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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생활에서 잊지 못할 일] 수능 끝난 5일 뒤
 
차용택·경남 함양고 기사입력  2018/10/25 [23:43]


아이들이
책을 창문밖으로
버리고 있었다
"얘들아~ 저건
어떤 책이야?"
"스트레스를 
주는 책이예요"
 

몇 년 전 수능이 끝난 지 5일, 3학년 교실에 가려다가 건물 옆에 아이들이 몰려 있어서 가 봤다. 3학년 건물 3층과 2층 창문에서 책이 떨어지고 있다. 아이들이 책을 버리고 있었다. 지난 1년 동안 공부했던 참고서, 문제집들을 버리는데, 학교 폐휴지 수거통에는 담기에는 어림도 없이 많아서 아예 건물 옆 한 곳에 버리고, 재활용품 수거업자에게 트럭을 가지고 와서 가져가게 한 것이다. 지나가던 후배들은 혹시 쓸 수 있을까 싶은 책을 골라서 가기도 한다.
 

금방 책으로 된 작은 동산이 생긴다. 재활용품 수거하러 온 업자가 망연자실하고 있다. 가져온 1톤 트럭으로는 어림도 없겠고, 손으로 싣자니 허리가 부러질 게 뻔하다. 나를 보더니 "이렇게 많을 줄이야…" 한다.
 

수거업자가 난감해하든 말든 책은 계속 버려지고 있다. 수업 시작종이 쳐서 후배들은 교실로 가고, 3학년 몇몇이 떨어지는 책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와, 멋있다." "나 이미 찍었다. 찍어서 싸이에 올렸다." "작년보다 많은 것 같다."
 

구경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물어봤다.
 

"책을 버리는 심정이 어때?"
 

"시원해요. 홀가분해요."
 

"그런데 책을 왜 버려?"
 

"필요 없으니까요. 입시를 위한 것일 뿐이잖아요."
 

"입시가 끝났으니 책은 쓰레기장으로 간다?"
 

"ㅎㅎ 휴지로 다시 태어나겠죠. 화장실에서 다시 만나!"
 

그러면서 그 학생은 옆에 있는 친구를 보며 "그 시 생각난다. 해우소에서 떨어지는 똥 덩어리 같이 느껴질 때…  뭐 그런 시!"
 

김광균의 <대장간의 유혹>이 생각난 모양이다.
 

두 학생은 장난으로 울음소리를 내더니 그 울음소리는 진짜 울음이 됐다.
 

또 다른 학생에게 물어봤다.
 

"책을 버리는 모습을 보니까 기분이 어때?"
 

"저요? 좋아요. 해방된 느낌! 이제 진~짜 끝났다는 느낌!" 옆의 학생이 웃으며 박수를 친다.
 

재차 물었다.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는데…"
 

"저건 마음의 양식이 아니죠."
 

"그럼 저 책은 어떤 책이니?"
 

옆의 학생을 쳐다보며 "얘들아~ 저건 어떤 책이야? 스트레스! 맞아, 스트레스! 스트레스를 주는 책이예요."
 

교실에 가서 아이들에게 물어봤다. 밖에서는 크레인이 굉음을 내며 책을 담고 있었다.
 

"책을 버리는 기분이 어때?"
 

"상쾌해요".
 

"왜 상쾌해?"
 

"1년 묵은 때를 벗긴 기분이예요."
 

"아, 그러니까 책이 바로 땐가 보구나?"
 

"예, 하하!"
 

업자는 1톤 트럭을 돌려보내고 손가락 여섯 개짜리 집게 크레인이 달린 대형 트럭을 가져와 그 많은 책을 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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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10/25 [23:43]  최종편집: ⓒ 교육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