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의 신도시 중 한 곳인 ‘기업도시’에는 2019년에 설립된 섬강초등학교가 있다. 37개 학급으로 시작된 학교는 현재 54학급의 큰 학교가 되었다. 섬강초등학교는 ‘강원행복더하기학교(강원도형 혁신학교사업 명칭)’로 개교했고, 혁신교육의 가치와 방향을 잃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그 이면에는 구성원들이 주인이 되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손상달 선생님이 있다.
강원도 내 최초의 초등학교 공모교장이기도 한 손상달 선생님은 2019년부터 2022년까지 주어진 4년의 임기를 마치고 다시 평교사로 복귀할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전교조 강원지부는 다시 평교사로 돌아와 조합원으로 재가입하신 선생님을 찾아뵈었다.
▲ 손상달 선생님이 평교사가 되어 조합원으로 재가입하고 있는 모습 © 이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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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손상달 선생님 안녕하세요? 아무래도 선생님을 잘 모르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첫 교직 생활은 어떠셨는지, 그리고 전교조와의 인연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도 이야기해 주세요.
A. 1988년에 정선으로 발령받고 교직 생활을 시작했어요. 전교조가 1989년에 창립을 했죠. 처음 학교에 갔을 때 접한 교직 문화는 참 지독했어요. 무척 권위적이고 연공 서열도 심하게 따졌던 때라 경력이 적은 교사들은 눈치를 많이 볼 수밖에 없었지요. 예전에 ‘대한교련’이라는 단체가 있었어요. 지금 한국교총의 전신인데, 나도 모르게 가입이 되어있더라고요. 교사 개인에게 선택권을 맡기고 의사를 존중하는 문화가 아니었던 거예요. 철저한 상명하복 속에서 허락받지 않은 일은 시도하기 어려운 경직된 학교문화였습니다.
그러다가 1990년 전교조 창립 1주년 행사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당시 정선에도 7∼8명 정도의 해직 교사가 있었어요. 참 많았죠. 전교조 창립 1주년 행사에서 만난 선생님들의 모습은 정말 새로웠어요. 누구보다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넘치시는 분들이었으니까요. 거기다가 당시 관례로 받아오던 ‘촌지’를 스스로 거부했고, 교실 안에서 학급문집을 만들거나 글쓰기 교육을 꾸준히 실천하는 모습도 참 매력적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반(反)교육에 맞서서 참교육을 실현하는 분들이었죠. 그래서 바로 가입했어요. 그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네요.
Q. 전교조 조합원으로 산 세월이 30년이라니…, 저는 감히 상상도 되질 않네요. 그러면 선생님께서 지난 30여 년 간 전교조 조합원으로 살아오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A. 많은 일이 있었죠. 특히 교직원 회의를 바꾸기 위해 노력했던 게 기억에 많이 남네요. 얼마나 딱딱하고 관료적이었던지 애국가도 부르고 국민의례도 있었어요. 그리고 혹시 ‘교사의 노래’라고 아시나요? 그런 노래도 불렀죠. 그런 분위기 속에서 젊은 저경력 교사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고 반대 의사를 밝힌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죠. 하지만 저는 그게 참 견디기 힘들더라고요. 전교조 활동을 하면서 그런 문화를 바꾸기 위해 노력했고, 후배들에게도 같이 한번 바꿔보자며 애를 썼던 게 기억에 많이 남아요.
그리고 ‘체육진흥회’라는 게 있었어요. 학교에서 운동부나 체육활동 독려를 위해 만들어진 조직인데 대체로 학부모들에게 체육진흥회 간부나 임원 역할을 맡기고선 돈을 걷는 게 일이었어요. 그래서 새학기가 시작되면 가정방문을 명분으로 학생들의 집들을 돌면서 가계 상황을 파악하고, 경제 수준에 맞게 임원 역할을 부탁해요. 저는 그게 참 힘들더라고요. 일수 가방 들고 수금하러 다니는 것도 아니고…. 교사의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들었죠. 그래서 이 체육진흥회 없애려고 고군분투했던 일들도 기억에 많이 남아요.
쉽지 않았지만, 이런 낡은 관습과 폐해들을 없애고 학교문화를 바꿀 수 있었던 것은 주변의 많은 선생님의 지지와 응원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아까 말했듯이 제가 정선에서 첫 교직 생활을 시작했고 무려 16년 6개월 동안 근무했어요. 전교조 건설 초기에는 해직 교사들이 정선의 지회 사무실에 머물렀었는데, 이분들에게 생활비를 제대로 챙겨주기 힘들잖아요. 조합원들에게 조합비를 걷기도 했지만 그걸로는 턱도 없죠. 그래서 일반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후원금을 받았어요. 해직 교사들에게 당시 본인 월급 수준의 70% 정도밖에 드리지는 못했지만, 그만큼의 후원금을 모을 수 있었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가요? “우리 전교조 활동이 절대 잘못되지 않구나!”. “우리를 도와주는 이들이 많이 있구나!”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에 보람을 느끼면서 실천에 나설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Q. 주변 사람들로부터 지지와 응원을 받는 일만큼 보람찬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지금의 전교조도 되짚어볼 대목이라고 생각되네요. 이어서 시간을 좀 훌쩍 뛰어넘어보겠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도내 첫 초등학교 내부형 공모 교장이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쉽지 않은 도전이었을 텐데 어떤 계기로 교장이 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A. 제가 정선에서 16년 6개월을 보낸 후에는 주로 원주와 횡성에서 근무했어요. 교직 활동도 전교조의 참교육 실천과 궤를 같이했고, 그러다 보니 혁신학교 운동에 관심을 많이 기울이고 관련 활동을 많이 시도했어요. 2010년에 우리 강원도에서 혁신학교연구회를 처음 만들어서 함께 공부도 하고 다양한 연수들을 시도했죠. 경기도 남한산초등학교 사례처럼 우리 강원도에서도 뭔가 새로운 시도를 만들어보자는 결심이 모아졌어요. 그러다가 2011년 횡성 서원초등학교에서 처음으로 선생님들이 의기투합해서 학교혁신 운동을 펼쳐냈고요. 이후 2014년 원주 판부면 용수골에 위치한 서곡초등학교로 가서 활동을 이어갔지요. 특히 서곡초등학교에서 많은 성과를 냈었던 것 같아요. 처음 80여 명 6학급 수준의 학교가 4년 뒤에 180여 명 13학급 정도로 성장을 했으니까요. 지역의 7개 기관이 모여 ‘서곡교육네트워크’가 꾸려지고, 교육의 울타리가 학교를 넘어 지역사회와 함께 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확대되기도 했죠.
그러던 차에 이곳 기업도시에 새롭게 학교가 설립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새롭게 설립되는 이 학교도 혁신학교로 멋지게 만들어보자는 동료 교사들의 마음들이 모이게 되었어요. 그래서 2018년 28명의 선생님으로 준비위원회가 구성되었지요. 물론 저도 함께했고요. 각자가 생각하는 학교의 모습, 교육의 방향을 치열하게 토론하고 논의하면서 학교설립을 위한 준비에 매진했어요. 그리고 준비위원회 활동이 마무리되자 준비위에 계셨던 선생님들이 저에게 공모 교장을 제안해주시더군요. 저는 서곡초등학교에서도 아직 초빙교사 임기가 남아있었고, 하던 일이 있었기 때문에 결정이 쉽진 않았어요. 하지만 학교설립을 함께 준비하던 선생님들의 제안과 서곡초 식구들의 응원 덕분에 결심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서곡초등학교에서의 활동을 정리하고, 준비위원회 28명의 선생님 중 17명의 선생님과 함께 기업도시의 새 학교, 섬강초등학교의 공모 교장으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 손상달 선생님이 조합가입서를 작성한 후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 이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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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혼자 만의 결심이 아닌 학교 설립을 같이 준비했던 선생님들과 함께 만든 결심이었다는 사실이 참 인상적입니다. 그렇다면 선생님께서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 만든 섬강초등학교가 다른 학교와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A. 섬강초등학교는 구성원들이 각자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학교예요. 모두가 주인이 되는 학교라고 볼 수도 있고, 민주적인 학교라고도 부를 수 있죠. 저는 구성원들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회의 체계부터 구축하도록 애를 좀 썼어요. 그리고 어떤 단위에서든 결정된 바 100%를 존중했죠. 그 결정이 마음에 드느냐 안드느냐를 떠나서, 그 결정을 내기까지 고민하고 치열하게 토론했을 구성원들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죠.
우선 섬강초등학교는 기본적으로 학년회의가 있지요. 학년부장이 주재하고 각 학년 담임선생님이 논의하는 토론의 장이에요. 그리고 부장회의가 있어요. 부장회의는 교감이 주관을 하고, 각 학년회의에서 논의된 내용을 학년부장이 들고 오고, 교무기획팀과 행정실 등 교육활동을 보좌하는 역할을 맡은 분들이 함께 참여해요. 그리고 월 1회로 전체교직원회의를 하죠. 이 회의는 제가 직접 주관을 합니다. 부장회의에서도 쟁점이 될 만하다고 판단해서 토론을 요청하는 안건을 다루기도 하고, 안건이 딱히 없으면 의미 있는 연수 활동을 하기도 하죠. 이런 회의 체계 속에서 적어도 선생님들께서는 기본 학년회의에서 의견을 내고, 그것이 좀 더 논의되길 바란다면 전체교직원회의에서도 낼 수 있으니 언로가 열려있는 구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지금은 웬만한 대형학교에서는 기본이 되는 교무기획팀의 업무전담체제 속에서 담임선생님들은 학교운영과 수업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 있어요. 이번에 새로 교장을 맡으신 분께서도 섬강초 선생님들을 보시더니 눈빛에 생기가 넘치는 게 ‘살아있는 학교’인 것 같다고 말해주시더군요.
하나 더 덧붙이자면 저는 학부모회 활동에도 관심이 많았어요. 민원 고충으로 갈등이 적지 않은 신도시의 특성과 젊은 학부모님들이 많기 때문에 이 문제는 교장이었던 제가 아예 전담마크를 했죠. 민원 대응, 학부모 상담, 교통지도 등 제가 오랫동안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교육활동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기도 해요. 저는 선생님들처럼 학부모님들도 학교와 교육의 주인으로서 역할을 높이도록 노력했어요. 우선 학부모회 예산을 1,200만 원 확보해서 충분히 하고 싶은 거 해보시라고 활동을 보장해드렸지요. 학교 내 공간도 마련해드렸고, 그것도 부족하면 교장실에 오셔서 동아리든 회의든 하시라고 열어드렸어요. 저는 학부모님들이 학교에 자주 와서 학교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셔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 선생님들 정말 고생이 많잖아요. 그걸 직접 봐야 학부모님들도 오해가 적어지고 불필요한 의심과 민원으로 이어지지 않아요. 그러다 보면 악성 민원이 생길 때 오히려 학부모님들이 방어를 해주시기도 합니다. 이렇게 맺어진 학부모님들과의 인연이다 보니 요즘 송별 모임으로 정신이 없답니다.(하하하)
Q. 송별 모임으로 정신이 없을 정도라고 하시니, 동료들과 학부모님들이 얼마나 아쉬워하시는지 알 것 같네요. 이제 임기를 마치고 다시 교사로 돌아오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교장을 맡다 보면 지금껏 이어오던 사업과 활동을 더 발전시키고도 싶고, 교장을 계속 해야만 하는 이유도 적지 않을 것 같아요. 다시 교사의 자리로 돌아오기까지 어떤 고민이 있으신지도 궁금해요.
A. 저는 학교라는 공간, 교육의 장 속에서 각자의 위치에 따른 역할이 다른 것뿐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교사로서 아이들을 30년 넘게 만나왔고, 그 길을 걷다가 운이 좋게 교장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일종의 덤으로 산 삶이죠. 참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교장으로서도 제가 좋아하고 관심 있는 활동을 잘 펼쳐낼 수 있어서 좋았죠. 아까 말씀드린 지역사회와 교류, 학부모 활동, 민주적인 학교문화를 만드는 것들처럼 말이죠.
그런데 참 신기한 게 헛헛한 게 생기더군요. 아이들과 직접 부대끼면서 생활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오는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저도 원래 서곡초에서 계속 근무하다가 일반교사로 교직 생활을 마무리할 계획이었으니 교장 직책을 정리하고 일반교사로 돌아간다는 것에 대해서 아쉬움은 없어요. 오히려 요즘은 설레는 마음이 크답니다. 공모 교장의 임기가 끝나고 돌아가야 할 때가 되니 처음에는 주변에서 걱정을 많이 해줬어요.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응원을 많이 해줍니다.
제가 올해 귀래초 2학년 담임을 맡게 되었어요. 그래서 섬강초에서 같이 근무하던 2학년 쌤들이 자료도 많이 보내주셨어요. 덕분에 올해 교육과정은 거의 다 정리했답니다. 정말 기대가 많이 돼요.
그리고 제가 사실 강원도 내부형 공모 교장 1호입니다. 전교조 출신의 공모 교장에 대해 여러 말들이 오르내린다는 것도 잘 알고 있어요. 제가 이번에 일반교사로 되돌아가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된 과정에는 내부형 공모 교장 중 한 명쯤은 다시 평교사로 돌아가는 모델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그 역할을 제가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 선택에 큰 부담과 고민은 없었기에 이렇게 결심할 수 있었답니다.
▲ 손상달 선생님이 새로 근무하게 될 귀래초등학교의 전경. 선생님은 이 곳에서 2학년 학생들을 만날 예정이다. © 이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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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저도 선생님의 이번 선택이 우리 전교조와 후배들에게도 큰 귀감이 될 거로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전교조에, 후배 조합원들에게 해주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제가 전교조에 가입하고, 해직 교사들이 일반 선생님들의 후원을 받으면서까지 활동하셨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저는 전교조가 누구보다 현장에 밀착해 선생님들의 고충과 어려운 점에 맞서 싸웠고, 실천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어느 새부터인가 전교조가 현장과 괴리되어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저는 참교육 실천을 위한 현장과의 소통이 정말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조합원 선생님들의 목소리를 잘 듣고 의견을 모아가면서 시대가 원하는 교육의 새로운 방향, 대안적 역할을 전교조가 수행해주기를 바라요.
그리고 후배 조합원 선생님들에게 꼭 말씀드리고 싶은 건 이겁니다. 우리 좀 당당했으면 좋겠습니다. 교사하기 참 힘든 요즘이죠? 얼마 전에 뉴스를 보니 교대 입학정원이 채워지지 않을 정도로 교사라는 직업에 대한 불안과 우려가 크다는 걸 느꼈습니다. 참 어려운 시기인 것만은 사실인 것 같아요. 하지만 우리가 교육의 본질에 충실하고 옳은 길을 간다면 두려울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애 많이 쓰고 고생하고 있는 만큼 당당하게 교사로 살아갔으면 해요.
저도 스스로 다짐해봅니다. 되돌아보면 우리 주변에 큰 어른을 찾아보기 힘든 시기죠. 저도 이제 나이가 들고 교직의 끝이 멀지 않게 남았죠. 적지 않은 교직 생활의 경험과 시민사회 운동을 비롯한 다양한 활동을 바탕으로 해서 후배들에게 조금이나마 가르침이 될만한 사회적 어른으로 남고 싶다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저도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손상달 선생님이 인터뷰를 마치고 기자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 © 이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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