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튜브 대한민국정부 채널에 올라온 '초등학생 늘봄학교 저녁 8시까지 운영'(왕과 신하 편) 갈무리
|
‘학교 안팎의 다양한 교육자원을 활용하여 희망하는 초등학생에게 정규수업 전후로 제공하는 양질의 교육‧돌봄(Educare) 통합 서비스’라고 하는 늘봄학교가 시범 운영된 지 3개월여가 지났다. 가정‧학교‧지역사회의 협력으로 교육‧돌봄 국가책임 강화를 비전으로 하겠다는 늘봄학교는 현장에서 어떻게 운영되고 있을까? 2025년부터 전국 초등학교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과 돌봄을 제공하겠다는 늘봄학교의 현재를 진단하고, 국가가 책임지는 돌봄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를 고민해보자.
현장에서 도출된 문제는 외면한 채
늘봄학교는 시범 운영 단계에서부터 여러 가지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다. 현재 대부분의 방과후 프로그램이 학교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어, 방과후학교와 관련된 교사의 행정업무가 과중한 상황이다. 늘봄학교가 단위학교 중심 운영으로 이루어져 학교와 교사의 업무부담이 더욱 증가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학교 현장의 우려에 교육부는 늘봄학교의 추진방안의 핵심은 지역교육청을 운영 주체로 전환해 전담 인력을 지원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즉, 단위학교 중심으로 운영하던 방과후학교를 교육청 중심으로 전환하고 행정 전담인력을 배치하여 학교 업무를 경감시켜 현장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5월 17일 시범 운영 이후의 늘봄학교 정책 운영 방향을 발표하며 “늘봄학교 담당교사제를 확립하겠다”라고 말해 사실상 학교와 교사에게 늘봄 업무를 전가하겠다고 선언했다.
늘봄학교 시행 이후 업무에 대한 학교 구성원 간의 갈등, 교사에게 전가된 과도한 늘봄학교 행정업무, 돌봄 학생들의 하교 시간 차이로 인한 안전 문제, 공간의 부족으로 돌봄 겸용 교실 증가, 돌봄 프로그램의 질 문제 등이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는 해결하지 않은 채, 돌봄의 ‘양적 확대’만을 과시하며 무리하게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독일의 전일제 학교...사회복지제도 속에서 운영
늘봄학교는 윤석열 정부의 110대 국정과제에 포함된 내용으로 ‘전일제학교’를 이름만 바꾼 것으로 크게 참고가 된 것이 독일의 전일제학교 모델이다. 독일의 경우 우리와 같이 기존의 반일제학교에서 돌봄 공백 및 부모의 경제적‧사회적 지위와 관계없이 동일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에서 전일제학교가 시작되었다. 즉, 사회적 돌봄체계 안에서 양질의 교육에 대한 공정한 기회 제공이 근본적인 목적이다. 독일의 방과후돌봄정책은 다음의 특징을 갖는다.
첫째, 독일의 방과후돌봄에 대한 지원은 체계적이고 촘촘한 공적 시스템에 의해 작동된다. 즉, 정부의 체계적인 지원의 중심에 있는 독일형 사회 보장제도가 교육복지 부문을 포섭하고 있다. 따라서 교육적으로 불리한 아동들에게 안전한 사회적 관계망을 제공하는 중심 주체도 학교가 아닌 별도의 공적 기구인 청소년청이 된다. 즉, 학교 밖 청소년 사업을 주로 담당하며 학교와는 기능적으로 역할 분업체계에 놓여 있는 청소년청이 중심이 되어 학교, 지역 아동‧청소년 단체 등과 유기적인 협력체계에서 방과후돌봄 사업이 진행된다.
독일은 정규 교육활동 이후의 아동‧청소년 안전망 과제를 학교 교육이 아닌 기타의 공적 사안으로 간주하여 학교에서 전담하도록 함으로써 학교들이 기능과 역할의 과부하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둘째, 독일의 방과후돌봄정책을 위한 구축 작업은 주로 학교와는 별도의 학교 밖이라는 공간적으로 구분된 차원에서 이루어지며, 학교 밖 돌봄과 교육은 외부의 공적 기관을 중심으로 학교와 지역사회단체와의 유기적인 협력관계 하에 운영된다. 그리고 실제 운영 주체들은 자격증을 갖춘 전문 인력이다. 이들은 철저히 공공기관에 소속된 준공무원 이상의 안정된 지위에서 전문적인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셋째, 언어교육이나 문화교육 등을 통해서 결핍된 삶의 경험을 보충해 주는 독일의 방과후돌봄 장치들은 전통적으로 '자아형성'을 의미하는 Building 개념에 뿌리를 둔 독일의 전형적인 교육철학으로부터 기인한다. 학교교육의 테두리를 벗어나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자극이 될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의 총체가 곧 자아형성의 소재가 될 수 있기에 열악한 환경의 아이들에게 결핍된 경험을 충족시켜주는 것이 정책적 방향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청소년청이 제공하는 방과후돌봄 등 학교 밖 교육 프로그램은 학교 교육과정을 넘어서는 다양한 삶의 경험을 제공해주는 데 목표를 둔다. 풍부한 여가 및 문화시설 제공, 음악 및 미술 등과 같은 문화 예술적 체험, 여행과 같은 낯선 자연 및 문화와의 접촉 등이다.
독일에서 교육적으로 열악한 아이들에 대한 정책적 배려는 인적 네트워크뿐만 아니라 아이들을 둘러싼 환경요소의 개선, 문화적 체험과 같은 경험망의 확충을 포함한다.
무작정 아이들을 오래 잡아두는 돌봄정책
현재 우리나라 교육부가 확대 운영하고자 하는 ‘늘봄학교’ 정책은 어떠한가? 늘봄학교 정책의 도입과 운영의 과정에서 ‘학부모의 돌봄 수요’는 있지만, 학교생활과 구분되는 ‘아이들의 방과후 삶에 대한 고민’은 찾아보기 어렵다.
하루 대부분을 학업으로 보내는 많은 공부량 탓에 공부와 삶의 균형을 잃어버린 아이들이 늘고 있다. 무너진 삶의 균형 탓에 아이들은 몸도 마음도 상처받고 있는 현실이다. 학교에서 10시간 이상을 보내게 되는 아이들이 일과 내에서 편안하고 안전하게 휴식하고, 의미 있는 배움을 경험할 수 있을까?
휴식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방과후돌봄이 무작정 아이들을 오래 잡아두는, 휴식없이 교육만이 시행되는 장소가 되어서도, 막연히 의미 없이 노는 시간만을 제공하는 곳이 되어서도 안 된다. 돌봄의 질과 방향에 대해 살피고, 건강한 성장을 위해 돌봄 내 교육활동이 정규 교육과정 내 활동과 어떻게 연계되어야 하는지 깊이 있게 논의해야 한다.
현재 학교 현장에서 발생하고 있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제시되어야 한다. 학교는 사회의 변화와 요구에 따라 많은 변화를 수용하였다. 예전과는 다르게 다양한 기능을 하고 있고, 그 결과 교사보다 많은 다양한 직종의 교직원들이 근무한다. 그러다 보니 각자의 이해관계가 달라 갈등 또한 커지고 있다. 학교돌봄의 확대에 앞서 현재 발생하고 있는 현안에 대한 충분한 법적‧제도적인 보완이 마련되어야 한다.
학교 교실은 온종일 돌봄에 적합한 공간이 아니다. 대부분의 초등돌봄교실은 학생들이 정규수업을 마친 뒤 그 교실을 다시 돌봄교실로 활용하는 겸용 교실의 비율이 높다. 교실은 단순한 강의실이 아니라 교육이 이루어지고, 교육 전시물이 전시되고, 학생의 개인 물건이 보관되며 교사에게는 방과후에도 학생들의 평가결과를 정리하는 곳이다. 또한 수업을 준비하는 곳, 학생과 학부모의 상담실, 보충교육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즉 수업이 끝났다고 하여 빈 공간이 되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행복한 삶을 위해 학업 못지않게 중요한 체육‧예술 분야의 방과후 프로그램을 운영하기에도 적절하지 못한 공간이다.
교육부는 올해 1월, 늘봄학교 추진방안에서 돌봄공간 확보를 위해 거점형 돌봄기관을 구축하고 학교복합시설(수영장, 체육관, 돌봄시설 등)설치를 확대하겠다고 밝혔지만, 5개월여가 지난 지금까지도 구체적인 마련 계획은 전무하다.
학교돌봄확대와 함께 가정 돌봄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고용노동부와 ‘저녁 있는 삶’ 정책 연구를 병행하겠다고 했던 이주호 교육부는 여전히 “진행 준비 중이다”라는 말만을 반복하고 있다. 아이를 키우는 모든 가정이 안정적인 환경에서 육아를 실천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는 스웨덴에서의 방과후돌봄은 국가와 부모가 공동의 책임과 협력으로 함께 아이를 키운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웨덴뿐만 아니라 서방유럽(독일을 포함한 북유럽 국가), 미국까지도 돌봄의 방향이 아동중심이어야 한다는 것은 세계적 흐름이다. 즉 별도의 돌봄정책, 별도의 돌봄기관을 강조하기에 앞서서 국가와 사회가 가정과 부모에 대하여 적극적인 양육지원을 함으로써 아동중심의 돌봄을 중요한 기저로 삼고 있다. 실제 학령기 아동을 둔 부모의 퇴근시간은 방과후돌봄서비스가 주로 제공되는 프리티즈헴(레저타임센터)의 종료시간에 맞추어지며, 프리티즈헴이 종료되는 시간 이후에 대부분의 아동들은 가정에서 부모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초등학교 늘봄학교가 저녁 8시까지 운영되니 마음 놓고 ‘야근’하라는 대한민국 정부의 정책 광고가 씁쓸하기만 하다.
교육복지 확대라는 사회적 요구에 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방과후돌봄정책은 충분한 국민적 논의와 합의를 통하되 궁극적으로 교육복지 확대라는 사회적 요구에 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며, 이에 기반한 세부방안을 안정적이며 실효성 있게 추진해가야 한다.
우리의 경우는 아직 방과후돌봄정책의 중핵이 아동의 안전한 보호에 있는 것인지, 교육활동의 연장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가치를 추구하여야 하는 것인지 명확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따라서 지역과 학교 현장에서는 방과후돌봄의 책임이 학교에 있는 것인지 지자체 등 지역사회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가정에 있는 것인지에 대한 다툼도 존재한다. 방과후돌봄의 기본 방향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부족함에 기인하는 것이다.
현재의 첨예한 입장 차이를 해결하기 위해 앞으로 다양한 방안들이 제시되겠지만, 그 어느 경우도 속도보다는 방향이 중요하다. 교육부는 2025년 늘봄학교 전면 실시라는 무리한 일정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교육현장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교육 주체들과 함께 최선의 대안을 찾는 사회적 합의과정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