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좋아하는 만화 중 최규석 작가의 <울기엔 좀 애매한>이 있다. 입시미술학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군상극 만화인데, 각종 인물들이 겪는 갖가지 웃픈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읽고 나면 만화 제목처럼 웃기도 울기도 뭐한 애매한 감정으로 헛웃음, 쓴웃음을 지으며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이와 비슷하게 학교 현장에 있는 조합원들과도 이야기를 나누거나 상담하다 보면 이따금 어이없고 화가 나지만 단체협약이나 각종 법 조항에 걸릴 만한 정도는 아닌 내용들이라 조합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행동하기 어려운 상황들을 간혹 듣게 된다. 이런 상황에 놓이면 특별히 뾰족한 수는 없기에 잘해 봐야 분회 방문을 통해 관리자와 면담하며 중재하는 것이 한계인지라 조합원들이 흡족할 만한 결과까지는 내지 못하는 것이 다반사이다.
그래서 오늘은 학교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 중 빈번히 발생하기는 문제이기는 하나 고발하기에는 좀 애매한 일들을 몇 가지 알아보고자 한다.
‘○○○ 선생님? 올려주신 공문 회수하시고 이 부분 고쳐서 다시 상신하세요!’
수업이 없을 때면 하루에도 몇 건씩 결재를 올리곤 하는 것이 교사들의 일상이다. 결재를 올리는 것 정도는 늘 하는 것이지만, 오류를 발견하면 회수 후 수정하여 재상신을 요구를 지나칠 정도로 하는 관리자들이 간혹 있다. 당연히 문서에 오류가 있으면 수정이 필요하다. 문제는 업무관리 시스템 상에서 수정해도 될 정도의 사소한 실수조차 회수를 요구하는 경우다.
본래라면 ‘작성-상신-결재’로 끝날 일을 ‘작성-상신-회수요청-회수-수정-재상신-결재’로 만들어 버리니 결재 과정을 최소 두 배로 만들게 된다. 그나마 이것도 한 번에 수정이 끝나야 가능한 것이지 몇 번이고 수정을 하게 되면 시간과 노력이 이보다 곱절은 더 들게 된다. 그런데 일을 하는 입장에선 이 상황이 굉장히 비효율적이지만 결재의 책임은 관리자에게 있기에 ‘꼼꼼히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회수 및 수정을 요청하였다.’라고 하면 이렇다 할 문제 제기를 하기 어렵다. 다만 통상적인 경우가 아니라 악의적으로 특정 교직원에게만 지시를 내리거나, 별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반복적으로 요구를 할 때는 ‘갑질 및 부당업무 지시’로 고발할 수 있다.
‘○○○ 선생님? 오늘 무슨 일로 조퇴내시는 건가요?’
개인 사정이 생겨 방과후 조퇴를 냈는데, 관리자가 결재를 금방 처리하긴 하지만 복무를 낼 때 조퇴 이유를 묻는 경우가 많다면 어떨까? 매번 그러는 것도 아니고 꼬치꼬치 이유를 캐묻는 것도 아니라면 썩 기분 좋은 상황은 아니지만 문제 삼기는 애매해서 굳이 문제 삼지 않고 유야무야 넘어가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특히 최근 ‘교원휴가에 대한 예규’가 개정되며 이런 식으로 복무 사유를 묻는 경우가 늘어났다는 이야기가 많이 들려온다. 이는 예규에 명시된 연가 사유 9호(기타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소속 학교의 장이 인정하는 경우)가 해석을 두고 다툴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관성을 가지고 시행되는 것이 아닌 관리자의 성향에 따라 분쟁의 여지가 있는 예규의 해당 부분을 개정하거나 폐지하라는 교사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복무 관련 구두 보고나 사전결재는 필수 절차가 아니라는 지침(교원인사과-13404. 2022. 6. 29.)이 있어 관리자가 사전 승인을 강요한다면 문제를 삼을 수 있다.
‘근무지 내 출장 가실 때 되도록 4시간이 넘지 않도록 상신 부탁드립니다.’
관리자들 중 출장시간에 대해 굉장히 깐깐하게 요구하는 분들이 간간히 있다. 4시간이 무슨 의미가 있길래 출장 시간 4시간을 넘지 말라고 하는 걸까? 정답은 여비지급 기준에 있다. 일반적인 출장에서 4시간 이상이 되면 2만원, 4시간 미만은 1만원의 출장비를 지급한다. 이 때문에 출장비를 절약하려고 4시간 이야기를 하는 관리자들이 나오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연수로 인한 출장이 잡혔는데 시각이 2시~5시인 경우라면 여러분은 출장 시간을 어떻게 잡아야 할까? 아마도 연수 시간 3시간에 앞뒤의 이동시간을 포함하여 보통 4시간 정도로 상신할 것이다. 그런데 관리자가 이동시간이 학교에서 20분 정도 거리니 4시간 넘지 않게 3시간 40분 정도로 출장을 다시 내라 한다면 어떨까?
관리자의 인색함에 ‘고작 1만원 때문에 저러냐?’며 볼멘소리를 하겠지만, 관리자와 실랑이해가며 4시간 출장을 받아낼 가치가 있다고 보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학교에서 출장이란 학교장의 명에 따라 교사가 지정된 장소에서 공무를 수행하는 것이며, 굳이 관리자와 불편한 관계를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위의 세 가지 사례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은 학교 현장에서 작동해야 할 법과 규칙이 없어서 발생하는 것이 아닌 개개인의 성향과 도덕성에 기인하여 일어날 수 있는 문제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문제를 해결한다며 점점 법과 규칙을 촘촘히 하는 것 또한 능사는 아니다. 규칙이 많아지다 보면 결국 도덕이 작동할 여지는 줄어들게 되고 자유는 사라지게 된다. 이는 민주시민교육을 지향하는 교육 현장에서 썩 반길 일이 아니다.
만화 <송곳>의 대사처럼 ‘여기선 그래도 되니까!’가 용인되는 것이 아니라 ‘여기선 그러면 안 되니까!’가 될 수 있도록 불편한 상황을 묵인하지 말고 일단은 이야기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