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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로 만나는 ‘동구학원’과 성북동 사람들
[현장] 2019년 2차 동구학원 정상화투쟁 결의대회를 다녀와서
 
김상정 기사입력  2019/06/03 [14:17]

 

3개의 의자

 새해가 온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5월의 끝자락이다. 4호선을 타고 한성대역 6번 출구로 나와 조금 걷다 보니 작은 가로 공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공원에 나란히 앉아 있는 한중 평화의 소녀상’, 이 소녀상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 회복을 위해세운 소녀상으로 한복을 입은 한국인 소녀상과 치파오를 입은 중국인 소녀상이 나란히 앉아 있다. 그 옆에 비어있는 의자는 뭘까? 다른 아시아 국가의 희생자들을 위한 자리라고 한다. 일본 제국주의 침략 전쟁에 의해 희생된 수많은 이들이 쉬어가는 그 빈 의자. 그 의자에 앉을 사람들은 누구일까? 그로 인해 희생당한 이들이 비단 일제 강점기 때만이었을까? 지금은? 그리고 우리는? 그리고 530, 이 공원에 모여 동구학원 정상화를 위해 집회를 열고 있는 이들은?

 

▲ 작은 가로 공원에 있는 한중평화의 소녀상과 빈의자, 그 앞에 서 있는 사람들     ©김상정 기자

 

1750

김용섭 전교조 서울지부 북부사립지회장은 2019530일 저녁 530, 한성대 입구역 6번 출구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이 자리잡은 가로 공원에서 열린 동구학원 정상화를 위한 2차 집중 집회사회를 맡았다. 사회자의 첫마디는 ‘1750이라는 숫자였다. 일일이 세어보니 벌써 동구학원 정상화를 위한 싸움을 해온 지, 그만큼의 시간이 지나왔단다. 얼마나 긴 시간인지 실감이 안나 계산기를 두드려봤다. 4년하고도 290일의 시간이다. 그동안 동구마케팅고와 동구여중의 교장 두 명이 파면이 됐고, 여전히 권대익 동구마케팅고 교장은 학교로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 안병순 학교행정실장도 그 과정에서 파면이 돼 소송이 진행 중이다.

 

 동구학원은 누가 세웠나

무려 70년에 걸쳐 이어져 온 사립학교 족벌운영체제가 가져 온 비리다. 그 오랜 비리에 맞서 싸우기 시작한 지, 2012. 이제 7년이다. 늘 책을 들고 다니는 문학 샘이 다시 학교로 돌아가서 아름다운 동구학원을 만들어주기를 간절히 기원한다집회에 온  진웅용 용화여고 교사의 말이다.

 

‘70년 간 족벌운영된 사학이라니. 동구마케팅고등학교 누리집에 적힌 1940년부터 2015년까지의 학교법인 동구의 연혁을 봤다. 연혁에는 학교명 변경과 함께 설립자, 이사장, 교장의 이름이 등장한다. 같은 이름이 몇 번 등장하는지 세어보았다.

 

▲ 동구마케팅고 누리집에 올려져 있는 동구학원 연혁에는 '김활란'이란 이름이 총 3번 나온다.     © 누리집 갈무리


연혁에 김활란이란 이름은 3번 등장한다. 1942년에는 설립자로 1957년부터 1961년까지 이사장으로 이름을 올린다. 조석봉이란 이름은 총 7번 등장한다. 설립자 대표부터 이사장, 교장을 지냈다. 김정옥이란 이름도 교장과 이사장으로 총 3번 등장한다. 뒤를 이어 조웅은 총 3, 최길자는 총 4번 등장한다. 이들도 역대 이사장과 교장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설립자, 이사장, 교장명단에 있는 김활란, 조석봉, 김정옥, 조웅, 최길자는 모두 친척 관계다. 김활란의 조카가 김정옥이다. 조석봉은 김활란의 조카사위다. 조웅은 조석봉과 김정옥의 아들이고 최길자는 조웅의 처다. 김활란(1899~1970)은 친일인명사전에 “1936년 말부터 교육과 여성계몽 분야에서 친일활동에 앞장서기 시작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학교 누리집에는 2015년까지의 연혁만 있다. 2017년 학교에 관선이사가 파견되고 20175월부터 2018122일까지 동구마케팅고등학교장이었던 권대익이란 이름은 없다.

 

2012년 동구학원의 내부비리를 고발한 안종훈 교사는 항상 책을 들고 다니는 천상 문학교사였다. 그런 그가 요즘은 법률용어가 더 익숙하다고 말한단다. 진웅용 용화여고 교사는 안교사가 다시 교단에서 문학을 가르치고 권대익 교장 선생님, 안병순 행정실장님 모두 학교도 다시 돌아가는 방식으로 동구학원이 민주화되기를 간절히 바란다.”라고 말한다.

 

▲ 친일인명사전은 스마트폰 앱에서도 볼 수 있다. 앱을 열고 인명으로 '김활란'을 찾으면 일제강점기 다양한 행적이 나온다.     © 화면 갈무리

 

 30년 성북동에서의 삶

2019년 동구 정상화 투쟁 2차 집중 집회가 열린 530, 1750일 동안 동구학원에서 총 5명이 징계를 받았다. 그중 4명이 길거리로 쫒겨났고, 여전히 3명이 학교로 돌아가지 못했다. 김용섭 전교조 서울지부 북부사립지회장은 오랜 시간 동안 싸움을 멈출 수 없는 이유는 동구학원에 여전히 학생들이 다니고 있어서다. 민주화된 학교에서 학생들을 지켜야 한다는 교사로서의 사명감이었다.”라고 말하며 동네 사람들과 연대 단체 활동가들이 늘 함께 하고 있어서 이 싸움을 이어올 수 있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가수 류금신은 가장 정직하고 깨끗해야 할 학교에서 비리가 일어났다. 비리를 바로 잡기 위해 애쓰는 교사가 해고를 당하고 벼랑 끝으로 몰리는 현실이다. 그 답답한 현실과 맞서 싸우는 교사들과 함께여서 기쁘다.”고 말하며 희망의 노래를 불렀고, 동구마케팅고에서 해고된 권대익 교장은 두 손을 번쩍 들고 환호했다.

 

권대익 교장은 성북동에서 30년 넘게 살았다. 30년 전에 성북동 구경을 오면 도랑에서 멱감던 사람들이 있었다. 지금 성북동은 재개발이 진행 중이다. 성북동에 평생을 살아온 이들이 하루아침에 쫒겨 날 위기에 내몰린 것이다. 권 교장의 삶은 동네 사람들이 겪고 있는 이 처참한 현실과도 닿아 있다. 왜 사립학교 싸움을 아무리 해도 변하지 않을까. 그는 그 이유는 돈을 가지고 그 부를 끊임없이 축적하려 하는 이들의 비리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이 싸움은 작은 동구학원만의 싸움이 아니라 비리를 이어오고 있는 거대한 부와의 싸움으로 우리 후손들을 행복하게 해 줄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 동구학원 정상화, 법인 갑질 중단을 외치는 이들     © 김상정 기자


 70년에 맞선 7년 동안의 싸움

이 싸움의 뿌리와 끝은 무엇일까?” 2012년 동구학원 최초 비리 제보자 안종훈 교사가 꺼낸 첫 말이다. “제대로 청산해내지 못한 친일의 역사가 있었다.” 그에게 친일이라는 건 글자에서 관념 속에서만 있었던 거였다. 해직과 복직과 파면을 거듭 겪으면서 정직하지 못한 과정을 통해 축적된 부를 왜 지키려 하는가라는 물음을 많이 던졌다. 소설 성북동 비둘기에서 나오는 채석장에서 돌을 쪼던 장소쯤이었을까? 학교가 세워진 42년도는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는 시기였다. 친일인명사전에 따르면, 김활란은 19428월 징병제 실시를 환영하는 담화를 발표한다. 동구마케팅고는 성북동 스카이웨이 가는 길 아래쪽에 위치한다. 안종훈 교사는 이제는 학교를 원래 주인인 시민의 품으로 돌려줘도 된다사학이 원래 자리인 시민의 품으로 돌아올 때 이 싸움이 끝난다.”라고 말한다.

 

오늘 우리가 승리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싸움은 반드시 우리가 승리한다. 시민의 품으로 돌아올 때까지 싸우기 때문이다

 

안종훈 교사의 말이다.

 

▲ 집회 후, 한성대입구역에서 성신여대 입구역까지 도로 1개 차선으로 도보행진을 하며 동구학원 정상화를 촉구했다.     ©김상정 기자

 

거리의 교사를 응원하는 3명의 주민

한성대입구역에서 집회를 마친 이들은 성신여대 입구까지 가는 큰길의 1개 차선으로 도보 행진을 했다. 풍물패가 먼저 꽹과리, , 장구를 치며 시민들에게 도보 행진을 알렸다.

권정오 전교조 위원장은 학생수업권 보장, 교사 신분 보장, 학교운영 정상화하라라는 피켓을 들었고 조연희 전교조 서울지부장은 학생 학부모도 분노한다. 법인 갑질 중단하고 배움의 공동체 보장하라를 피켓을 들고 행진대열의 맨 앞에 섰다.

장바구니를 들고 가던 3명의 동네 주민들은 풍물 가락이 흥겨웠는지 두 손을 들고 덩실덩실 춤을 추며 응원의 말을 던졌다. 이들도 반백년 전쯤에는 성북동 어디쯤엔가 혹은 대한민국 어디쯤엔가 살았던 꿈 많던 10대 청소년이었을 것이다. 성북동 거리를 행진하며 동구학원 정상화를 외치는 이들도, 10대 청소년이 세상을 배우고 깨닫는 학교의 민주화를 위해서 싸우고 있는 이들도, 몇십 년 전에는 10대 청소년이었고 학생이었다. 성북동 가로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 한중 평화의 소녀상은 묵묵히 주먹을 불끈 쥐고 침략 전쟁의 참상을 온몸으로 알리고 있다. 동구학원 정상화 투쟁 집중집회에 참석한 이들이 불끈 쥔 주먹을 들어 올리며 투쟁이라고 외치고 있는 풍경과 맞닿아 있다. 이 모든 일이 한 세기 동안 성북동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 인도를 지나가는 성북동 주민들은 한 손에 장바구니를 들고 한 손으로는 손짓하며 도보행진 참가자들을 응원했다.     ©김상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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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6/03 [14:17]  최종편집: ⓒ 교육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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