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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호석을 차마 떠나 보내며
나의 벗 고호석, 나의 동지며 도반인 고호석 선생,
 
윤지형   기사입력  2019/12/06 [14:22]

[편집자주] 2005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부산지부장을 지낸 고호석 선생이 1126일 운명을 달리했다. 장례는 부산지역 시민사회장으로 치러졌다고호석 선생은 19803월 대동고등학교 영어교사로 부임하면서 교사가 되고 다음 해 1981년 부림사건으로 구속된다. 20159월에는 부림사건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된다. 영화 변호인에서 다룬 사건인 이른바 부림사건의 실제 주인공이다고호석 선생과 함께 활동했던 윤지형 선생은 눈물로 고호석 선생을 떠나보내며 추도사를 썼다. 이 추도사는 1127일 남천 성당에서 열린 두 번째 추모문화제에서 낭독된 것이다.

 

▲ 2016년 2월, 고호석 선생은 명예퇴직을 했다.   2017년 6월에 윤지형 교사가  쓴 책 '다시 닫힌 교문을 열며' 출판 기념회에서 축사하를 하고 있는 고호석 선생.     © 전교조 부산지부 제공

 

 

 

고호석을 차마 떠나 보내며

 

 

나의 벗 고호석, 나의 동지며 도반인 고호석 선생,

 

나 아직 그대 영정 앞에서 절하지 않았소. 매번 밖에서만 물끄러미 바라다보았소. 이토록 코앞인 이승과 저승의 거리가 영겁의 시간으로도 닿을 수 없는 거리라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는다오.

 

, 저 한껏 기분 좋게 웃고 있는 사진 뒤엔 그대의 몸이, 차갑게 식은 그대의 육신이 네모난 관만큼이나 반듯이 누워 있다……. 그대의 바람대로 거친 삼베 수의 대신 정갈한 두루마기 한복을 단정하게 차려 입고서, 그 한복 위에 아내의 고운 치마저고리를 이불처럼 덮고서……. 그것은 그대의 마지막 사치인가, 못다 한 사랑의 애달픈 언약인가.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지는구나.

 

나는 기억한다. 지난 8월 말, 늦여름 비가 간간이 뿌리는 날이었다. 그대도 창립 멤버인 박종철 합창단이 김대중 대통령 10주기 행사에서 노래를 두 곡 보시하고 초량 어디 돼지갈비집에서 뒤풀이를 벌이던 저녁 시각, 나는 전화 속 그대로부터 해괴한, 억장 무너지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수술도 안 된다 하고, 의사가 모든 걸 내려놓는다는 마음을 가지라고 하더군. 8월 지나면 한 번 봅시다.” 담담한, 그대가 잘 쓰는 말로 견결한 목소리였다. 나는 전화를 끊고 그대 아내 경애 선생에게 전화를 했었다. “고 선생님이 불쌍해서 못 보겠어요. 그렇게 아프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늘 남 걱정만 하고, 좀 아프다고, 아파 죽겠다고 응석이라도 부리면 차라리 좋을 텐데…….” 전화 속 경애 선생은 울고 또 우는데, 고 선생 짐작이나 가는가? 돼지 갈비 집에서 골목 밖으로 흘러나온, 우리 합창단 벗들이 부른 노래가 무슨 노래였는지를?

 

허나 친구여 서러워 말아라.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아직 많으니 후회도 말아라, 친구여. 다시 돌아간대도 우린 그 자리에서 만날 것을…….’

 

나는 축축한 어둔 골목에 쭈그리고 앉아서 혼자 울었다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아직 많다니, 거짓말이다 다 거짓말이다……! <당부>란 노래를 연습할 때면 곧잘 눈물도 글썽였던 그대는 농담도 경고도 아닌 한 마디를 던지기도 했더랬다. “, 인생이란 노래 가사처럼 안 될 수도 있어.” 그것이 부정할 수 없는 삶의 진실임에도 우린 정말이지 앞으로 살아갈 날들만 생각하면서 젊음은 흘러가고 우리 점점 늙어간다 해도 우리 가슴 속 깊이 서려 있는 노래 잊지 말게……, 이렇게 노래하고 술 마시며 웃고 떠들곤 했던 것이다. 한치 앞도 못 보는 청맹과니처럼, 바보처럼.

 

, 정말 바보처럼 속수무책으로 그대를 보내야 하는 나는, 우리는, 저렇게 사진 속에서만 웃고 있는 그대를 무어라고 불러야 하는가. 사람들은 그대를 부림 사건의 피해자’, 영화 <변호인>의 주인공이라고도 하고 부마민주항쟁의 주역’, 민주투사, 교육운동가라고도 부르는 것이지만 나는 오늘 그대를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 싶다, 고호석 이름 앞에 멋지고 아름다운 다른 이름을 달아주고만 싶은 것이다. 그것은 무엇일까? 그러고 보니 생각이 난다. 부산성모병원 병실, 죽음은 사정없이 다가오는데 그대는 내게 인터뷰어가 되어 달라고 청했었다. 이것저것 묻지 말고 핵심만 명료하게. 그대다운 요구였다. 그래 나는 그대에게 마지막 순서로 물었었지. ‘당신을 여기까지 오게 한 원동력 같은 게 있다면 그건 뭘까? 한 단어든, 한 문장이든 짧게 말해 보오.’ 잠시 생각는 그대 얼굴의 미소는 내 질문이 우문이어서였을까, 이윽고 그대는 대답했었다.

사람에 대한 사랑

 

, 정말이지 나는 그 대답이 참 마음에 들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소박한 말일지언정 고호석이기에, 1979년 박정희 18년 독재를 무너뜨린 거리에서 맨 앞장을 섰던 스무 살 청년 고호석이기에, 그리하여 1981년 대동고 영어 교사였던 그 어느 날엔 저 신군부의 도살자들에게 끌려가 짐승의 시간을 견뎌내야 했던 고호석이기에, 세상이 태평했다면 학교에서 아이들과 울고 웃는 그저 평범한 교사로 살았을 지도 모른다고, 어쩌면 문학 평론가가 되었을 거라는 고호석이기에--그 한 마디가 나는 좋았던 거라오. ‘사람에 대한 사랑’, 내게 그것은 당신의 비밀을 푸는 열쇠와도 같았다는 말이오.

 

그렇다. 당신은 종내 숨기려 했는 진 몰라도 우리는 알고 있었다. 당신은 눈물 많은 사나이란 거, 저 정연하고도 날카롭고 명징한 지성의 바닥에는 눈물이, 사랑이 가득 차 있었다는 거, 도무지 살이 찌지 않는 마른 몸엔 사실은 사랑의 눈물이, 눈물의 사랑이 일렁이며 꽉 차 있었다는 거, 그리하여 그대를 사랑하는 수많은 벗이며, 동지며, 2030 전교조 젊은 친구들이며, 그 젊은 친구들의 아장아장 걷는 어린 아기들이, 또 속이 타들어가는 친지들이 마지막 안식처인 성모 병원의 병실을 문턱이 닳도록 찾아 왔을 때 그대의 말없는 미소와 촌철의 농담 속에도, 아파서 찡그린 이마와 굳어져 오는 발과 다리에도 그대 사랑의 눈물, 눈물의 사랑은 일렁이고 있었다는 거……. 당신이 그러하다는 것을 당신이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알고 있었다는 것을 혹 그대만 모르고 있었던 건 아닌가? 그래서 남모를 외로움과 아픔을 혼자만 안고 가는 시간들이 많았던 건 정녕 아닐 테지……?

 

, 그대는 둘째 딸 은결이 대학 가는 것만 보고 죽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지? 하지만 고호석, 그건 아니지 않나. 그건 너무 작게 품은 소망 아닌가. 첫째 딸 새봄이가 꽃피는 봄날에 혼인하여 아들 딸 낳을 때까지는 어떤가? 아니, 아니, 언제까지나 그대 머리맡에서 그대 눈물어린 얼굴 닦아주고, 그대 응석 받아주고, 그대 떠나는 마지막 사랑의 온기를 차마 가슴에 품어 안은, 참 고맙고 참 어여쁜 아내 경애 선생과 함께 꼬부랑 할매 할배가 될 때까지, 그렇게 한오백년을 살게 해 달라고 한들, 남들 다 하는 그런 호사 좀 누린들 뭐가 어쨌다고, 무심한 하늘은 그대를 이리도 빨리 데려간단 말인가. 애통하고 애통하도다. 세상엔 무수한 죽음이 있고 인간은 필멸의 존재로서 하늘의 뜻에 순종해야 할 때가 오기 마련이지만 오늘 나는, 우리는, 너무 억울해서, 너무 애달파서 그대를 차마 보낼 수가 없고나.

 

하지만 나는 생각하고 또 믿는다. 겨울 철새는 날아가지만 봄이면 다시 돌아오듯 그대의 빛나는 영혼도 어느 날엔가는 철새처럼 돌아와 오늘 이 자리의 모든 이의 가슴 속에 깃들 것이라는 것을. 아니 그대 고호석이란 이름은 가지도 오지도 않고 우리 마음속에서 늘, 촛불처럼 가만히 불 밝히며 살아 있다는 것을.

 

그러므로 그대, 늘 새 봄처럼 살아 갈 새봄이의 아버지, 고운 마음결이 참나무처럼 단단한 은결이의 아빠, 그대를 무지 사랑하고 그 사랑만큼 존경이 가득한, 그대의 한없는 자랑이자 자부심인 인간의 교사 경애 선생의, 살만 좀 쪘으면 백배는 더 늠름했을 참 못난 지아비인 그대여, 잘 가시오, 정녕 잘 가시오.

 

저 하늘나라에 눈물도 고통도 병마도 아픈 이별도 없는 세상이 만약 있다면, 그대가 닦아줄 눈물의 사람들이 없는 세상이 있다면, 자유와 민주와 정의와 평화와 사랑이 코스모스로 만개한 그런 세상이 있다면 그 세상은 바로 고호석 그대가 깃들 세상이니 내친걸음 나비처럼 바람처럼 훨훨 부디 부디 잘 가시오.

 

20191127일 윤지형, 눈물로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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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2/06 [14:22]  최종편집: ⓒ 교육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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