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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칼럼] 존재 자체가 '변화'인 2030
 
조명진·전교조 경기지부 교육소통국장 기사입력  2019/07/08 [13:57]

  몇 해 전 지회집행부를 결심하면서 사업 계획보다는 사무실 청소를 첫 번째 과제로 삼았었다. 지저분하고 딱딱한 사무실 대신 쾌적하면서 편안하게 얘기 나눌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다. 공간의 힘을 빌어 진부하지 않고 관행적이지 않은 회의 결과를 얻고 싶었다.


 어느 정도 물건을 비우고 나니 꽂을 공간 없이 꼭 찼던 책장이 빈 책장이 되었다. 이제 책장을 이리저리 옮겨 공간에 변화를 주기로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십수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책장은 그만 빠지직 소리와 함께 부서지고 말았다. 이 장면을 보고 우리 집행부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보수가 변화를 싫어하는 것은 변하는 순간 죽음을 맞게 될 것을 알기 때문이다."
 너무 비약이 심했나?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곧 죽음으로 간다는 그날의 명제를 확인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죽어가는 공교육을 살리기 위해 혁신교육을 외치고, 구태의 성고정 역할을 고수하다간 살아남기 힘든 사회가 되었으며, 전교조도 새로운 교육과  제도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그런데 안타까운 점은 변화의 의지가 곧 변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변화의 의지가 없는 사람을 흔히들 보수라 부르지만 진보라 하는 사람들 가운데에도 변화의 의지가 없는 사람은 많다. 


 또한, 변화를 바라고 변화된 시대에 맞춰가려는 의지는 있으나 능력 부족 역시 변화를 지연시킬수 있다. 변화하는 상황을 면밀히 살피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저 머무르게 되고, 마음은 변화를 추구하지만 생각이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 변화를 하려거든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이미 변화된 세상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존재 자체로 변화한 사람이다. 우리에게 있어 두려울 수도 있는 변화가 그들에게는 그냥 변화 결과 그 자체이다. 우리가 2030을 간절히 바라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교조의 더욱 극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2030을 위한 사업을 할 게 아니라 2030이 하고자 하는 사업을 하도록 제도와 '정서'를 뒷받침해야 할 것이다.


 이 글을 마치며 최근에 한 선배한테 들은 말을 떠올려 본다.
 '후배는 싸가지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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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7/08 [13:57]  최종편집: ⓒ 교육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