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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칼럼]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공정'은 가능한가?
 
송원재.서울지부 교권상담실장   기사입력  2019/11/04 [15:43]

 대통령이 대입제도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국민이 납득할 수 없는 불공정한 요소를 바로잡으라고 주문했다. 한 고위인사 자녀의 수상쩍은 '스펙 품앗이'와 표창장 위조혐의가 여론의 도마에 오른 뒤 벌어진 일이다. 그 일은 수시모집의 학생부 비교과영역에서 불거졌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불똥은 정시모집으로 튀었다. 교육부의 움직임이 너무 굼뜨다고 여겼는지, 대통령이 정시모집 비중을 늘리라고 콕 집어서 다시 주문한 것이다. 요컨대 수시모집 전체를 공정하지 않다고 본 것이다.

 

 알다시피 정시모집은 수능점수 위주로 선발하고, 수시모집은 교과영역과 비교과영역으로 뽑는다. 교과영역은 이른바 내신성적이고, 비교과영역은 출결·수상경력·자격증·진로활동·봉사활동·체험학습·독서활동 등이다. 이 둘을 합쳐서 학생부 종합전형(학종)이라고 부른다.

 

 결국 대통령의 주문은 학생부 위주의 수시전형이 공정하지 않으니 수능 중심의 정시를 늘리라는 얘기다.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학생부 비교과영역 가운데 수상실적·봉사활동·진로활동은 부모가 직접 개입할 소지가 많아 종종 불공정 시비가 일어난다. 그러나 교과영역은 장기간에 걸친 학업성취를 보여주는 신뢰도 높은 자료다. 또 다른 비교과영역은 학생의 관심과 성장을 알아볼 수 있는 좋은 자료다. 전인교육에 꼭 필요한 것들이다. 따라서 학생부 비교과영역의 일부 항목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학생부 전체를 싸잡아 매도하는 것은 '목욕물 버리려다 아이까지 버리는 격'이다.


 더 큰 문제는 학생부 대신 수능 비중을 대폭 늘리라고 한 것이다. 대통령의 발언이 나오자마자 정부와 여당은 수능 비중 상향에 나섰고, 사교육 시장이 가장 먼저 반응했다. 대형 입시업체의 주가가 하루 만에 큰 폭으로 올랐고, 한발 먼저 적응하려는 사람들의 상담문의가 쇄도한다. 학령아동의 감소로 생사의 기로에 놓인 사교육이 다시 부흥기를 맞는 느낌이다. '공정'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풍경이다.


 이 광경을 지켜보는 교사들은 착잡하다. 오지선다로 치르는 수능시험이 학생의 사고력을 기르기보다는 문제풀이 위주의 사교육을 유발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학생부 종합전형을 도입해서 정착단계에 접어들고 있는데, 느닷없이 다시 수능으로 돌아가라니 황당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이전의 논의와 흐름을 뒤집는 정책 결정과정도 문제다. 그토록 국민숙려를 강조하던 정부의 모습과도 대조적이다. 주무부처인 교육부조차 정책 결정과정에서 소외됐다면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공정'의 이름으로 벌어진 일련의 사태에서는 대통령의 '공정 의지'만 두드러질 뿐, 교육에 대한 고려의 흔적은 눈 씻고 찾아도 없다. 교육정책이 정치적 유불리에 의해 결정되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대입제도가 공정하게 치러져야 한다는 데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사교육비 부담능력에 따라 당락이 좌우되는 현행 대입제도는 '기울어진 운동장'과도 같다. 기울어진 운동장은 내버려둔 채 '공정'만 말하는 것은 정의롭지 않다. 그것은 불평등한 질서를 합리적으로 조정함으로써 현행 대입제도의 정당성을 높이는 쪽으로 기능하기 쉽다.


 대통령이 진정으로 '공정한 교육'을 말하고 싶다면 '교육의 기회균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모든 경쟁은 강자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고, 입시경쟁도 예외가 아니다. 따라서 교육의 '공정'이란 사회적 강자의 부당한 개입과 반칙을 차단하고, 학생이 경제적 부담 없이 자신의 관심과 노력에 따라 자유롭게 교육에 접근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다. 그래야만 우리 교육이 형식적 '공정'을 넘어 '정의'에 도달할 수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은 정의롭지 않고 그곳에는 '공정'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조변석개하는 교육정책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번 정시 확대 결정은 수긍할 만한 대목이 하나도 없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재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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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1/04 [15:43]  최종편집: ⓒ 교육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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