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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교육은 따로 춤추지 않는다
경북 상주 청소년인생학교 '쉴래'
 
박성배 · 쉴래 친구들의 카페 멘토   기사입력  2019/11/26 [14:31]

"그냥 좀 마음대로 쉬고 싶었어요"


 왜 <쉴래>를 하느냐는 질문에 아이들은 그렇게 대답했다. 지역에서 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봐 온 입장에서 올해 쉴래를 결정한 아이들은 경쟁교육에 내몰리지도 않았고, 불안한 미래 때문에 자녀들을 '학원 뺑뺑이'시키는 부모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시골의 작은 학교지만 교복도 없애고, 시험도 과감히 없앤 혁신적인 중학교를 졸업한 친구들도 있었기에 어색하게 웃으며 짧게 내뱉는 '쉬고 싶다'는 말의 무게를 가벼이 여기기 어려웠다. 무엇이 우리 아이들을 쉬지도 못하게 했던 것일까? 아이들은 어쩌면 정말 쉴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쉴래는 덴마크의 애프터스콜레에서 착안한 교육시스템을 상주 실정에 맞게 적용한 마을교육공동체다. 형식적으로는 1년의 쉼이라는 전환학년제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3기 쉴래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봤을 때 전환학년제보다는 마을교육공동체에 좀 더 무게가 실린다.

▲ 쉴래 1년 디자인 회의 모습     

 

 쉴래는 우리말로 '쉬다'라는 뜻이나 독일어로 'schule' 곧 '학교'라는 의미도 있다. 상주에는 남부초, 백원초, 내서중, 낙운중 등 공교육 내에서 새로운 교육을 시도한 초·중등학교가 있지만, 고등교육에 대한 갈증이 남아있었다. 상주에 풀무학교 같은 고등과정 학교를 만들자는 제안으로 2015년 '농민인문학실천모임'이 결성됐고, 다양한 배움의 공동체를 구상하며 실천 가능한 프로젝트들을 진행했다. 하지만 서로 다른 가치관과 교육관을 통합하는 교육모델을 찾지 못하던 중 과도기적으로 애프터스콜레를 적용해보자는 제안에 따라 상주 실정에 맞는 청소년인생학교 쉴래가 탄생하게 되었다.
 
 지역, 자발성, 관계의 중요성
 쉴래는 공간이 아닌 관계로 만들어진 학교다. 교육이 공간에 갇히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학교라는 공간에 갇힌 교육은 어쩔 수 없이 삶과 유리되기 마련이다. 학교라는 공간은 다른 공간과 독립적으로 존재해야 하는 스스로의 이유를 찾기 위해서 차별화, 전문화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교육의 본질이라는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를 쫓아가다 보면 삶과 교육은 결코 따로 존재할 수 없는 가치임을 깨닫게 된다.


 관계는 곧 사람이다. 그래서 쉴래는 공동체 구성원 간 관계에 주목한다. 쉴래의 구성원은 크게 청소년, 멘토, 부모, 운영진으로 나눌 수 있다. 청소년은 1년간 쉴래에 참여해서 1년의 삶을 스스로 디자인하며 다양한 활동을 한다. 멘토와 부모, 운영진은 청소년들이 디자인한 1년의 프로그램을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멘토는 누구나 될 수 있다. 쉴래 청소년들이 하고 싶은 것, 배우고 싶은 것이 있다면 지역에서 그것을 지원할 수 있는 자원을 찾아준다. 물론 1년을 원 없이 쉬고 싶다면 그리해도 무방하다. 또 누구나 멘토가 되어 자신이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것을 바탕으로 수업을 만들 수 있다. 독서와 생각 나누기, 체력단련, 캘리그라피, 목공, 만화, 어학수업, 음악, 영상, 애니메이션, 빵 만들기, 농사짓기, 돼지 키우기, 햄소시지 만들기, 막걸리 만들기 등등 전문적인 교육자가 아니더라도, 버젓한 자격증이 없더라도 자신이 종사하거나 관심이 많은 분야의 멘토가 되어 쉴래에 참여한 청소년들과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다. 수업뿐 아니라 여행, 아르바이트, 봉사활동 등 청소년들이 원하는 프로젝트가 있다면 그것 또한 진행할 수 있다. 지역 장터인 백원장에서 '카페 인 쉴래'라는 카페를 열고, 그 수익금으로 여행을 가는 것과 같은 일들이 연중 자유롭게 이루어진다.


 쉴래의 운영진은 월 1회 정기 운영회의 참석자가 곧 운영진이 된다. 청소년이든 부모든 평등한 구성원으로서 각자의 의견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되 어떤 결정에 있어서 청소년들의 의견은 절대적으로 반영된다. 가령 '좀 더 넓은 시야를 갖기 위해 인문학 강좌를 들어보면 어떨까'라고 어른들이 제안하면 청소년들이 실질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노동법 강좌를 더 듣고 싶다고 역제안을 하는 식이다. 서로에 대한 신뢰와 배려가 일상에서의 관계성을 통해 충분히 쌓여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상주에서 이런 관계지향적 교육공동체가 가능한 것은 이른바 '비빌 언덕'이 되어줄 든든한 공동체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상문화예술공간 '마을예술가', 공동체 공유공간 '상주공동체환경학교', 자급자족 지역장터 '백원장', 다양한 혁신 초·중등학교, 지역공동체 플랫폼 '상주다움사회적협동조합' 등 지역자립을 추구하는 공동체가 만들어지는 연장선에 쉴래도 그 궤를 같이하고 있다.


 삶과 교육이 따로 있지 않음은 성장하는 다음 세대에 대한 기성세대의 관심과 상호 간의 소통이 일상 속에서 구현된다는 의미다. 이제 겨우 첫걸음을 뗐지만 쉴래가 추구하는 가치가 일상을 함께하는 지금, 이 순간이기에 매 순간이 새롭고, 의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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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1/26 [14:31]  최종편집: ⓒ 교육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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