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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칼럼] 용 나는 개천, 용 쓰는 개천
 
정은균 · 군산 영광중   기사입력  2019/11/26 [11:50]

 나는 대입학력고사(학력고사)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시험)의 차이를 잘 모르겠다. 동료 교사들과 시험이나 평가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나누다 보면 각자 내세우는 관점 차이가 커 대화 접점을 찾기 힘들 때가 많다. 어떤 선생님은 위엄 있게 손짓을 해 가며 학력고사 회귀론을 주장한다. 그는 공정성을 강조한다. 다른 선생님은 목울대에 힘을 주면서 수능시험에 기반을 둔 정시 체제의 전면 확대를 외친다. 그도 공정성을 말한다.


 공정한 시험. 나는 여기에 딱히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고는 어느새 그들이 하는 이야기에 빠져든다. 그들은 대체로 한 줄 세우기 교육 만능주의자들이다. 우리 사회의 주류 그룹은 여전히 그런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 학력고사와 수능시험만큼 아이들을 한 줄로 세우는 데 효율적인 방식도 없다. 그래서 나는 아직 내가 철이 없는 건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러다 곧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학교에서 치르는 시험이 두어 번 정도에 불과한 핀란드가 세계 교육 강국으로 군림하는 사실을 떠올리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나는 수시-정시 논란이 승패가 이미 정해져 있는 싱거운 싸움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곤 한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대통령 말 한 마디에 수능시험 성적을 절대시하는 대입 정시 확대 체제로 역진하는 시대를 지나고 있다. 누군가는 30여년 전 폐기된 학력고사 체제의 부활을 진지하게 생각하면서 개천에서 용이 나는 세상을 상상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개천은 용이 나는 곳이 아니라 미꾸라지들이 그저 용만 쓰다 스러져 가는 곳일 뿐이다.


 작년에 이어 올해 다시 수시-정시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 아이들의 삶과 경험을 귀하게 여기고, 다양한 색깔의 여러 줄 세우기 교육을 상상한 끝에 나온 혁신교육 10년 역사가 마치 한여름밤의 꿈처럼 다가온다.


 나는 지난 몇 년 간 플라톤과 루소와 듀이가 쓴 책들에 빠져 지냈다. 플라톤은 사람들을 '통치자'와 '수호자'와 '노동자'로 분류한 바탕 위에 이들 각각에 맞는 특유의 '삼계급론' 교육을 개진했는데, 이를 통해 각 개인의 고유한 자질과 능력이 교육을 하는 데 중요하다는 통찰을 안겨 주었다. 그러나 우리는 오직 대학의, 대학에 의한, 대학을 위한 교육을 한다. 개별 학생들이 지닌 고유한 자질과 능력은 그들이 따 낸 대학 졸업장에 적힌 대학교 이름에 좌우된다고 생각한다. '통치자'와 '수호자'를 갈망하는 사람은 넘쳐나지만 건강한 '노동자'의 삶을 꿈꾸는 이는 찾아보기 어렵다.


 루소는 '사회 속 자연인'을 기르는 일이 교육이라고 보았다. 좋은 교육은 아이가 고유의 본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공화국의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지금 자연인도 아니고 시민도 아닌, 무한 공정 게임에만 몰두하는 사회에서 하루하루 생존하는 일에 온통 정신이 팔린 불안한 영혼의 소유자를 길러내고 있는지 모른다. 단언컨대 그것은 교육이 아니다.


 듀이는 민주주의가 교육에 열성을 가진다고 생각했다. 민주적인 사회는 외적 권위에 복종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사람들의 자발적인 성향과 관심에 따라 길러지는데, 이러한 태도는 오로지 교육에 의해서만 발달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시민교육이 화두가 되고, 학교자치와 학생자치가 새 시대의 교육 운동처럼 뜨거워지고 있다. 하지만 학교는 갈수록 법과 정치의 시녀 같은 존재가 돼 가고 있다. 이런 공간에서 진정한 민주주의 공동체를 경험할 수 있을까. 지금 우리는 어떤 사회를 향해 달려가고 있을까. 나는 그곳이 다만 미꾸라지들이 용만 쓰다 마는 개천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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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1/26 [11:50]  최종편집: ⓒ 교육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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