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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살리고 공동체를 살리는 '사과법'
 
김훈태 · 슈타이너사상연구소 대표   기사입력  2019/09/03 [09:54]

"미안해"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특히 아내에게 그런 말을 많이 했는데, 속 깊은 아내는 참고 참다가 어느 날 정색을 하고 말했다. "미안해라는 말 그만해. 당신은 그렇게 말하면서 마음이 편해졌는지 몰라도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잖아."

 

듣고 보니 그랬다. 시간 약속을 지키지 못할 때가 잦아 그때마다 사과했지만 아내 입장에서는 아무것도 충족되지 않았던 것이다. 중요한 건 "미안해"라는 말이 아니라 변화였다. 잘못을 할 때 관성적으로 사과하는 것은 말의 무게만 낮추는 일이다. 나의 잘못으로 인해 크든 작든 피해가 발생했다면 내 입장이 아니라 피해를 입은 이의 입장에 서는 것이 필요하다. 사과는 피해자의 고통에 대한 직면이자,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이다. 그럴 때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다.


 우리는 누구나 책임지는 게 어렵다. 우리의 자아가 아직 미숙하고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이다. 작은 잘못이더라도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기보다 회피하거나 상대에게 뒤집어씌우는 게 편하다. 무의식적으로 방어기제가 작동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싸웠을 때 "왜 싸웠니?"라고 묻는 발화는 좋지 않다. 질문의 의도와 달리 "제가 잘못했어요"라는 답은 나오기 어렵다. 대부분 "쟤 때문에요"라는 답이 나올 것이다. 마찬가지로 "먼저 잘못한 사람이 누구야?"라고 묻는 것도 좋지 않다. 책임을 회피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흔하게 이어지는 다음 질문은 "너 뭐 잘못했어?"이고, 바로 "무슨 벌 받을래?"로 이어진다. 빨리 가해자를 특정해 사건을 종료시키고자 하는 충동에 사과를 종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놓치는 건 발생한 피해에 대한 직면과 자발적 책임이다. 마음에도 없는 사과에 피해를 입은 사람은 오히려 더 상처를 받기도 한다.


 질문을 바르게 한다면 "무슨 일이 있었니?"부터 물어야 할 것이다. '잘못'이라는 가치판단 이전에, 벌어진 일을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무슨 말을 했고, 어떤 행동이 나왔는지 자초지종을 각자의 입장에서 말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다. 충분히 이야기 나눈 뒤에 교사 또는 조정자가 상황을 정리해서 쟁점을 찾고, 여기에서 발생한 피해에 집중하도록 돕는다. 이것이 직면의 첫 번째 과정이다. 양쪽 당사자, 나아가 주변 사람의 이야기까지 듣고 나서 객관적으로 상황을 보려는 노력은 어느 정도 자기중심성을 극복하게 해 준다.

 

다음으로 할 일은 각자의 심정을 묻는 것이다.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는 괴로움, 억울함, 두려움 등의 내적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필요하다. 가해와 피해를 특정할 수 없을 때도 있겠지만 발생한 피해로 인한 고통은 표현되어야 하고, 상대방은 그것을 들어야 한다. 이 감정에 귀를 기울이고 받아들이는 것이 공감과 수용이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그리고 그로 인해 어떤 감정이 나오는지를 정확하게 인식할 때 자아가 회복될 수 있다.


 감정은 대단히 인간적인 것이다. 진실하게 자신의 감정 또는 타인의 감정에 직면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만약 그럴 수 있다면 가해를 한 사람은 자신이 저지른 행위의 결과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 자기 행위로 인해 고통받은 타인의 감정 앞에서 달아나지 못하고 온전히 귀 기울여 들었을 때 비로소 뉘우치는 마음이 든다. 책임을 자각하는 일은 미숙한 자아에게 고통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그러한 고통스러운 직면이 진정한 사과를 부르고 자발적으로 무언가라도 하고 싶게 만든다. 그 마음이 와 닿았을 때 피해를 입은 사람도 조금씩 딱딱해진 마음이 풀리고 마음이 열린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관계가 회복될 수 있다.

 

종종 갈등 사건이 공동체를 성숙하게 만드는 것은 이처럼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질 때이다. 이것을 매뉴얼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매뉴얼에 따라 사랑을 할 수 없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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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9/03 [09:54]  최종편집: ⓒ 교육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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