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연극창작소 '상상과 몸짓'을 열다
"사장님!", "소장님!", "대표님!".
35년을 '선생님'으로 지내다가 요즘은 이렇게 불리는 때도 자주 있습니다. 뭐 거창한 일을 하는 것 마냥 오해하실 수도 있을텐데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닙니다. 제 놀이터삼아 35평 정도의 사무실을 월세로 빌려서 '교육연극창작소 상상과 몸짓'이라는 이름을 달았습니다. 여기에서 교사와 시민이 참여하여 연극이나 예술 워크숍을 열고, 학교 연극 활동에 필요한 물품 몇 가지를 제작하여 판매하다 보니 "사장님!", "소장님!", "대표님!"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 교육연극창작소 '상상과 몸짓' ©백인식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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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은 충동적으로 명퇴를 한터라 무엇을 하며 지낼 지 뚜렷한 계획은 없었습니다. 누가 물으면 "1년은 그냥 놀거야!"라고 대답했죠. 퇴직 후 제일 좋은 점은 다음 날 출근을 걱정해서 알람을 켜놓고 자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어요.
나를 위한 작은 공간 마련해야겠다
두 달 정도 지나니 카페에 쓰는 돈이 아까워지더라구요. 그래서 나를 위한 작은 공간을 마련해야겠다 마음먹고 월세 50만원 정도의 사무실을 보러다녔습니다. 마티즈 사러 갔다가 그랜저 사게된다는 우스개처럼 조금만 더 보태면 워크숍이 가능한 공간도 가능하다는 말에 솔깃했죠. 그래서 덜커덕 월세 80만원 35평의 사무실을 임대했습니다. 어떻게 월세를 감당할거냐고 걱정하는 분이 많았습니다. 아내는 약속한 용돈 이외는 안보태줄거라고 했구요. 약간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제가 믿는 구석은 강의료였습니다. 연극과 예술교육 강의를 한 달에 두 세번은 해왔던 터라 월세의 절반 정도는 벌 수 있겠다는 계산이 있었던 거죠. 다행히 선생님들이 도와주셔서 강의도 하고, 연극 활동하는데 필요한 나무 상자나 천 등의 물품 판매가 꾸준하게 들어와서 요즘은 그걸로 월세를 내고도 조금 남습니다.
창작소에서 꾸준히 워크숍 열어
오랜동안 꿈꿔왔던 산티아고 순례길 걷기를 하려했는데 코로나가 길을 막더군요. 코로나가 창궐하면서 학교나 기관에서는 모임이 어렵게 되었지만 창작소에서는 작게나마 여러 모임을 계속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교사 중심이던 만남과 관계가 예술강사와 시민으로 넓어졌습니다. 저는 꽤 오래 '교사극단 나무를 심는 사람들'과 '전국교사연극모임'에서 활동했습니다. 여기에 예술강사와 시민 이 함께 하는 일들이 보태졌는데 창작소에서 꾸준하게 워크숍을 열었기 때문이죠. 월례 열린 워크숍, 주제별 연수, 전문가 초청 연수, 전문적 학습공동체 활동, 마을교육 연수 등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과의 연구와 나눔, 소통의 마당이 즐겁습니다.
이런 일들은 고맙게도 후배 샘들이 저에게 함께 할 기회를 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죠. 덕분에 심심할 틈 없이 지내고 있는 편입니다. 연극하는 재미가 좋아서 90년 초반부터 선생님들과 함께 이어온 활동이 이렇게 좋은 선물을 주네요. 후배 샘들과 만나면서 노땅 또는 꼰대로 비춰질까 늘 염려가 됩니다. 그래서 '지갑은 열고 입은 닫으라'는 조언을 잊지 않으려 애쓰고 있습니다.
▲ 교육연극창작소 '상상과 몸짓' 워크숍 활동장면 ©백인식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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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3년차 찾아온 무기력과 우울함 잘 넘기고
이처럼 창작소를 중심으로 심심하지 않게 지내나 싶었는데 퇴직 3년차에 접어들며 자유로움에 안일함이 스며들어 침체기가 왔습니다. 거기에다가 대통령 선거 결과에 상심하여 일상의 루틴이 무너지면서 거의 석달을 무기력과 우울함 속에서 지냈습니다.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자유로움은 독이 될 수 있음을 경험했습니다. 마음을 다잡기 위해 선택한 일은 걷기와 책읽기입니다. 오전에는 세 시간 정도 책을 읽고 오후에는 일을 처리합니다. 점심을 먹고는 1시간 가량 햇빛을 쐬며 걷고, 가끔은 하루동안 30킬로 정도 걷고 있습니다. 술자리를 별로 즐겨하지 않았는데 일부러 함께 해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그랬더니 우울과 무기력이 조금씩 엷어져갔습니다. 요즘은 다시 기운을 차렸습니만 정치와 사회 상황은 여전히 기운을 빼네요.
퇴직 후에 할 일이 있어 좋겠다고 저에게 이야기 하는 분이 많습니다. 저도 그런 점에서는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그 원동력은 교사 생활을 하면서 계속 해온 연극과 예술교육 활동입니다. 굽은 나무가 산을 지킨다고 하듯이 한 분야를 오래 지속한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원하는 곳이 있으면 제가 가진 것을 힘닿는대로 나누어 보려 합니다.
▲ 교육연극창장소 '상상과 몸짓' 워크숍 활동장면 ©백인식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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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이가 들면 중고책방을 해볼까
시간이 더 지나서 몸 쓰기가 힘들어 지면 작은 중고책방을 해볼까 마음먹고 있습니다. 그동안 모은 책과 선생님들이 가진 책으로 꾸며진 책방에서 여유롭게 책을 읽으며, 좋은 사람들과 책을 징검다리 삼아 만남을 나누고 싶습니다. 가끔은 좋은 영화를 함께 보는 모임도 하구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작은 책방', 이름은 이렇게 할까합니다. 기회가 되시면 창작소에 놀러오시고, 나중에 책방을 열면 그 곳도 들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