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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가 아닌 장미로 보낸 선생님
2019, 보고 싶은 얼굴 특별 기획전 - 고 배주영 선생님
 
이주영 · 퇴직 조합원(서울참교육동지회)   기사입력  2019/10/02 [08:35]

이한열기념관 기획전시실에서는 오는 12월 31일까지 다섯번째 <보고싶은 얼굴 전>이 열린다. 민주화 과정에서 숨진 현대사의 숨어있는 인물 6인의 기억을 소환해 이들의 이야기를 함께하는 것이다. 올해에는 전교조 결성 초기 우리 곁을 떠났던 고 배주영 교사의 이야기가 소개된다. 학생들과 함께 방문해 한국 현대사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보면 어떨까. 편집자주 

 

지난 9월 26일부터 12월 31일까지 서울 신촌에 있는 이한열기념관에서 다섯 번째 <보고 싶은 얼굴 특별기획전>이 열린다.

 

보고 싶은 얼굴 다섯 명 가운데 배주영(1963-1990) 선생님이 있다. 배주영 선생님은 19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결성 후 투쟁 과정에서 경북 진보종고에서 해직되었고, 청송지회를 조직하고 총무부장으로 활동하다 1990년 2월 19일 사고로 돌아가셨다.

▲ 이윤엽 작가가 형상화 한 고 배주영 교사의 모습     © 이한열 기념사업회 제공

 

 배주영 선생님은 1963년 경북 달성에서 태어나 경북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1985년 경북 봉화여고에서 교직 생활을 시작했다.

 

 안동교사협의회 부회장으로 활동하다 1989년 전교조 결성에 참여해서 청송 영양노조를 결성했다. 1989년 8월 18일 해임당하고 진보에서 자취를 하면서 청송과 영양 지회 활동을 계속했다. 전교조 신문과 투쟁 홍보지를 가득 담은 배낭을 메고 학교마다 찾아다녔고, 진보종고에서 담임했던 아이들을 학교 밖에서 꾸준히 만났다.

 

 겨울 방학 때도 집에 가지 않고 안동지회와 청송지회에서 활동하던 중 담임을 했던 진보종고 제자들 졸업식에 참여하기 위해 갔다가 연탄가스로 참변을 당하셨다. 제자들과 졸업하는 날 교문 밖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 무렵 돈이 없어서 싼 방을 얻어 놓고 안동지회 일로 나와 있다가 처음 집에 들어가 잔 날이라고 한다.


 경북지부에서 배주영 선생님 유품 한 상자를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다. 일기장, 학급 경영록, 4년 6개월 동안 가르쳤던 제자들에 대한 기록, 교사협의회와 전교조 결성 활동을 하면서 틈틈이 적어놓은 이야기, 자작 시, 사진들이다.


 그 내용을 보면 누구보다 아이들을 사랑했고, 얼마나 치열하게 투쟁했는지. 그리고 젊은 교사로서 겪은 고민과 갈등을 볼 수 있다. 그런 사랑을 받은 아이들이었기에 장례식에서 '어머니'라고 울부짖으며 국화가 아니라 붉은 장미를 조화로 바쳤다.


 이번 전시에는 광주에서 들불야학을 설립한 박기순((1957-1978), 원풍모방 민주노조원 이옥순(1954-2001), 삼성 노조 활동 보장을 요구했던 최종범(1981-2013), 방송노동자들이 겪는 열악한 노동조건에 저항하다 별이 된 이한빛(1989-2016), 영등포산업선교회에서 노동자를 위해 헌신하신 조지송(1933-2019) 열사들이 함께하고 있다. 조촐하고 소박한 손바닥을 닮은 전시지만 그만큼 더 오롯이 마음에 담아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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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0/02 [08:35]  최종편집: ⓒ 교육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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