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 페이스북 분회 오프라인 모임에 다녀와서

정은균・군산영광중 | 기사입력 2019/07/23 [22:41]
전교조 페이스북 분회 오프라인 모임에 다녀와서
짠하고 위험하고 무서운 전교조 이야기하며 희망찾기
정은균・군산영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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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7/23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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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하고 위험하고 무서운 전교조 이야기하며 희망찾기

<분회원 220명의 최대 분회, 바로 '전교조 페이스북 분회'이다. 지난 5월 개설된 페이스북 분회는 학교라는 공간적 제약을 넘어선 최초의 온라인 분회이며, 소통과 건전한 비판의 장을 표방하며 자생적으로 개설되었다.>         

▲     지난 21일 전교조라는 공통점 하나로 대전에 모인 페이스북 분회 분회원들 ©페이스북 분회

 

지난 20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페이스북 분회 오프라인 모임이 열린 대전에 다녀왔다. 서대전역에서 내려 모임 장소가 있는 대전역 근방으로 가기 위해 택시에 올랐다. 나이 지긋한 중년 기사님이 나를 맞아 주셨다.

...

“아이구, 어서 오세유.”

잠시 뒤 기사님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기사님을 “형님”이라고 부르는, 친한 후배 같았다.

“뭐허신대유. 서울 검사는 잘 다녀오셨대유?”
“잘 댕겨 왔지. 먹고 살려니 일하지. 비도 오고 헐 만허네.”
“거그서는 워떻다고 해유?”
“죽지 않으면 산댜.”
“죽지 않으면 산다규? 잘 나으셔얄텐디.”
“낫긴 뭘 나아. 죽지 않으면 산댜.”

 

기사님은 그 뒤로도 “죽지 않으면 산댜”라는 말을 너댓 번쯤 되풀이하셨다. 잔뜩 높여 놓았을 게 분명한 전화 통화음 볼륨 덕분에 예의 후배 목소리가 택시 안에 그대로 중계되었다. 후배의 말뜻은 진지했으나 말소리는 반쯤 농담조처럼 연출되었다. 나는 그들이 주고받는 말에서 흔히 말하는 충청도 사람 특유의 의뭉스러움 같은 것을 느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너무나 명명백백하고 한 치의 논리적 오류도 없는 그 말장난 같은 말이 묘한 감정과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각자 사는 일이 죽을 만큼 힘들다고 하면서도 죽지 않는다. 죽지 않으면 살아 있는 것이다! 나는 그 말에서 오묘한 힘을 느꼈다.

 

택시 안에서 뜻밖의 순간에 우연히 만난 삶의 교훈을 되새기며 모임 장소에 도착했다. 부산에서 오신 이호재 선생님, 경기와 인천에서 오신 구자숙, 박길훈, 신혜영, 안수민 선생님, 대전과 충남에서 오신 강정숙, 김명주, 김현규, 김현희 선생님, 서울에서 오신 권정오, 손균자, 송진아, 정혜진 선생님 들이 자리에 계셨다. 인사를 드리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가 나눈 대화 화제의 중심은 단연 ‘전교조’였다. 전교조 내부에서 보는 전교조와 전교조 외부에서 밖으로 내비칠 때 보이는 전교조 모습은 너무 다르다. 오늘 우리가 나눈 이야기 속의 전교조 역시 마찬가지였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한편으로 짠하고 위험하고 무서우며 구린 전교조를 이야기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자신감 넘치고 편안하고 다정다감하고 매력적인 전교조를 말하고 있었다.

나는 이것이 전교조를 보는 사람이 전교조 내부나 외부의 어떤 자리에서 어느 시점의 전교조를 어떤 시선으로 보는가에 따라 결정된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니 누구나 전교조를 말하지만 아무도 전교조를 정확하게 묘사할 수 없다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우리가 실제로 ‘만나는’ 전교조와, 이를 통해 우리가 ‘아는’ 전교조와, 이런 저런 경험과 시간을 통해 결론처럼 끄집어 내는, 우리가 ‘원하는’ 전교조는 모두 같지 않다. 5만 명의 조합원이 있으니 5만 개의 전교조가 있을 수 있다. 나는 이러한 사실들이 우리가 전교조에게서 희망이나 가능성을 찾아도 되는 이유나 근거라고 말하고 싶다.

 

소통과 협력이 만능의 마법 주문처럼 통용되는 시대다. 미래 교육자들은 소통과 협력이 필수적이고 중대한 미래 역량처럼 말하면서 학교가 소통과 협력의 허브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제 우리가 마주치는 소통과 협력은 문자와 구호만으로 그칠 때가 많다. 온라인에서든 오프라인에서든 수평적인 관계와 상호 존중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펼쳐지는 인간관계의 장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오늘 전교조 페북 분회 모임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우리는 ‘전교조’라는 공통의 화두를 앞에 두고 평소 각자 고민하는 이야기와 실천했으면 하고 떠올린 생각들을 격의 없이 주고받았다. 우리 사이를 가로막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확 트이면서[疏] 통하는[通] 시간을 경험했으니, 이야말로 진정한 소통(疏通)이라고 자부해도 되지 않을까.

전교조는 법외노조 상태다. 죽지 않았지만 죽은 것이나 매한가지인 시간을 보내고 있다. 법외노조라는 족쇄 때문에 피를 흘리고 아파하는 조합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들을, 노동이나 노동조합(운동)에 적대적인 사회 문화적인 분위기와, 교육 생태계를 각자 가진 삿된 욕망의 하수구처럼 활용하고 싶어하는 정치 시스템이 둘러싸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죽지 않았고, 그렇게 죽지 않았으니 살아 있는 것이다. 나는 살아 있는 것은 살게 됨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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