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교육부 장관이 12년 학제를 유지하면서 만5세 초등학교 입학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그 이유가 ‘출발선상의 공정함을 보장하기 위함’이라 한다.
어릴수록 교육의 효과는 크다면서 초중등교육 예산을 줄여서 고등교육을 지원하겠다는 현 정부가 할 말은 아닌 듯한데 어쨌거나 같은 이유로 오래전부터 전교조는 학교 이전의 교육을 유아학교로 통일하고 국가가 책임지고 의무교육으로 실시할 것을 주장해온 것으로 안다. 그럼 환영해야 할 일이 아닌가? 언뜻 비슷해보이는 이 정책을 환영할 수 없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출발선상의 공정함을 보장하기 위해서 발달과정이 갑자기 바뀌는 것인가? 단적으로 한글교육을 보자. 유치원 누리과정에서는 한글해득교육을 할 수 없도록 명시되어 있다. 이른 시기의 문자교육이 어린이 발달과 성장에 오히려 독이 된다는 여러 학문적 연구 결과에 근거한 것이다.
현재 유치원 7세 과정이 만5세인데 유치원 7세 과정에서는 문자교육을 하면 안되고 같은 만5세 어린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문자교육을 적극적으로 시켜야하는 모순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교사가 된 이후 10여 년 1학년 담임 경력이 있다. 가깝게는 2019년과 2020년에도 1학년 담임을 했다. 1학년을 맡게 되면 한글해득을 위해 다양한 수업과 활동을 꾸준히 하였고, 그 과정을 거쳐 마침내 1학년 2학기가 끝날 즈음이 되면 대부분 ‘자연스럽게’한글을 해득하게 된다. 이 과정을 1년 당긴다고 해도 똑같이 될까?
더 낮은 발달단계에서는 당연히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적정 수준 이상의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결국 부진아가 생기게 될 것이다. 다른 교과는 다를까? 1학년 1학기 수학에서 50까지의 수를 배우는데 ‘10개씩 묶음 네 개와 낱개 다섯 개’와 같은 것을 가르친다. 어른들에게는 너무 쉬운 이 말의 상징을 몇 날 며칠에 걸쳐 가르치고 배우는 이유를 박순애 교육부장관은 알고 있을까?
우리나라 초등교육과정은 다른 선진국보다 어렵다는 것이 중론다. 지금보다도 더 어린 나이에 더 낮은 발달수준에서 배워야 한다면 어떻게 될까? 국가가 정책적으로 부진아를 양산하게 되는 결과가 올 것이지만 욕은 교사가 먹고 뒷수습도 교사가 하게 되리라.
만5세 조기 입학의 문이 열린 것은 20여 년 전이다. 현재도 만5세 조기입학이 가능하고 제도 도입초기에는 한 학교에 많게는 2-3명 정도의 조기입학생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거의 없다. 조기입학생들이 학교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제도 도입 초기 만5세 입학생 1명을 담임한 적이 있다. 학부모님은 그 학생이 '또래보다' 매우 똑똑하다고 생각하셨다. 글자를 읽고 쓸 줄도 알고 수도 알고 간단한 덧셈과 뺄셈도 가능하다고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학생은 1년 내내 굉장히 힘들어했다. 학교생활은 집에서 혼자 글자를 읽고 쓰고 수를 세는 일과는 달랐기 때문이었다. 학급 친구들과 관계를 맺어야 하고 학습활동도 스스로 해야 하는데 아직 정서적으로 발달이 부족했다. 신체적으로도 발달이 늦어서 1학기 내내 수업시간 40분, 하루 4시간 수업도 힘들어했다. 2학기가 되어서도 학급 친구들과의 격차를 그다지 좁히지 못했다. 1명의 사례로 일반화하긴 어려우나 나름 똑똑하다는 조기입학생 실태가 그러했고 다른 반 조기입학생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후 조기입학생은 점점 줄어들었다. 물론 그 차이를 뛰어넘고도 남는 뛰어난 어린이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런 어린이들에게는 적절한 영재교육을 제공해야 하는 것이지 모든 만5세 어린이에게 그처럼 하라고 하는 것은 폭력이라고 본다.
지금도 1학년 한 학급에 학생이 30명이 넘는 곳이 수두룩하다. 모두 자기만을 바라봐 주고 일대일로 대화하기를 원하는 것이 1학년 학생의 특성인데 이보다 더 어린 학생을 한 교실에 30명, 35명씩 집어넣겠다는 발상을 하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출발선상의 공정함을 보장하려면 개인별 맞춤 교육이 가능하도록 학급당 학생 수를 줄이는 것이 먼저이고, 이른 시기에 공교육체계에 진입시키고 싶다면 유치원 7세 과정을 의무교육화하면 된다. 더 이른 시기에 공교육체계에 진입하게 하고 싶다면 유치원 의무교육을 더 늘리면 된다. 간단한 해결방법을 두고 무리수를 두는 이유는 교육에 대한 이해와 전문성 부족,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산 때문이리라.
학급당 학생수를 줄이거나 유치원 1년을 의무교육으로 만드는 것은 상당한 예산이 필요하지만 12년 학제를 유지하면서 취학연령을 1년 낮추는 것은 기존 예산으로 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이 아닐까 싶다. 손 안 대고 코 풀 수 있겠다는 생각에 자라나는 어린이들이 겪게 될 어려움과 고통은 안중에도 없는 행정학자 출신 교육부장관과 검찰출신 대통령에게 분노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