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먼저 경험했습니다 ①] "정상이 아닙니다."

한채민 교사·각색교사모임 | 기사입력 2026/03/03 [14:10]
참교육
이런 교육 어때요
[미래를 먼저 경험했습니다 ①] "정상이 아닙니다."
"너는 정상"이라는 당연한 말을 어떻게 꺼내 보여줄 수 있을까?
한채민 교사·각색교사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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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6/03/03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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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정상"이라는 당연한 말을 어떻게 꺼내 보여줄 수 있을까?

[편집자주] ‘미래를 먼저 경험했습니다’에서는 서울 서남권 중등교사들의 다문화교육 연구 공동체 <각색교사모임> 교사들의 교육활동 및 연대활동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기획 연재 제목은 아프간 난민과 함께한 1년을 기록한 시사IN 김영화 기자의 동명 저서에서 차용했습니다. 

 

▲ 학생이 교실 유리창에 붙여둔 메시지     ©한채민 교사

 

목에 헤드셋을 건 키가 큰 학생이 교실에 들어왔다. 아니, 끌려왔다. 키가 작고 마른 체형에 반짝이가 달린 스웨이드 재킷을 입은, 잔뜩 멋 부린 중년 여자가 학생의 등을 떠밀고 손목을 당겨 맨 앞줄에 앉혔다. 첫 수업 날이라 교실에 학생들을 환영하는 풍선과 가랜드를 붙이고 있던 참이었다. 여자는 헉헉,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내게 중국어로 인사했다.

 

"니하오."

"니하오."

나는 할 수 있는 유일한 중국어로 답했다. 학생이 나를 쳐다봤다. 내가 중국어를 할 줄 안다고 생각했는지, 여자는 길게 말을 해왔다.

 

"제가 한국어밖에 못해서요."

"아, 빨리 말씀하시지."

여자의 한국어는 유창했다. 반면 나의 중국어가 ‘니하오’에서 더 이상 이어지지 않음을 확인한 학생은 고개를 푹 떨궜다.

 

"얘는 김혜정이에요. 제 딸. 선생님이 한국어밖에 못해서 다행이네요. 얘 한국어가 빨리 늘어야 해서."

한국식으로 발음한 자신의 이름을 알아들은 혜정의 얼굴이 빨갛게 변했다.

 

"어휴, 얘가 열다섯 살인데 사람들 앞에서 말도 못하고 답답해요. 잘 좀 봐주세요."

혜정은 고개를 푹 숙이고 핸드폰만 만지작거렸다.

 

"반가워요. 담임 선생님이에요."

손을 내밀자 혜정은 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날 때 쯤 학생들은 눈을 마주치며 한국어로 인사를 하거나, 가벼운 장난을 치기도 했지만 혜정은 고개만 '꾸벅' 하고는 도망치듯 지나쳤다.

 

영영 나를 피하는 것만 같았던 혜정과 조금은 가까워진 것 같은 순간도 있었다. 혜정은 식당으로 이동할 때 나를 꼭 챙겨주었고, 체험학습을 나갈 땐 내 주변을 맴돌았다. 한 달이 다 되어갈 무렵에는 한국어로 말을 걸어오기도 했다. 한 번은 급식을 먹으며 이렇게 말했다.

 

"내 할매 밥 먹고 싶어."

"할머니 음식 그리워요?"

혜정이 끄덕였다. 핸드폰 사진첩을 뒤져 할머니 사진을 찾아 보여주었다. 혜정과 닮은 키가 큰 분이 할머니시구나. 혜정이는 할머니 음식이 먹고 싶구나. 할머니가 보고 싶구나.

 

이주배경 학생과 상담하는 일은 이주 경험을 듣는 시간이기도 했다. 학생들에게 최근에 발생한 가장 큰 변화와 그로 인한 어려움을 들으며, 가늠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사이의 거리를 재어보았다.

 

때때로 나는 매우 개인적이고, 민감할 수 있는 가족사에 대해 물었다. 교사는 선을 넘고, 사적인 영역으로 침입하는 질문을 학생에게 던지게 된다. 꼭 의사가 환자를, 경찰이 피의자를 조사하는 것처럼.

 

대화라기엔 한 방향으로 흐르는 질의응답 형식에, 채팅 상담을 하듯 핸드폰 번역기에 열심히 입력해야 고작 뭉툭한 몇 문장을 전달할 수 있었음에도, 학생들은 속 깊은 이야기까지 서슴없이 말해주었다. 자신에 대해 작은 부분까지 설명해주어야 어렴풋한 감을 잡는, 말도 안 통하는 교사에게. 이렇게 불편하게나마 자신의 이야기를 떨어내고는 조금이나마 가벼워지고 싶었을까?

 

핸드폰을 손에 쥔 혜정이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중국에서만 살아온 혜정이 어머니와 함께 사는 것은 3살 이후로 처음이었다. 어머니에 관한 기억이 거의 없었으므로 낯선 어른과 동거를 시작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저를 모릅니다. 그녀가 싫어요."

혜정은 한국에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싫다고 했다. 어머니는 퇴근이 늦었고, 밤늦게까지 집에 혼자 있어야 했다. 귀가한 어머니는 혜정이 핸드폰을 쓰지 못하게 했고, 모녀는 밤마다 크게 싸웠다. 혜정은 번역기를 쉼 없이 두드리며 계속해서 감정을 쏟아냈다. 한국행은 자신의 선택이었지만 지금은 후회한다고 했다.

 

"저는 정상이 아닙니다."

중국에서 학교 생활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은 어머니 상담을 통해 알고 있었다. 중국 학생들은 아침 일찍 등교해서 늦은 저녁 하교한다. 세 끼를 모두 학교에서 먹고, 규율이 엄격하며, 학업 경쟁에서 밀려난 학생들이 방치되는 구조라고 했다. 번아웃 상태인 혜정의 마음은 엄격한 생활을 버텨내기 힘들었다. '학업 스트레스'가 심했던 가장 친한 친구를 잃은 뒤, 혜정은 한국으로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혜정, 어떤 환경에 적응하고 싶지 않거나, 마음이 아픈 상태가 ‘비정상’인 건 아니에요."

"선생님, 저는 정상이 아닙니다."

더 묻고 싶었지만, 혜정은 더 이야기하고 싶은 기색이 아니었다. 나중에 몇 번 더 만나 대화를 나누자고 약속하고 상담을 마쳤다. 혜정이 마음 속 이야기들을 꺼내주었다는 사실이 고마웠지만, ‘정상이 아니’ 라는 말이 입 속에 씁쓸하게 맴돌았다.

 

학부모 총회를 앞두고, 나는 학생들에게 문제지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총회에 오신 보호자들에게 여러분에 대한 간단한 시험을 볼 테니, 자신에 대한 다섯 문제를 출제해 달라고.

 

"보호자분들 상담하면서 채점 해드리려고 해요. 따로 나눠준 작은 종이에 답을 적어주세요."

학생들은 머리를 싸매고 괴로워하며 문제를 냈다. 도무지 뭘 물어봐야 한다는 건지 모르겠다는 학생도 있었다. 한국어로 작성하느라 시간이 더 걸리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다섯 문제를 내는 데에 꼬박 한 시간을 다 썼다. 학생들이 출제한 문제와 답을 외우기 위해 천천히 살펴보았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뭐야?"

"내 키는 몇이야?"

오랜 기간 보호자와 떨어져 지내다가 한국에 오면서 함께 살게 된 학생들은 기본적인 내용을 물었다.

 

"내 생일이 언제야?"

이 질문을 쓴 학생은 한국에 오기 전에는 부모와 함께 살아본 적이 없다.

 

질문들을 읽으며 기본적인 이해와 공감이 부재한 환경과 안전한 관계망 바깥에 놓인 학생들이 보였다. 부모가 자신의 생일이나 취향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지를 의심하는 학생들이 ‘이주’라는 완전한 환경의 변화 속에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그러다 혜정의 문제지를 읽었다.

 

"엄마는 내가 레즈비언이라면 어떤 반응을 보일 거야?"

첫 번째 문제였다. 나는 그 문제에 멈춰서 입 속에 씁쓸하게 남은 혜정의 말을 떠올렸다. ‘저는 정상이 아닙니다.’ 객관식도, O/X 퀴즈도 아닌 이 문제의 답을 혜정은 무어라 적었을까. 혜정의 출제의도는 무엇일까. 답지를 들춰보았다. 1번 문제의 답이 비어있었다.

 

이 문제지를 혜정 어머니께 그대로 드려도 될까? 고민이 되었다. 만약 혜정이 어머니에게 커밍아웃을 하고 싶은 거라면, 이런 방식은 괜찮은 걸까? 며칠 전에도 어머니와의 갈등으로 인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했고 중국어 상담 선생님을 연결해둔 상태였다. 이 문제지를 어머니에게 그대로 드리는 것이 혜정의 안전을 위해 옳은 판단일까. 아니라면 혜정이 원하는 일을 내가 임의대로 막아도 되는 걸까. 내가 그 정도로 개입해도 되는 걸까.

 

동료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혜정이 커밍아웃으로 여겨질 가능성을 모를 수 있으니 확인해보라는 조언을 받았다. 청소년기에는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부모에게 의지하는 만큼 폭력의 피해도 클 수 있기 때문에 커밍아웃을 원한다면 안전한 상황인지 확인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나는 한 번 더 혜정과 이야기를 나눴다.

 

"1번 문제에 답을 안 적었던데요. 어머니가 문제를 풀면서 왜 이런 문제를 냈을지 궁금해 하실 것 같아요."

"선생님, 저는 정상이 아닙니다."

"정상이 아니라는 말이 1번 문제와 관련이 있는 건가요?"

"네. 저는 중국에 여자친구가 있어요."

 

중국에 있는 여자친구는 가족들에게 커밍아웃을 했고, 정체성을 지지받으며 자신과 영상통화도 당당하게 한다고 했다. 혜정은 가족 누구에게도 커밍아웃을 한 적이 없었다. 한국에 온 뒤 여자친구와 멀어져서 더 힘들었다. 핸드폰을 빼앗기면서 연락도 잘 하지 못했고, 애틋한 말을 나누다가도 어머니가 돌아오시면 황급히 전화를 끊는 혜정에게 여자친구는 냉랭해지고 있었다. 여자친구의 마음을 풀어주고, 더 자주 연락하기 위해서 어머니에게 커밍아웃을 하고 싶다고 했다.

 

"말해줘서 고마워요. 어머니에게 말씀드리면, 어떤 반응을 보이실 것 같아요?"

"모르겠어요."

"그럼, 어머니가 어떤 반응을 하길 원해요?"

"..."

 

혜정은 뜸을 들이다가 번역기에 이렇게 썼다. 

"너는 정상이란다."

 

그렇게 말하고는 1번 문제를 지우고 싶다고 했다. 어머니에게 말하고 나면 어머니가 자신을 더욱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물건을 집어 던지며 싸우다가 이웃의 신고로 경찰이 찾아온 일도 있었다고 했다. 혜정은 커밍아웃을 하면 상황이 더 나빠질 거라고 예상했다. 그렇지만 한 번은 크게 터트리고 싶었다고. 나는 혜정의 커밍아웃을 방해한 것일까를 고민하며 혜정이 번역 앱을 참고해 새로운 문제를 써넣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나에게 무엇을 원해?" 혜정은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썼다.

"없다."

 

"없다"는 말은, 원하는 것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혜정 그 자체로, 지금 이대로도 충분하다는 의미일 것이었다. 상담을 마치며 나는 혜정에게 한국어로 물었다.

 

"혜정이는 자기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나요?"

"..."

혜정이 답하기 어려워하자, 나는 번역 앱을 써서 다르게 물었다.

 

"혜정이에게 꿈이 있나요?"

"네."

"무엇이에요?"

"가끔 꿉니다."

 

그러더니 휴대전화 메모장을 찾아 어젯밤 꾸었던 꿈 이야기를 번역해서 보여주었다. 부모님이 죽는 내용이었다. 잘못 이해된 ‘꿈’ 질문으로 나는 혜정에 대해 알지 못했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혜정이는 꿈을 메모하는 사람이구나. 원하는 답을 듣지 못했으므로 '너의 장래희망이 무엇이냐'는 뜻이었다고 다시 말하려다가 그만 두었다. 잠은 잘 잤는지, 꿈은 꾸는지 안부를 나눈 것으로 충분했다.

 

꿈을 메모하는 혜정에게, "너에게 원하는 것이 없다"는 존재에 대한 온전한 수용을, "너는 정상"이라는 당연한 말을 어떻게 꺼내어 보여줄 수 있을지. 나는 새로운 문제를 풀어보기로 했다.

 

* 연재 첫 글을 쓴 저는 각색교사모임에서 활동하는 한채민입니다. 서울다문화교육지원센터(다+온센터)에 파견을 나와 있습니다. 서울다문화교육지원센터는 한국에 갓 입국한 이주배경청소년들의 학교 편입학 서류 준비를 돕고, 한국어 수업 등을 제공하는 곳입니다. 서울 대림동에 위치하고 있어 중국배경 학생 비율이 높습니다. 글에 등장하는 ‘혜정’은 가명이며, 당사자의 동의를 얻어 서술한 정보 외의 개인정보가 특정되지 않도록 일부 재구성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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