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학교폭력예방법 개정으로 엄벌주의가 강화되면서 피해자를 가해자와 대면시키지 않는 것이 피해자 보호와 회복을 위한 상식처럼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가해자를 엄하게 벌해도 피해자의 회복은 별개이고, 회복 과정은 쉽지 않다는 것을 현장에서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 가해학생에게 접근금지, 학급교체, 강제전학 조치 등이 내려지고 피해자를 위한 심리상담 및 조언, 치료 및 요양 조치가 가능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학교폭력을 신고해도 가해학생 조치별 세부기준에 따라 강제전학 조치는 매우 낮은 비율로 내려지고, 피해학생과 같은 학교에 다니는 것이 보통이다. 학교폭력 조치 이후 다음 해에 가피해 학생이 같은 반으로 배정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나, 몇 해 지나면 같은 반에서 만나기도 한다.
2012년도부터 회복적 정의(회복적 접근)에 대한 번역 서적이 출판되기 시작했고, 2014년도이후로 회복적 정의에 입각한 실천경험을 담은 회복적 생활교육 서적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즈음 명칭은 조금씩 다르지만 회복적 생활교육 관련 단체들이 생겨났다. 회복적 접근은 가해자의 처벌이라는 응징보다 피해자의 회복에 중점을 두고 피해자의 참여와 가해자의 자발적인 책임 이행에 초점을 맞춘다. 가해자의 처벌에 초점을 맞추다보면 피해자의 회복을 놓칠 수 있다. 피해자 측에서 원하는 것이 겉으로는 가해자의 엄벌과 불법행위에 대한 금전적 배상으로 보이지만, 피해학생이 원하는 것은 진심어린 사과와 앞으로는 학교폭력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신뢰있는 약속과 다짐이다.
2019년도 학폭예방법의 개정으로 학교장 자체해결제가 도입되었고, 같은 법 시행령에 회복적 접근에 기반한 관계 회복프로그램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명문화되었다. 뒤이어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에서 관계회복 프로그램 자료를 제작하여 보급하였다. 그런데도 여전히 관계 회복프로그램은 학교에서 잘 시도되지 않고, 단위학교에서 관계회복을 위한 화해와 조정 예산은 편성되는 경우가 드물다.
관계회복을 위한 노력은 교내에서 담임교사, 동료교사, 전문상담교사, 관리자 등이 하거나 교육지원청의 관계회복 지원단 중심으로도 가능하다. 학교와 교육청 외에 학교예산투입을 통한 푸른나무 재단(구 청예단)이나 회복적 생활교육 관련 단체들의 개입도 효과적이다.
개인적으로 교사, 학생, 학부모로부터 수많은 학교폭력 상담사례들을 접했다. 사안 발생 초기 정확한 사실확인도 못하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관련 당사자들은 매우 불안해하고 힘들어했다. 만약 사안의 전모를 파악하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알고 실천할 수 있도록 누군가가 가운데에서 도와준다면 학폭문제 때문에 짧게는 1~2주간, 길게는 몇 달 동안 고생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대부분은 준사법기구와 같은 학폭위 심의과정에서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건강도 상하고 같은 가족끼리도 심하게 다투고 괴로워하는 일이 다반사다.
교사는 늘 인간 사이를 관찰하고 교육하고 돕는 존재다. 학생과 학생, 학생과 학생집단, 학생집단과 학생집단, 학생과 교사, 교사와 교사 사이에서 무수한 일들을 경험한다. 교사야말로 관계의 문제를 가장 깊게 이해하고 적절하게 도울 수 있다. 학생 사이의 갈등, 갈등과 폭력의 경계선에 있는 문제, 경미한 학교폭력 사안, 심각하지만 관계회복의 가능성이 있는 분쟁을 해결하는 데 적임자다. 모든 교사가 그렇게 할 수는 없지만, 화해와 조정, 협상의 과정, 관계회복 프로그램, 집단상담 등 관계회복과 관련된 연구와 학교현장에서의 실천을 통해서 학교폭력 문제들이 교육적으로 해결될 수 있도록 이끌 수 있다.
드라마 ‘더 글로리’와 정순신 국가수사본부장 임명사태로 학교폭력 엄벌주의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지만, 교사들은 그것이 절대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엄벌이 불필요한 것이 아니라, 엄벌 뒤에 소외되는 피해학생을 어떻게 하면 회복할 수 있을지 보다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전문적인 상담과 치료적 접근이 필요한 경우가 있고, 관계회복으로 접근하는 것이 나을 때도 있다. 어쩌면 사안이 심각함에도 피해자 관계회복에 적극적이지 않은 가해학생의 경우는 소년법과 형법으로 엄벌하고 불법행위에 대한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묻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최근 들어 학교에서 학교폭력 사안처리를 위해 아무리 노력해도 학부모 민원을 피할 수 없다는 자조섞인 목소리가 학교폭력 담당교사와 학폭이 발생한 담임교사로부터 들린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데 역시 피해학생도 내 제자고 가해학생도 내 제자다. 법적인 처분이야 학교 밖의 학폭위에서 맡을 것이니, 이럴 때일수록 교육자로서 관계회복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건강하게 회복되어 각자 성장의 결을 따라 자라날 수 있을지 우리 교사들이 좀 더 고민하며 함께 실천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