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로 널리 알려진 단재 신채호. 그의 저서들에 보이는 역사관은, 중세의 사학을 극복하고 이미 근대적인 사학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당시 일본 학자들의 조선사 연구 자세에서 보이는 식민주의 사학을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민족주의 사학으로서의 성격이 강하게 나타났다.
조선혁명선언 이후 역사의 주체를 민중에게서 발견하려는 민중 중심 사관이 뚜렷이 나타나기도 했다. 역사를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의 기록으로서 파악하는 한편, 역사 연구에 있어서 실증(實證)을 강조했다. 30세 되던 해에는 윤치호, 안창호, 최광옥, 최남선, 박중화, 장응진 등과 신민회의 방계조직인 청년학우회를 조직하고 취지서를 집필했다. 그는 독립운동가이자 학자로서 삶을 살다간 이 땅의 자랑스러운 교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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