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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조력자' 되려는 '어쩌다 교장'
[현장] 두 번째 '평교사 출신' 공모 교장 맞은 서울 영림중
 
최대현 기사입력  2019/05/30 [15:23]

   '대상: 수업을 지나치게 방해하는 학생
 방법: 인터폰으로 제가 있는지, 상담이 가능한지 확인 후 보내주시면 됨
 활동: 준비한 백지도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여 수행'


 서울 영림중학교 교직원은 3월 20일 이런 내용을 담은 '교장사용설명서 1.0'제목의 내부메시지를 받았다. 보낸 사람은 박래광 교장이었다. 교직원 워크숍(2월 18일)에서 "샘들의 조력자가 되겠다."라고 밝힌 의지를 실천한 것이다. 교장실에는 두 개의 책상과 의자, 자신의 전공인 지리 교과를 살린 세계 각 지역의 백지도도 준비했다.

 

▲ '평교사 출신' 인 박래광 서울 영림중 교장실에는 책상 2개가 있다. 특정 수업에 어울리지 못한 학생들을 맞이하게 위해서다    © 최대현


 5월 22일 오전, 교장실에서 만난 박 교장은 "영림중은 4년간의 혁신학교로 선생님들이 수업 혁신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래서 지난 교사로서의 생활과 이 학교에서 본 것을 바탕으로 선생님들을 지원하려고 한다."라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학생 4명이 교장실로 왔다. 소수의 학생이지만, '당분간' 수업과 담임을 못하는 박 교장이 학생과 만나는 곳이기도 하다. 수업시간에 잠을 자는 이유, 선생님이 잠을 깨우는 이유 등을 차분하게 상담했다. 한 학생은 세계 지도에서 중국을 찾았다. 이 학생은 중국에서 온 아이였다.


 "우리 학교는 다문화 학생들이 10%정도를 차지해요. 어느 날인가, 학생들이 중국어로 대화를 하기에 다가갔더니, 모두 도망치더군요. 잘못한 것처럼. 그 친구들은 중국어를 잘하는 건데요. 학생들이 잘하는 것을, 칭찬하고 응원하면 됩니다. 중국어를 배워볼까도 생각 중이에요.(웃음)"


 박 교장은 지난 3월 1일 자로 영림중 교장이 됐다. 1985년 발령을 받고, 지난해까지 평교사였다. 교무부장, 연구혁신부장 등의 보직도 맡았다. 전교조 결성 참여로 4년 6개월 동안의 해직을 겪기도 했다. 이 학교에서 교장 생활을 할 수 있던 것은 영림중 교사들과 학부모들이 평교사 출신도 응모할 수 있는 내부형(B) 공모제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영림중은 전임 교장이 정년퇴임하고, 혁신학교로 재지정 되면서 교장 공모제를 추진할 수 있는 조건이 됐다. 이에 의견 수렴을 위한 학부모와 교사 대상 투표 결과, 학부모 536명 가운데 86.6%가 공모제를 찬성했고, 70.7%가 평교사도 공모할 수 있는 내부형(B)를 택했다. 교사도 47명 가운데 72.3%가 공모제에 찬성했고, 91%가 내부형(B)에 손을 들었다.


 영림중은 지난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서울 최초로 평교사 출신 공모 교장을 경험한 곳이다. 박영민 교무기획부장은 "음악 중점 자율학교로 시도했던 내부형(B)의 장점을 기억하는 학부모들 힘이 컸다."라고 설명했다. 이명박 정부 당시 이주호 교육부 장관의 임용제청 거부로 2012년 1월에야 임용장을 받은 박수찬 전 교장이 학교혁신의 틀을 만들었고, 다시 평교사 출신 교장으로 이어졌다.


 교장사용설명서에는 자신의 일과와 기안문 처리 과정 등의 내용도 담았다. 그리고 "기존의 형식적 관행, 의전을 타파하고 동료로 받아들여 주시기 바란다. 각 업무 담당자께서 교장이라 생각하시고 '교육적인가?'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주체적, 적극적으로 임해주시길 부탁드리며, 그에 따른 책임은 제가 지겠다."라고 동료 교사들에게 전했다. 1.0을 붙인 건, 앞으로 계속 추가하겠다는 의미다.


 박 교장은 오전 7시 30분경 출근한다. 그리고 교정을 둘러본다. 쓰레기도 줍는다. 학생들이 등교하는 시간에 교문에 있기도 하지만, 지적은 하지 않는다. 박 교장은 "아이들이 기쁜 마음으로 왔으면 한다. 아침부터 뭐라고 하면 긴장하지 않겠나. 더 큰 걸 잃는 게 아닌가 싶다."라고 했다.


 학생들은 새로운 교장이 살갑단다. 한 3학년 학생은 "슬리퍼를 신고와도, 크게 뭐라고 하지 않아 좋아요."라고 했고, 다른 3학년 학생은 "우리와 의사소통을 더 하시려고 한다. 그게 좋다. 그래서 쓰레기 주워서 교장샘이 들고 다니는 쓰레기통에 넣기도 한다."라며 웃었다.


 박 교장은 부장 회의를 직접 주재한다. 결과도 정리한다. 공유도 한다. 이날 회의도 그랬다. 취재에 응하느라, 정리하는 시간이 조금 늦춰졌다고 했다. 교장실 응접 의자 위치도 살짝 바꿨다. 교장석을 중심으로 한 딱딱한 배치를 원형으로 바꾸었다. 


 "사소한 것일 수도 있지만, 교직원이 행복해야 학생들이 행복한 것 같아요. 교사는 물론 급식실, 행정실에서 일하는 분들도 행복해야죠. 학교 목표는 다 좋잖아요. 학교 구성원들이 서로 함께 그 목표를 채워날 수 있느냐가 핵심인 듯합니다."


 박 교장의 교장 생활은 자신이 운영하는 블로그에서 엿볼 수 있다. 공모 교장 발령이 확정(2월 8일)되고서 '어쩌다 교장'이라는 제목으로 운영하고 있다. 5월 28일 현재까지 모두 80개의 글을 올렸다.


 "교장이 된다는 걸 전혀 생각하지 않았어요. 말 그대로 어쩌다가 교장이 된 거예요. 그러다 교장과 상관없을 것 같은 사람이 교장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로운 도전이기도 했죠. 그래서 제가 하는 교장살이의 일거수일투족을 알리면 '이런 교장도 있구나'라는, '기존의 관행을 이렇게 타파하는구나'라는 생각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승진을 준비했던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과 함께 나태해지려는 저에 대한 자극이기도 합니다."


 박 교장은 지난 3월 초, 보수언론의 특정노조 출신 공모교장이라는 공격(?)받은 당사자이기도 하다. 박 교장은 "역으로 전교조 교사들이 지지를 받고 있다는 얘기로 볼 수 있다. 적법한 절차로 그 학교 구성원에게, 지역교육청 평가에서도 선택을 받은 거니까"라면서 "하지만 전체 학교로 보면 아직도 미미하다. 평교사 출신 내부형(B) 공모 교장이 더 확대해야 의미가 있다."라고 했다.


 "교장 임기를 마치고, 교사로 다시 가고 싶어요. 수업도 하고, 담임도 하고 싶네요. 교사의 근본적인 업무이고 존재의 의미라고 생각해요. 해이해지지 않으려는 스스로와의 약속이에요." 정년이 5년 반 정도 남았다는 박 교장. 임기가 끝난 뒤인 2023년 어느 중학교에서 평교사로 다시 만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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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5/30 [15:23]  최종편집: ⓒ 교육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