아야 할 하나하나의 인권 내용들을 서로에게 ‘목소리로 드린’다(「목소리를 드릴게요」 정세랑(아작, 2020)). 이 리추얼로 우리는 인권이라는 온화한 공기를 만들어낸다.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등 어려우면서도 민감한, 민감하면서도 소중한 인권의 언어들을 담담하면서도 대담하게 안내한다. ‘혐오하지마’라는 꾸짖음와 또다른, 애두른 연대의 목소리가 소수자성을 가진(혹은 아직 스스로의 소수자성을 외면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학생들에게 가닿을 거다. 그래서 매년 학기 초에 해오는 학생인권조례 읽기는 나부터가 사회수업의 루틴이 아니다. 학생들을 처음 마주할 때 행하는 나만의 리추얼이다. 당신이 어떤 차이를 드러내도 안전하다고, 당신을 차별하는 그 어떤 언어도 나는 이 교실에서는 쓰지 않겠다고, 약속과 다짐의 리추얼이다.
(전국사회교사모임 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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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들의 활동지에는 인권을 더 잘 보장할 수 있도록 학교에 제안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 서재민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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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들의 활동지에는 인권을 더 잘 보장할 수 있도록 학교에 제안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 서재민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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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들의 활동지에는 인권을 더 잘 보장할 수 있도록 학교에 제안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 서재민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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