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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대법원·고용노동부 '한통속' 김기춘 등 9명 재판 관여
■ 전교조 법외노조화 시나리오 움직인 인물들
 
박근희 기사입력  2018/09/13 [22:43]

 

고용노동부의 재항고 이유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을 다시 법외노조로 내몬 문서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재판거래'로 이뤄진 사법농단이 속속 드러나면서 재항고 이유서는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 문서 하나에 얽힌 인물과 여파가 컸기 때문이다. 우선 재항고는 어떤 의미인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겠다. 사전에서 설명하는 법률용어인 재항고는 '항고법원과 고등법원의 결정이나 명령이 법령에 위배됨을 이유로 대법원에 다시 항고하는 일'이다.
 

문제의 재항고 이유서가 등장한 건 2014년 10월 8일이다. 2013년부터 고용노동부와 법외노조 통보 처분취소에 대한 재판을 벌여 온 전교조는 최종 판결이 날 때까지 '법내노조'로 둘 것을 요청하며 서울고등법원에 '법외노조 통보 효력 정지'를 신청해 왔다. 첫 효력 정지 신청은 받아 들여졌고 고용노동부는 곧 항고했으나 기각됐다. 그러나 그 후 서울행정법원에서 전교조의 법외노조 통보 처분 취소 소송을 기각해 전교조는 또 다시 법외노조로 내몰렸다. 결국 전교조는 다시 효력 정지 신청을 했고 받아 들여졌다. 다시 법 내로 들어온 전교조. 고용노동부는 재항고했으며 대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2차 효력 정지 신청의 인용을 파기환송한다. 이 과정에서 고용노동부의 재항고 이유서가 등장한다.
 

2014년 7월 신청부터 2015년 6월 파기환송까지 약 1년. 이 사이 청와대, 법원행정처, 고용노동부는 그야말로 '한 팀'으로 움직였다. 지금까지 드러난 문건, 정황, 검찰이 발표한 수사 내용을 종합해보면 이 팀에는 모두 9명이 있다. 누군가는 이른바 '큰 그림을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손발이 돼 움직였다. '재항고 이유서'라는 하나의 문서로 뭉친 이들은 대체 누구이며 그때 무슨 일을 벌였을까.
 

국정·사법농단을 벌인 주요 인물 중 한 명인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여기서도 빠지지 않는다. 서울고등법원이 전교조가 신청한 '법외노조 효력 정지' 신청을 인용하자, 김 전 실장은 소위 '기획'에 들어갔다.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는 '김영한 비망록'으로 알려진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업무수첩이다. 수첩에 적힌 인용 다음 날의 기록은 '전교조 관련 대처 : ①즉시 항고 인용 ②헌재 결정 합헌'이었다. 김 전 실장의 주문을 법원행정처로 전한 인물은 최원영 전 청와대 고용복지수석비서관으로 알려져 있다.
 

이때부터 청와대와 법원행정처는 긴밀한 공조를 펼친다. 사법농단 수사과정에서 임종헌 법원행정처 전 기획조정실장이 사용하던 이동식 디스크에서 발견한 문서는 이를 알려주는 핵심 증거물이다. 문서명은 '(141007)재항고 이유서(전교조-Final)'. 문제의 재항고 이유서가 등장한 것이다. '(141007)'는 문서를 최종 작성한 날이라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사법농단 수사에서 대량 발견된 법원행정처 문서는 앞머리에 작성일을 표시했다. '(전교조-Final)'은 명확히 이 재항고 이유서가 전교조와 관련함을 가리킨다.
 

더욱 놀라운 점은 내용이다. 43쪽으로 이뤄진 문서는 위법 사항을 조목조목 서술하고 있다. 서울고등법원의 인용 결정이 위헌법률심판제청 결정에서 법리오해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 효력 정지 신청의 부적법 등이 그 예다.
 

재판에 관여하지 않고 사법행정 사무를 총괄했던 임 전 실장의 이동식 디스크에서 전교조와 관련한 재항고 이유서가 발견된 점은 임 전 실장이 재항고 이유서 작성에 직업 관여한 사실을 반증한다.
 

이 문제의 문서와 같은 논거로 이뤄진 재항고 이유서는 2014년 10월 8일, 당시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정한 수송수행자(조오현 전 고용노동부 서기관을 비롯해 3명의 행정사무관으로 모두 4명)에 의해 제출된다.
 

이와 관련해 사법농단을 수사하는 검찰은 지난달 28일에 간담회를 열어 출입 기자들에게 청와대, 법원행정처, 고용노동부가 당시에 어떻게 움직였는지를 전한 바 있다. 기자 간담회에서 전해진 내용을 종합하면 검찰은 청와대가 서울고법의 효력 정지 인용을 재항고로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주문하자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법원행정처와 접촉해 재항고 논리를 가다듬어 이유서를 대신 작성하고, 청와대가 문제의 이유서를 건네받아 노동부를 거쳐 대법원에 제출한 것으로 봤다.
 

이러한 공모를 거쳐 '생산된' 재항고 이유서를 바탕으로 당시 고영한 주심은 '파기환송'을 결정한다. 헌법재판소가 노조 설립이 가능한 교원의 범위를 초·중·고교 교사로 제한한 교원노조법 제2조에 대해 합헌 결정을 하였음이 파기환송의 근거였다.
 

전교조와 관련한 대처를 지시한 김기춘 전 비서실장, 지시에 따라 움직인 최원영 청와대 전 수석비서관, 재항고 이유서 작성에 개입한 것으로 보이는 임종헌 법원행정처 실장, 문제가 있음을 알면서도 법원행정처 작성 재항고 이유서를 그대로 제출한 고용노동부 이기권 전 장관과 4명의 직원들. '재항고 이유서'라는 문서 하나에 얽힌 이들은 같은 목적으로 뭉쳐 기어이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내몰았다. 그 과정에서 보여준 이들의 행동은 법을 넘어섰고 전교조는 지난달 30일 이 9명을 직권남용과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고소했다. 검찰은 현재 관련자들에 대한 조사를 대체로 완료한 상태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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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9/13 [22:43]  최종편집: ⓒ 교육희망