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길은 멀지만 이른바 교권 4법이 모두 통과됐다. 그러나 그 후 교육 관련 소식을 들을 때마다 배신감이 느껴진다. 대통령과 교육부 장관이 한마음으로 교사를 우롱하고 있다는 생각이 고개를 쳐들고 올라온다. 보이스 피싱을 당하면 기분이 이럴까?
대통령의 간담회, 떡고물과 공갈
처음은 갈라치기였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주 1회 교사들을 만난다면서 6개 교원단체 중 교총과 교사노조를 편입시키고 전교조를 비롯한 4개 단체를 배제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현직 교사들과 간담회를 진행했다.
여기서 수당 인상 소식이 들렸다. 20년간 제자리인 수당이 드디어 인상된다는데 그게 하필 수십만 교사들의 공교육 정상화 요구에 대한 답처럼 주어졌다. 더 정확히 표현한다면 “이거 먹고 떨어져라”고 던져준 떡고물처럼 주어졌다. 이처럼 모욕적인 수당 인상이라니.
거기에 학폭업무를 경찰로 이관하겠다는 대통령의 호언장담이 있었다. 교육적 검토는 둘째 치고 과연 실행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실행계획 없는 호언장담은 공갈일 뿐이다. 그렇게 대통령과 간택된 현직 교사의 만남이 진행된 후 정부의 '공교육 말살 3연타'가 날아왔다.
1타! 교육 예산 삭감 - 차 떼고 포 떼고 남은 돈으로 공교육 정상화해
“자, 만 원 줄 테니까 문제집 사고 남은 돈으로 맛있는 거 사 먹어!”
자녀에게 용돈 주며 우스갯소리로 건네던 말이었는데, 이 일이 지금 교육계에서 벌어지고 있다.
유・초・중등 교육예산이 7조 1천억 원 넘게 깎였다. 더 가관인 것은 유・초・중등 교육예산 떼어 대학 지원하는 것에 이어, 이제는 깎인 돈으로 어린이집까지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별도 예산을 편성해도 풀어야 할 문제가 많은데 나라 운영 참 편하게 한다.
이런 식이라면 공교육 정상화는 고사하고 지금처럼 유・초・중등교육이 운영되는 것도 불가능하다. 과연 내년에 학교는 어떻게 돌아갈 것인가? 코로나 3년의 터널을 이제 막 벗어난 아이들을 다시 경제 위기의 시대, 교육재정 파탄의 어둠으로 몰아 넣으려는가?
교권 침해 학생을 분리할 수 있게 고시는 만들었으니, 돈과 인력은 없지만 학교에서 알아서 대책을 세워보라는 지시는 시작에 불과한 것이었다. 공교육을 살리랬더니 유・초・중등 교육예산을 삭감하고는 차 떼고 포 떼고 여기저기 다 떼주고 안전한 교육활동 보장은 남은 돈으로 하란다. 이건 교사 우롱을 넘어서 공교육을 앙상하게 말려 죽이는 일이다.
2타! 교원 정원 축소 - 느리게 진행되는 구조조정
학령 인구가 줄고 있어도 학급 수는 그렇게 줄일 수 없는데 교원 정원은 선제적으로 드라마틱하게 줄이고 있다. 정부는 올해 교사 정원을 3,201명 줄인 데 이어 내년에 다시 2,500명의 교사 정원을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줄어든 교사 정원으로는 학교 운영을 할 수 없으니 학교에서는 한시적 기간제교사 정원이라도 늘려달라고 했다. 그런데 내년 한시적 기간제교사 정원을 더 줄이겠단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 정부가 생각하는 해법은 간단하다. 남은 교사가 더 높이, 더 멀리, 더 힘차게 달리면 된다. 교사를 쥐어짜서 노동강도를 높이는 것이다. 선제적 교사 정원 축소는 사실상 느리게 진행되는 구조조정이다.
그러나 이미 초등학교에서는 전담교사를 줄이고, 중학교에서는 담임에 부장까지 겸하며, 고등학교에서는 수업 시수가 늘어나는 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준비 안 된 고교학점제 한다고 담당 과목 수까지 늘어나는 형국이다. 거기에 기존 업무는 없애지 않고 해마다 새로운 업무가 더해진다.
‘바쁜 교사’가 가장 나쁜 교사라는데, 내년엔 ‘가장 바쁜 교사’가 되어야 한다. 교사 정원 확보는 공교육 정상화의 기본 조건인데, 선제적 교원 정원 축소야말로 교육 당국에 의한 교권 침해이지 않은가?
3타! 2028 대입개편 – 교육양극화의 끝장판
거기에 이번 2028년 대입 정책 개편은 어떠한가? 대학 체제 개편 없이 수능은 9등급제를 유지하며 내신만 5등급제로 바꾼다는 계획이다. 내신의 부담을 줄여준다지만 입시를 외면할 수 없는 고등학생들에게 사실상 수능의 영향력을 높이는 것이다. 2028 대입개편안 발표에 벌써 사교육 시장이 들썩인다.
거기에 정부는 자사고·외고·국제고 전형을 손보는 시행령 개정안도 입법 예고했다. 여기엔 자사고 사회통합전형 미충원 인원의 최대 50%를 일반전형으로 선발할 수 있도록 하는 디테일이 숨어 있다. 사회적 배려 따위는 가볍게 던져버린다.
이렇게 대놓고 사교육을 양산하는 정책이야말로 공교육 말살 정책이다. 공교육이 무력화되고 사교육이 더 커진다면 극심한 교육양극화는 필연적이다.
이토록 철저한 공교육 죽이기라니! 교육 백년대계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 정권을 잡았을 때 확실하게 공교육을 말살시키겠다는 치밀하고도 집요한 작전과도 같이 느껴진다. 그런데 정부의 계획대로 3박자가 딱딱 맞아 돌아가면 어떻게 될까? 분명한 것은 그 피해가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간다는 것이고, 우리 사회는 언젠가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이주호는 배신하지 않았다
여기에 연 2회 수업 공개를 의무화하겠다는 건 덤인가? 정부에서 이렇게 나오는데 어찌 분통이 터지지 않을 수 있는가? 그러나 차분히 생각해 보면 대통령도, 이주호 장관도 교사를 배신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머릿속에 있던 계획대로 경제 논리에 따라 공교육 죽이기를 차근차근 진행하는 것일 테다. 오히려 정부의 계획에 ‘검은 점’과 ‘검은 파도’의 출현이 돌출된 변수였겠다. 그러니 배신감은 버리자.
정부의 패는 던져졌고, 우리의 선택이 남았다. 아마도 교육 당국은 교사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따라야지 어쩔 수 있겠냐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그냥 이렇게 흘러갈 수 있나?
지난 10차 전국교사집회에서 한 교장 선생님은 5.31 교육 체제를 대체할 새로운 교육의 청사진을 우리가 그리자고 제안했다. 마음을 울리는 제안이었다. 교사를 우롱하는 정부의 선의에 기대지 않고 공교육 정상화의 희망을 우리의 힘으로 이뤄 보자고 마음먹은 우리들이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우리는 서로의 힘에 의지해서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싸워야 하지 않겠는가?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 했는데 현 정부는 최소한 교사의 신의는 잃었다. 노동 3권도, 정치기본권도 없는 교사들이 뭘 할 것이냐고 교사를 우롱하는 정부는 필요 없다. 그래, 한번 해보자! 추운 겨울과 함께 한판 대결이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