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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 페미니즘 교육] 나는 어떻게 페미니스트 교사가 되었나
 
임이랑 · 경기 수원칠보고 교사 기사입력  2018/11/13 [13:19]

 

남고에서 교직 생활을 시작했다. 수능특강 지문에 Hong Kong이 나오자 한 학생이 대뜸 "쌤, 홍콩 가봤어요?"라고 물었다. 나머지 39명의 학생이 깔깔대고 웃었다. 안 가봤다고, 방학 때 갈 거라고 했는데 '그냥 대답하지 말고 무시할 걸 그랬나'하고 집에 와서 후회했다.
 

"쌤, 생리할 때 피 많이 나와요?"라고 묻는 남학생도 있었다. 내가 당황할 줄 알고 그랬나 본데, 당황한 기색 없이 첫째 날과 둘째 날에는 피가 많이 나온다고 말하며 한술 더 떠 "생리는 며칠 동안 하게?", "너네 생리대 한 달에 몇 개 쓰는 줄 알아?" 등 생리에 관한 이야기를 쭉 풀어놓았다.
 

수업시간에 수도 없이 '섹드립'을 날리는 학생들, 팝송대회에 참가하여 교사와 학생 앞에서 'sex bomb'을 부르며 의자를 들고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동작을 하는 학생, 젊은 여교사를 무시하며 욕을 하는 학생들, '김치녀', '보슬아치'등의 여성 혐오 표현을 입에 달고 다니는 학생들, 교원평가에서 외모 평가나 인신공격을 하는 학생들….
 

페미니스트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때는 이를 페미니즘의 시각으로 바라보지 못했다. 개인의 수업 장악력 부족 때문으로 여기고 좌절하였고, 학생들의 '섹드립'과 무시를 받지 않는 남교사를 부러워했다. 여교사를 '교사'로 보지 않고 '여자'로 보며 성별 권력을 행사하는 남학생들 사이에서 여교사로 살아가는 게 불리하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다 또래 교사들과 고민을 나누는 과정에서 남교사들은 많이 겪어보지 않은 일이었음을, 그러나 여교사들은 나와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학생들이 누군가를 혐오하고 차별하는 사람으로 자라나도록 그냥 둔다면 영어 한 문장 해석할 줄 아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었다. 영어를 잘 가르치기보다는 학생들이 다른 누군가로부터 차별받지 않도록, 또한 다른 누군가를 차별하지 않도록 가르치고 싶었다. 그래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필요할 때마다 페미니즘을 수업에 최대한 녹여내기 시작했다.
 

마침 2015년 2학기 메르스 사태 이후, 수능교재에 젠더 관련 지문이 나와, 책 '이갈리아의 딸들'을 소개하며 '여남이 뒤바뀐 이갈리아 사회에서 내가 남자라면 어떨까'에 대해 써 보는 수행평가를 하였다. 생각보다 많은 학생이 '남성가족부를 만들어 차별에 대항할 것이다', '권력 있는 여자에게 장가갈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알게 모르게 남자들이 우위에 있고, 여성이 겪는 불편이나 차별을 당연시 여겼는데 그러지 말아야겠다' 등의 내용을 써서 놀라웠다. 초등학교 때부터 이러한 교육을 하면 페미니즘에 대한 오해를 없애고, 성평등에 대한 감수성을 높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들었다.
 

물론 이 수행평가 직후에 있었던 교원평가에는 '남녀 차별 문제 거론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성 인권 꼴찌라는 이상한 소리는 안 했으면 좋겠다', '최근 남자애들에게 소홀해지신 모습이 별로다. 혹시라도, 아니길 바라지만 페미니즘은 자제하자'라는 말들이 올라왔다. 나에 대한 인신공격은 참을 수 있었지만,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쉬는 나를 참담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것이 학생들만의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가부장제가, 페미니즘에 대한 반격이 그대로 학교에 반영된 것뿐이다. 만약 우리 사회에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전혀 없다면 학생들이 장애인을 차별할까? 우리 사회가 성평등한 사회라면 학생들도 성평등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하루빨리 유치원 및 초·중·고에서 페미니즘 교육을 의무화하고, 모든 선생님이 페미니즘 교육을 실천하여 우리 학생들이 성평등한 학교, 성평등한 사회에서 '여자답게'나 '남자답게'가 아닌 '나답게' 살아갈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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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11/13 [13:19]  최종편집: ⓒ 교육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