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교원들에게 법적 근거에 따라 중징계를 하겠다는 무시무시한 계고장이 도착했다. 으름장에 머무르게 될지, 또 다른 공교육 탄압의 신호탄이 될지는 미지수이다. 하지만 교원 입장에서 저 계고장을 띄운 이가 ‘교육부 장관’이라는 사실이 뼈를 때리는 아픔과 놀라움이다.
서이초 선생님 사망 49재를 맞아 슬픔에 차있는 교원들이 함께 추모 집회를 열겠다고 하자 교육부가 신속하게 꺼내 든 것은 따뜻한 위로와 공감의 메시지가 아니라 법과 원칙에 기반한 으름장과 협박이었다.
교육부는 교원들의 자율적이고 양심적 판단에 따른 연가와 병가를 불법으로 간주하고 일일이 들여다보고,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임시 휴업을 하겠다는 학교장의 판단 근거가 되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47조(휴업일 등)의 ②항」 ‘학교의 장은 비상재해나 그 밖의 급박한 사정이 발생한 때에는 임시휴업을 할 수 있다’에 언급된 ‘급박한 사정’에 대해 ‘전혀 급박하지 않다’고 단정 짓고 한 손에는 법이라는 철퇴를, 또 한 손에는 전수조사라는 살생부를 들고 9월 4일을 기다리고 있다.
학교장이 판단하는 ‘급박한 사정’이 교원들의 연가, 병가 신청으로 인해 수업과 업무의 공백이 일어날 것이라는 염려에 근거한 것이라는 시각은 명백한 판단 착오이다. 진짜 급박한 사정은 따로 있다. 그것은 이대로 가다가는 교원 사회의 붕괴를 초래함과 동시에 학교와 공교육이 파멸될 것이라는 위기감이다.
서이초 선생님의 사망 사건은 원자 하나의 분열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오늘 오후나, 내일 오전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며 결국 ‘각자도생’해야 한다는 공포는 원자핵 분열의 연쇄반응으로 순식간에 번지고 있다. 그 연쇄반응의 끝이 무엇인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그 누구도 제어할 수 없는 파국이 벌어질 것이라는 충격과 공포를 학교 교육 구성원들이 이미 느끼고 있다. 그것이 ‘급박한 사정’의 본질이다.
‘그 밖의 급박한 사정’에 대한 법리적 해석과 다툼은 9월 4일 이후 교육부와 언론 매체들이 친절하게 안내해 줄 것이다. 교육부가 지난한 법 해석과 다툼의 과정이 교권 회복과 공교육 정상화라는 사태의 본질에서 국민들과 교육계의 시선을 거두어 갈 수 있다는 영민한 계산을 했을 거라고 믿고 싶지는 않다.
다만, 염려하는 부분은 교육부가 법과 원칙이라는 현미경으로 학교를 들여다보느라 교원과 학교의 자율 영역, 다시 말해 ‘학교 자치’라는 액체가 가득 담긴 비커를 팔꿈치로 건드려 깨뜨리지는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는 구성원들이 함께 고민하고 시행착오를 거쳐 가며 교육 정책을 해석하고 재구성하여 창의적으로 실행하는 주체로 거듭나고 있다. 학교장이나 업무 담당자 혼자서가 아닌 교원들과 학부모,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해 가며 행위 주체성을 발휘했고 스스로 ‘학교 자치’, ‘학교 교육과정의 자율성’의 영역을 확보해 갔다.
그 결과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오는 정책 집행의 흐름이 이제는 학교와 지역 사회, 교원 학습 공동체로부터 시작되어 교육청, 교육부와 함께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학교자치'가 자리잡게 되었다. 학교 자치에서 기반한 학교의 자율성과 민주시민성은 학교와 교원을 국가 수준 교육과정의 수용자이자 혁신의 대상에서 교육과정 수립과 운영 주체이자 교육 혁신의 실천가로 거듭나게 만들었다.
‘9.4. 공교육 멈춤의 날’에도 학교 교육과 교원이 회복하는 계기로 삼기 위해 학교 구성원이 자치적 역량을 발휘하여 지혜롭게 대응하는 학교들이 많이 있다. 9월 4일이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하지 않고 배움과 가르침도 멈춤이 되지 않도록 업무와 수업 공백에 대비해 교직원들이 의논해 역할 분담을 하는 한편, 대안적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 추모와 성찰의 시간도 함께 가지며, “우리가 학교를 지키고 있을 테니 나 대신 잘 다녀오라”고 격려하는 관리자와 부장 교사들도 있다. 담임 선생님에게 존경과 사랑의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학생, 아이들 걱정말고 잘 하고 오라고 지지와 공감을 표현하는 학부모님 모두 학교의 구성원이고 학교 자치에 참여한 시민이다.
영국의 정치경제학자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은 자신의 저서 ‘자유론’에서 인간이 절대 침해 받아서는 안 될 자유로 ‘내면의 자유’, ‘선택의 자유’, ‘결사의 자유’ 세 가지를 꼽았다. 그 가운데서도 다른 사람의 자유를 박탈하거나 자유를 얻기 위한 노력을 방해하지 않는 한, 각자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는 자유는 반드시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우리는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되는 방향으로 자기식대로 인생을 살아가다 일이 잘못돼 고통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설령 그런 결과를 맞이하더라도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가게 되면 다른 사람이 좋다고 생각하는 길로 억지로 끌려가는 것보다 궁극적으로는 더 많은 것을 얻게 된다. 인간은 바로 그런 존재이다.”
학교와 학교 구성원은 어떤 존재인가? 오는 9월 4일, 서이초 선생님의 49재를 추모하고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성찰의 계기로 삼기 위해 양심과 자율적 판단에 근거한 복무 행위를 하려는 교원은 어떤 존재인가? 그리고 그러한 가슴 아픈 선택을 허용해 주고, 교원들과 학생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해당일을 재량 휴업일로 정하여 운영하고자 하는 학교장과 학교 구성원은 어떤 존재인가?
교육부가 만병통치약처럼 여기는‘법과 원칙’의 한쪽 측면에 따르면 그것은 ‘잘못된’ 선택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자율’적이고 ‘양심’적으로 선택하는 교원과 학교, 그리고 그것을 존중하고 격려하는 교육부와 교육청의 선택은 대한민국 교육과 학교 구성원에게 더 많은 것을 얻게 할 것이다. 학교장을 비롯한 학교 구성원들이 자치적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는 학교는 자유롭고 민주적인 의사 결정이 일상화되어 있다. 그리고 교원과 학생, 학부모의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교육 활동은 학교가 당면한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동시에 자유롭고 민주적인 시민을 더 많이 길러내고 있다.
자율과 선택의 결과로 우리는 가끔 멈추고 돌아가기도 하지만 천천히 그러나 앞으로 가고 있다. 인간은 그런 존재이며, 자유와 선택은 그런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의 학교도 그런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