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예산 지원해 드릴게요, 선생님!”
미술 선생님과 도서관 협력수업을 시작하게 된 것은 2019년이다. 협력수업을 함께 할 교과교사를 찾기 위해 평가계획서를 한참 들여다보고 있는데, 미술과의 ‘예술가의 방 만들기’ 수행평가가 눈에 띄었다. 예술가의 생애를 살펴볼 수 있는 미술사, 회화책들은 이미 도서관에 20권 이상 있었다. 신규 2년차인 나의 적극적인 대시에 신규 1년차 미술 선생님은 흔쾌히 응해주셨다. 도서관 협력수업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서는 아니었고 “제가 예산 지원해 드릴게요, 선생님! 저 예산 있어요.”라는 말에 아주 크게 혹하셨던 듯했다. 미술 선생님은 만들기 수업을 진행하려면 아무래도 이것저것 재료 사느라 예산을 많이 써야 했을 테고, 나는 도서관 협력수업 명목으로 지자체의 교육경비보조금을 신청하여 운영비가 조금 있었다. 그렇게 협력수업을 시작했고, 그 수업은 4년 연속 계속 되었다.
가장 중요한 '협력' 작업은 '과제도서' 함께 꾸리기!
사실 과제도서 꾸리는 작업은 교과 전문가인 교과교사가 혼자 할 수도 있고, 정보 전문가인 내가 혼자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진정한 도서관 협력수업은 바로 과제도서 목록 작업을 협력하는 것! 과제도서 코너를 협력하지 않은 협력수업은 공간 대여에 지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도서 목록을 작성하고 의견을 주고 받다보면 시간이 더 많이 소요되기는 한다. 여유가 없어 둘 중 한 사람이 작업을 하게 된다면, 교과교사에게 맡기기보다는 현재 자료 소장 유무, 복본 유무, 예산 등등을 먼저 고려하기 위해 사서교사가 목록을 작성하는 것을 추천한다. 하지만 혼자 작성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내가 찾은 목록을 교과 선생님이 검토해주신다면 교과 전문성이 추가되는 것은 물론, 실제 수업에서 학생들이 주제도서를 정할 때 교사가 적당한 자료를 추천해주는 것이 훨씬 쉬워진다.
예술가의 방 만들기 수업도 처음에는 내가 먼저 우리 도서관에 있던 미술사, 회화, 화가에 대한 책 목록을 정리하여 미술 선생님께 보여드렸다. 미술 선생님은 내가 작성한 목록에 학생들이 좋아하는 특정 예술가에 대한 책을 추가했고, 학생들이 보기 더 쉽고 유용한 미술사 책도 추가했다.
그다음 해에는 첫해 만들었던 목록에 학생들의 진로를 반영하여 좀 더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를 살펴볼 수 있는 목록으로 수정하셨다. 나에게 목록 꾸리는 것을 100% 맡기셨어도 마땅히 했을 텐데, 감사하게도 미술 선생님은 사전에 학생들에게 원하는 예술가를 다 사전조사하셨고 작년에는 그에 맞는 책을 직접 골라 1차 목록을 작성해오셨다. 그 목록을 내가 살펴보고 도서관 장서와 대체할 수 있는 것, 같은 주제로 좀 더 최근에 발행된 것 등을 고려해 목록을 다시 조정했고, 없는 자료는 구입 후 소장 중인 것들과 합해 과제도서 코너를 마련했다. 도서관 협력수업 예산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던 첫해에는 공공도서관의 단체 대출 서비스를 통해 과제도서 양을 늘리기도 했다.
도서관에 비치한 과제도서 코너 아이디어 스케치 후 미술실로 과제도서를 옮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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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가 더 많이 배우는 수업
2019년에는 우드락을 잘라 방의 틀을 만들고, 학생들이 자신이 정한 콘셉트에 맞게 직접 벽과 바닥을 칠했다. 다음 해에는 다양한 패턴을 프린트해서 바닥재와 벽지로 활용할 수 있게 했다. 작년에는 ‘인형 옷 만들기’ 천 모음을 사서 그 천들로 벽지, 커튼, 이불 등을 만들게 했다. 미술 선생님은 해를 거듭할수록 요령이 생겨, 학생들이 좀 더 쉽고 고급스럽게 방을 꾸밀 수 있는 아이디어를 내주셨다. 나는 매해 협력수업 명목으로 운영비를 신청하여 미술과에 재료비 30만원 가량(도서구입 별도)을 지원해 주었다.
완성된 결과물은 처음에는 1층 중앙현관에 전시했다. 다음 해엔 2층 홈베이스에 전시하기도 하고, 작년엔 도서관에 전시를 했는데, 구경 오는 손님들이 꽤 많다. 미니어처 전시회라고 소문이 나 학생뿐 아니라 다른 교과 선생님들도 구경을 오셨다. 전시된 아이디어 스케치와 작품을 함께 보며 소품 이모저모를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학생 작품 :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업실 학생작품 : '쿠사마 야요이'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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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선생님과 함께 과제도서 목록을 작성하다 보니, 미술사에 대한 지식이 많이 늘었다 싶은데, 학생들의 결과물을 보고 배운 것이 더 많았다. 모네의 취미가 정원 가꾸기였다는 것, 이중섭이 담뱃갑에 그림을 그리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 쿠사마 야요이가 어린 시절의 학대로 아픔이 있다는 것. 겉으로만 알았던 미술사 지식에 더 깊은 알짜배기 내용이 추가된다. 공짜로 훌륭한 미술 전시회를 볼 수 있는 수업이었다. 올해 학교를 옮겨 미술 선생님과의 ‘예술가의 방 만들기’ 수업은 어렵지만, 평가계획을 간만에 열어 다른 또 유익하고 재미있을 수업을 물색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