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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생활에서 잊지 못할 일] 철부지 선생을 가르친 원준이
 
노미경·경북 화동초 기사입력  2018/12/14 [12:33]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지 벌써 서른 해째다. 그동안 아이들을 많이 만나고 헤어지면서 살아왔다. 처음 교단에 설 때 나는 무척 부담스러웠다.

 

아이들 앞에선 좋은 선생님이어야 하는데는 불안하고 자신이 없었다. 넓은 세상에 갑자기 준비되지 않은 채 던져진 어른이었다고나 할까?

 

그렇게 교직 생활을 하면서 한 10년쯤 되었을까?
 

포항에서 근무할 때다. 포항은 보통 동 학년 규모가 6~7학급으로 이루어지고 전담까지 하면 8명 정도 된다. 거기에 5~6학년을 맡게 되면 젊은 교사들이 많이 모인다.
 

젊은 교사들이 모이다 보니 마음도 잘 맞고 어울리는 일도 많았다. 그때 자주 하던 못된 말버릇 중의 하나가 '주량이 역량이다', '좋은 게 좋은 거다'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 말은 틀릴 때가 더 많았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때는 몰랐다. 전날 실컷 술을 마시고 다음 날 학교에 술 냄새를 풍기고, 보건실에 쓰러져 코를 골고 자는 선생님도 있었다.
 

어쩌다 숙취로 결근하는 교사도 있었지만, 교감 선생님도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내게도 그런 일이 생겼다. 그 해는 1학년을 맡았는데 무슨 일이었는지 밤늦도록 술자리에 있었고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많이 마셔 간신히 집에 들어갔다.
 

다음날 출근을 해야 하는데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아침에 교감 선생님께 전화를 걸어 도저히 아파서 학교에 갈 수가 없다고 거짓말을 했다. 교감 선생님은 다 아시는 것 같은데도 '몸조리 잘하라'라고만 하셨다. 그다음 날 학교에 갔다.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우리 반 1학년들이 나를 에워쌌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어디 아프셨어요?"
"많이 아팠어요?"
 

그때는 1학년이 한 반에 40명씩 될 때인데 고물고물한 녀석들이 내 안부를 물어왔다.
 

부끄러워서 어쩔 줄 몰라할 때 원준이가 눈에 들어왔다.
 

1학년이지만 덩치가 더 작고 책도 잘 못 읽는 등 여러 가지로 뒤처지는 아이였다.
 

그런데 그 녀석이 말간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내 손을 잡더니
 

"선생님! 내가 걱정했는데…"
 

그 작고 따스한 손과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쿵!"하고 울렸다.
 

"아~ 이렇게 살면 안 되겠구나."
 

그날로 나는 술버릇을 고쳤다.
 

아니 그 뒤로도 술을 마시긴 했지만 절대 술 때문에 학교에 빠지거나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지금도 원준이의 따스한 손길과 마음이 느껴진다.
 

그때가 2004년이었는데 지금 학급문집을 찾아봐도 원준이 글은 겨우 두 편뿐이다. 아마 글씨를 잘 못 읽었으니 숙제도 거의 안 해왔던 거 같다.
 

학교 축제가 있던 날, 그날도 원준이 엄마는 바쁘셨는지 학교에 오시지 못했다. 혼자인 원준이 손을 잡고 학교 축제 장터에서 파는 오뎅도 사 먹고 구경도 같이 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 나머지 공부시간이었던 같다. 둘이서 교실에서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라는 동화책을 읽으며 울었던 기억도 난다.
 

지금쯤 원준이는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원준아, 철부지 선생 버릇을 고쳐준 따스한 네 마음을 선생님은 아직도 기억하며 살고 있다. 보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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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12/14 [12:33]  최종편집: ⓒ 교육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