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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이 다시 읽는 창립선언문
전교조의 한결 같음, 변화의 노력으로 가능한 일
 
김현희 · 대전상지초 기사입력  2019/05/03 [16:34]

 난생 처음 전교조 창립 선언문을 읽었다. 엄혹했던 시절의 결의가 비장하게 흐르는 글을 읽고 무슨 말을 써야 할지 잠시 고민에 빠졌다. 30주년을 맞은 전교조 앞에서 의미 없는 찬가나 무분별한 비판을 늘어놓고 싶지 않다. 선언문 저변의 기조를 현재 맥락과 연결해 지금, 이곳에서 내가 논의하고 싶은 질문을 던져본다. 


 창립 선언문에 민족이란 단어가 여러 번 등장한다. 그 중에서도 다음의 문장은 유독 눈길을 끈다. '오늘 우리의 교육은 수십 년 군사독재를 청산하여 민주화를 이루고 분단된 조국의 통일을 앞당길 동량을 키우는 민족사적 성업을 수행해야만 한다.' 현재, 내 입장에서 교육을 조국 통일을 앞당길 수단으로, 교육자를 민족사적 성업을 짊어진 수행인으로 보는 관점은 동의하기 어렵다. 통일의 자리에 노동해방, 성평등, 생태환경보호 등이 자리했다해도 마찬가지다. 교육과 인간은 가치실현과 대의를 위한 수단일 수 없다. 듀이의 말마따나 교육의 목적은 교육 그 자체에 있다. 내게는 다음과 같은 질문이 남았다. 전교조는 교육 그 자체의 목적에 집중하며 교원노조로서의 철학과 정체성을 정립했는가?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언어가 되기 쉬운 '민족'을 넘어 무엇을 말해왔고 앞으로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성업', '존경받는 스승'이란 단어의 맥락에 대해서도 세대 감수성의 차이를 넘어 고민해 본다. 전교조는 교원을 노동자로 보는 관점을 견지했지만 현실은 전문가, 노동자, 성직자적 관점이 혼재해있다. 교직을 성직으로 보는 관점이 과거 교사들이 휘둘렀던 폭력을 정당화하고, 교사를 사회로부터 유리시키고, 교사들의 정치기본권을 침해하는 방향으로 악용되어온 점은 주지의 사실이고 전교조는 끊임없이 이에 대항해왔으며 나는 이 점이 자랑스럽다. 하지만 조합의 문화와 역사에 새겨진 희생적인 성직자, 전사, 참스승의 그림자는 어딘지 내게 무거운 갑옷 같다. 나는 성직자나 성전을 치르는 전사가 되기 위해 교사가 되지 않았다. 방학이 좋고 월급날을 기다리는 소시민이고 그 사실이 부끄럽지 않다. 성인聖人, 스승, 참교육의 희망이라는 틀에 갇히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대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일을 하면서도 밝고 당당한 교사가 되고 싶다. 전교조가 바라보는 교사는 누구인가? 교사란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책임을 지는 존재인가? 그리고 전교조에게 조합원과 활동가란 무엇인가?


 선언문은 '단결한 40만 교직원의 대열은 저 간악한 무리들의 기도를 무위로 돌려놓을 것'이라 선포하고 있다. 표현 자체보다는 이런 언어 습관이 내면화해온 이분법적 사고를 돌아본다. 기득권 수호를 위해 공교육의 본질을 훼손해온 세력을 비호할 생각은 없지만 세상을 선악의 이분법적 구도로 보는 관점이 우리에게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현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회색지대을 직시하고 대중의 지지를 얻으려는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주위에서 간혹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불편해도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겠다!'라는 태도를 만나는데 내용과 형식을 통합하려는 끊임없는 노력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그런 태도는 어떤 면에서 이미 진정성을 잃었다고 본다. 인간도, 조직도 스스로의 도덕성에 만족하는 순간 퇴화의 길을 걷기 마련이다. 남은 질문은 다음과 같다. 흑백텔레비전처럼 단순하지 않은 현실 속에서 우리는 내용과 형식을 어떻게 통합해갈 것인가?


 고대 그리스 사상가 헤라클리투스는 만물은 끝없이 변화해 '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다'는 말을 남겼다. 그리고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주인공 올리버는 헤라클리투스의 말을 아래와 같이 해석한다.
 
 흘러가는 강물의 의미는
(The meaning of the river flowing is)
 세상의 모든 것들은 변하므로
(not that all things are changing)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so that we cannot encounter them twice)
 어떤 것들은 오직 변화를 통해서만 같음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but that some things stay the same only by changing.)
 
전교조가 변하지 않기 위해 어떻게 변화해야 할지 30번째 생일을 맞은 전교조와 함께 생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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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5/03 [16:34]  최종편집: ⓒ 교육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