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가 본 1989년 전교조 창립일

정리. 강성란 기자 | 기사입력 2019/05/28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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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가 본 1989년 전교조 창립일
정리. 강성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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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5/28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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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528, 전교조 창립일은 어땠을까? 창립대회에 참가하는 것만으로도 탄압을 받았던 교사들이 교사대회 장소 원천봉쇄라는 정부의 탄압을 어떻게 뚫고 참교육실현의 의지를 모았는지 그 당시로 돌아가 보자. <편집자 주>  참고자료 ·<참교육 한길로 -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운동사 1>, <전국교사신문(198965일자)>

   

 19895월 어느 날.

  반상회에 참여한 이들에게 '정부도 강력 대처할 터이니 학부모도 이상한 점이 발견되면 학교와 협의하라'는 유인물이 전달됐다. 528일로 예고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출범식을 앞둔 풍경이다.

  이미 노조 추진을 이유로 김지철 충남도교육감(당시 충남 준비위원장)이 구속됐다. 윤영규 준비위원장 등 간부들에게는 사전 구속영장이 청구됐고 직위해제 된 교사들만 37명이었다.

 

 528. 출범식이 예정된 한양대학교로 가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출발한 교사들은 버스터미널, 기차역, 고속도로 입구 등에 배치된 경찰과 교장, 장학사 등이 총 동원된 검문에 상경길이 막혔다. 서울행이 좌절된 전남·광주지역 교사 3000여명은 광주역 앞에서 규탄대회를 열었다.  

 

▲ 경찰 병력을 뚫고 결성대회 예정장소인 한양대로 진입한 전교조 교사들의 연행을 막기 위해 학생회관 입구에서 스크럼을 짠 채 앉아있던 사범대생 70여명을 장학사, 교장, 교감 등이 강제로 끌어내고 있다.     © <교육희망> 자료사진

 

▲ 결성대회 예정 장소인 한양대가 경찰병력에 의해 봉쇄되자 교사들은 학교에 진입하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 전교조 자료사진

 

▲ 한양대에 어렵사리 진입한 교사들도 결국 경찰에 연행됐다. 꽉 막힌 한양대... 결성대회 장소는 결성식 당일 연세대로 변경됐다.     © 전교조 자료사진

 

 '(전략)철모르는 어린 것들을 생각할 때

 

   남의 자식 바르게 가르치자는 일로 소홀했던 내 자식들도 생각합니다.

 우리들이 가는 길의 길목 길목을 경찰이 막아선 시대

 한 걸음만 앞서가면 오랏줄에 묶여가는 시대

 이것이 이 시대에 태어난 우리들이 져야 할 십자가라서 피하지 않고 갑니다.

 오랏줄이 기다리는 서울로 갑니다'

 

 도종환 시인(당시 충북 준비위원장)이 쓴 '서울행 버스에서'라는 시에는 당시의 심경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드라마 같은 결성대회 참가 작전

 

 전교조 출범식을 막기 위한 교육 관료들의 노력(?)은 차라리 눈물겹다. 전북 부안교육청은 동료교사 2명을 감시조로 편성해 참가 예상 교사들을 감시하게 했다. 감시조였던 원로교사는 자신의 눈을 피해 서울을 다녀온 젊은 여교사에게 손찌검을 서슴지 않았다. 당시 부안지역 교사협의회 회장은 교장, 교감과 경찰에 의해 출범식 전날인 27일 정오부터 다음 날까지 함께 숙식을 한다는 구실로 강제 연금되었다. 경북 청송에서는 한 초등 교사의 출범식 참여를 막기 위해 장학사가 27일부터 차비 2만원을 쥐어주며 안동댐 관광을 시키고, 28일 대구로 넘어가 바지와 윗옷을 사주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 결성대회 참가를 위해 한양대로 왔지만 연행되는 교사들     © 전교조 자료사진

 

▲ 결국 교사들은 연행되어 인근 경찰서로 뿔뿔히 흩어졌다     © 전교조 자료사진

 

▲ 전교조 결성식에 참여하기 위해 결성대회 장소를 찾았다가 경찰에 연행된 교사들은 유치장에서 각각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전교조 결성식을 진행했다. 사진은 당시 동부경찰서 유치장에서 치러진 결성식     © 전교조 자료사진

 

 결성대회 전날 수업 내내 관제동원 된 학부모, 동창회원 30여명이 운동장에서 떠들며 수업을 방해하자 이에 분노한 평교사회 회원 전원이 노조 건설에 참여하겠다는 의견을 밝혀오기도 했다. 학교장이 결성대회 참가여부를 교사들에게 물으며 녹음기를 들이댄 학교 사연에 이르면 교육관료들의 치졸함에 분노를 넘어 실소를 참을 수 없다.

 

 고속버스터미널에 이미 장학사와 경찰이 모여 있다는 소식을 들은 교사는 10만원에 택시를 빌려(당시 중견 교사의 한 달 급여는 70만원 수준이었다) 서울로 출발했다.

 

 전날부터 따라다니는 장학사인지 형사인지 모를 이 앞에서 은장도를 꺼내 들고 '자결 하겠다'고 위협한 끝에 서울로 올 수 있었던 교사, 집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교육청 관료들을 피해 40리 산길을 돌아 서울로 향한 교사, 경찰을 피해 사실상 전국 일주를 하다가 결성식이 끝난 늦은 저녁 서울에 도착한 교사들, 1차 검문은 상가에 간다는 핑계를 대며 따돌렸으나 결국 다시 검문에 걸려 닭장차에 포위된 교사들(이들 중 일부는 결국 택시노조의 도움 등으로 결성식에 참가했다),…… 하지만 웃지 못할 수난을 겪으며 서울에 도착한 교사들은 봉쇄된 한양대 앞에서 망연자실했다.

 

 대회 이틀 전부터 한양대 주변에 7개 중대 1000여명을 배치한 경찰은 대회 당일에는 30개 중대 4500명으로 투입 인력을 늘리고 한양대를 완전 봉쇄하는 한편 한양대 반경 2킬로미터까지 검문검색을 실시했다. 지하철 2호선 한양대역은 폐쇄됐고, 지하철은 무정차 통과했다.

 

▲ 결국 위원장 등 집행부들은 결성대회를 위해 연세대로 향했다. 연세대 인근에 있던 200여명의 교사들도 뒤를 이었다. 결국 연세대 대강당 앞에서 윤영규 전교조 위원장이 결성선언문을 읽는 것으로 대망의 결성식을 마쳤다.     © 전교조 자료사진

 

▲ 연세대에서 무사히 결성식을 마쳤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각지에 흩어져있던 교사들은 건국대로 모여 결성보고대회를 진행했다.     © 전교조 자료사진

 

▲ 결성보고대회 참석을 위해 건국대를 찾은 교사들 중 일부는 또 다시 경찰 병력에 막히기도 했다     © 전교조 자료사진

 

 교사 200여명은 이 같은 저지를 뚫고 한양대에 도착했지만 전교조 집행부는 들어가지 못한 상황. 오후 1시경 연세대는 출입통제가 되지 않는다는 소식을 들은 집행부는 택시를 타고 연세대로 향했다. 삐삐도 휴대전화도 없던 시절이었다. 연세대 앞 독수리 다방은 출범식 장소를 묻는 전화에 장사가 안 될 정도였다. 그렇게 신촌 일대에 있던 교사들 200여명이 연세대에 도착했다.

 

 결성대회는 자료집 순서에 따라 20여분 만에 끝났다. 이수호 사무처장이 사회를 보았고 권영국 임시의장이 윤영규 준비위원장을 위원장 후보로 추천하자 참가자들은 윤영규 위원장과 이부영 수석부위원장 등을 선임했다. 이날 결성대회에서는 준비된 대회사를 읽을 겨를도 없었다. 결성식 자료화면으로 자주 등장하는, 윤영규 위원장이 "민족교육 만세! 민주교육 만세! 인간화 교육 만세!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만만세!"를 외치는 결성선언문에 참가자들은 눈물과 함성으로 답했을 뿐이다.

 

 "교육민주화 위해 일어선 사람들" 

 

 결성대회는 20여분 만에 끝났다. 당황한 경찰은 전교조 집행부를 체포하려고 했지만 대학생들이 어깨동무를 하며 막아 나섰고 경찰은 결국 체포를 포기하고 병력을 철수시켰다.

 

 하지만 원래 결성대회 장소였던 한양대 학생회관에서 결성 보고 및 탄압 규탄 대회를 열던 200여명의 교사들은 난입한 사복 경찰과 교육 관료들에 의해 전원 밖으로 끌려나왔다. 당시 줄줄이 엮여 끌려 나가던 교사들의 모습은 전교조 결성식 당시 사진으로 여러 번 소개되었다.

 

 이날 한양대에서 교육 관료들은 사실상 '백골단' 역할을 했다. 교장, 교감, 주임들은 '31조가 되어 교사 1명을 연행하라'는 지휘자의 말에 따라 교사들에게 달려들었다. 이는 경찰의 지원 요청을 받은 서울시교육위원회가 교장단 회의를 소집한 뒤 이들의 참여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 결성대회를 마친 뒤 전교조 집행부는 서울 마포구 민주당사에서 전교조 탄압 분쇄 및 징계 철회를 위한 무기한 단식 농성에 돌입했다     © 전교조 자료사진

 

 한편 연세대 결성대회 성공 소식을 접한 2000여명의 교사들은 건국대에서 전교조 결성 보고 및 탄압 규탄 대회를 열었다.

 

 이후 <한겨레신문>은 사설을 통해 '이 무법에 시종일관 평화적으로 맞선 교사들은 바로 그런 교장과 교감과 장학사가 반세기 동안 더럽혀 놓은 교육의 현장을 민주화하여 건강한 새 세대를 기르려고 일어난 사람들'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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